주간동아 458

2004.11.04

기억의 뇌세포 총출동 상상이 첫걸음

  • ‘all of dance PAC’ 대표 choumkun@yahoo.co.kr

    입력2004-10-29 1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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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의 뇌세포 총출동 상상이 첫걸음
    10월 서울은 축제의 홍수 속에 술렁이고 있다. 한 해가 저무는 것을 아쉬워하는 듯, 2004년을 우리의 기억에 담아두기라도 하려는 듯 사람들의 눈 코 입 손 귀가 바쁘게 움직이고, 필자는 좋은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공연장으로 향하느라 분주하다.

    10월13일 호암아트홀에서는 일본 무용계의 기대주로 손꼽히는 3명의 여성 안무가가 한 판 춤판을 벌였다. 세 작품 모두 일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몸으로 보여주었는데, 첫 번째 작품 데라다 미사코의 ‘내일은 맑을거야’(사진)는 국제결혼을 한 부부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은 독특하다. 안무가가 한 달간 이 부부를 밀착 취재한 것. 데라다 미사코는 이들에 대한 관찰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그 무엇을 발견한 듯하다. 어떻게 균형을 맞추는지 어떻게 갈등을 풀어나가는지, 긴장하고 꼬이고 풀고, 서로를 보듬어 안고 혹은 뿌리치는지 등. 그는 이들 부부 관계를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소통하며 세상을 살아가는지를 몸짓으로 보여줬다.

    두 번째 작품 기타무라 시게미의 ‘라벤더’에서는 몸매가 마치 옆집 아줌마처럼 평범한 안무가의 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안무가는 프랑스 남부의 몽펠리에에서 5주 동안 체류하면서 주변이 라벤더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닫고, 그 안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돌아보며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무대 위에서 기타무라 시게미는 민소매 상의와 폭넓은 치마 안에 하나의 뿌리가 수없이 많은 꽃을 피우는, 독특한 향기의 라벤더를 수놓은 보라색 브래지어와 팬티를 입고 있었다. 라벤더의 향기를 관객에게 직접 전달하고자 하는 아티스트의 소망은 그가 직접 객석에까지 내려와 춤을 추게 만들었다.

    세 번째 작품은 구로다 이쿠요의 ‘Side B’였다. 조명이 밝아지면, 한 여자가 운동화를 신고 발레리나처럼 발끝으로 서서 조용히 조용히 제자리에서 돌고 있다. 짙은 빨간색의 대형 천이 무대 앞을 가리고 있고, 관객들은 그의 다리만을 볼 수 있다. 무용가는 발을 굴러 소리를 내기도 하고, 무대 앞으로 혹은 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보일 듯 말 듯 자신의 몸을 숨긴다. 한순간 천이 흘러내리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6명의 무용수들이 온몸을 내던지면서 춤을 춘다. 춤이 진행되는 내내 무용수들은 자신들의 얼굴을 관객들에게 숨기고 있다. 머리카락으로 혹은 관객을 등지고 서서 고집스럽게 얼굴을 가린 채 춤을 춘다. 일사불란한 그들의 움직임은 숨가쁘게 진행되고 마침내 드러낸 얼굴, 관객들은 그제야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가쁜 숨을 내쉬면서 큰소리로 웃는다. 마치 세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사도라 덩컨의 무용에세이’에는 “나에게 무용이란, 동작을 통해서 인간의 혼을 표현하는 예술일 뿐 아니라 더욱 자유로운 삶, 더욱 조화 있고 더욱 자연스런 삶의 완전한 개념의 근본이기도 하다”라는 구절이 있다.



    춤은, 특히 현대무용은 어느 예술행위보다 주관적이고 그래서 읽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 약간의 훈련이 필요하고 팸플릿에 있는 글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영화를 볼 때처럼 자기 자신이 그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다고 상상해보라고. 그리고 기억의 뇌세포를 총출동시켜보라고. 그러면 어느새 자신도 무대 한가운데에서 땀을 흘리고 있음을 느끼며 춤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당신은 춤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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