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9

2015.03.16

‘타인의 고통’이 말해주는 것들

빌 비올라 개인전

  • 송화선 주간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5-03-16 13: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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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의 고통’이 말해주는 것들

    ‘조우’(19분 19초, 배우 : Genevieve Anderson, Joan Chodorow)

    작가 수전 손태그는 저서 ‘타인의 고통’에서 ‘고통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이라고 했다. 영상예술가 빌 비올라의 작품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어쩌면 이토록 ‘격렬한 욕망’ 때문인지 모른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빌 비올라 개인전’에는 그가 영상으로 담아낸 고통의 순간들이 전시돼 있다.

    8분 22초간 이어지는 ‘도치된 탄생(Inverted Birth)’은 한 남자의 모습에서 출발한다. 검은색 액체를 뒤집어쓴 채 어둠과 침묵 속에 홀로 서 있는 사내다. 높이 5m에 이르는 대형 스크린은 그가 겪는 고통을 극대화해 전달하는 구실을 한다. 보는 이마저 숨이 막힐 무렵,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남자를 짓누른 액체가 공중으로 치솟기 시작한다. 거꾸로 쏟아지는 폭우처럼 거칠고 위협적인 물줄기다. 그 안에서 남자는 때로 주먹을 불끈 쥐고, 때로는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감싼 채 고통을 묵묵히 참고 견딘다.

    ‘타인의 고통’이 말해주는 것들

    ‘도치된 탄생’(8분 22초, 배우 : Norman Scott)

    또 다른 작품 ‘물의 순교자(Water Martyr)’에도 물의 폭력이 등장한다. 7분 10초 분량의 이 영상에서 물은 이번엔 주인공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다. 발목이 밧줄로 묶인 남자는 거대한 물줄기 아래 거꾸로 매달린 채 고통의 무게를 감당해낸다.

    인간이 직면한 고통과 이를 극복하는 의지는 비올라의 오랜 관심사다.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대표로 선정되며 명성을 얻은 그는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이런 주제를 성찰한 영상을 잇달아 선보여왔다.

    그의 작품이 모두 압도적인 고통의 장면만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 28분 31초 동안 이어지는 영상 ‘가녀린 실(Delicate Thread)’에는 사막을 걷는 남녀가 등장한다.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는 메마른 땅에서 그들은 걷고 또 걷는다. 비올라는 다른 작품에서도 한 남성이 사막을 외로이 걷고(‘내적 통로(Inner Passage)’ · 17분 12초), 어머니와 아들이 사막을 건너는(‘조상(Ancestors)’ · 21분 41초) 서사를 반복했다. 이들의 삶 속에 고통은 모래알만큼이나 무수히 들어와 박혀 있는 듯 보인다.



    그 지독한 고통 끝에서 인간이 얻는 것은 구원이기도 하고, 평화이기도 하며, 때로는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다. ‘도치된 탄생’의 주인공은 검은빛, 핏빛, 우윳빛 액체에 차례로 뒤덮인 뒤 투명한 물빛 액체에 깨끗이 씻기고, 마침내 자신을 감싼 포근한 안개 속에서 편안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가녀린 실’의 남녀는 긴 여정의 끝에서 각자 길로 헤어질 뿐이다. 비올라는 전시 시작에 맞춰 한 기자회견에서 “인간은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작품을 통해 필연적인 고통에 대응하는 인간의 희생과 인내가 지닌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5월 3일까지, 문의 02-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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