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 발사대를 떠난 요격미사일이 두 번의 포물선을 그린 뒤 목표물을 쫓아가는 모습. 미국은 1999년 6월 10일 뉴멕시코 주 실험장에서 진행한 10번째 THAAD 미사일 시험발사에서 처음으로 요격에 성공했다.
THAAD가 뜨겁다. 한국에 배치되는 미군 무기체계가 이처럼 ‘핫한’ 논쟁에 휘말린 적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주한미군과 미 국방부 일각의 ‘군불 지피기’에 우리 정부의 모호한 태도, 최고지도자까지 나선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이 맞물리면서 상황은 유럽 지역 미사일방어(MD) 체제를 두고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기 싸움을 벌였던 10여 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듯하다.
나라 안 상황은 더 복잡하다. 야권과 시민단체가 정부의 모호한 태도를 비판하던 전선은 3월 10일을 전후해 새누리당 비주류 지도부가 나서면서 엉키기 시작했다. ‘주한미군 배치든 독자 배치든 불가’라는 반대론과 ‘미군기지에 배치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유보적 태도, ‘우리 예산으로 구매해 직접 운용해야 한다’는 적극적 도입론까지 모두 세 갈래다.
“높은 궤도는 없다”
앞서 소개한 유럽 전문가의 말은 복잡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이슈의 핵심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수 있는 가늠자다. 다양한 숫자와 제원이 등장하는 기술적 논쟁 대신 ‘진짜 이슈’는 따로 있다는 게 그 골자.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THAAD가 필요하다는 한미 군당국의 주장이나, THAAD가 배치되면 자국의 미사일 전력운용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는 중국의 반발은 모두 수사일 뿐 양쪽 모두 속으로는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다는 의미다.
먼저 북한 미사일이다. 지난해 여름 이후 한국 국방부는 “북한이 사거리 1300km인 노동미사일을 ‘높은 궤도(Lofted Trajectory)’로 발사하면 남한 지역도 타격할 수 있고, 이 경우 하강 속도가 마하7에 달해 패트리어트 등 한미 양국군이 보유 중인 저고도요격체계로는 명중이 어렵다”는 논리를 반복적으로 사용해왔다. 고도 40~150km 사이에서 미사일을 요격하는 THAAD의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셈이다.
국방부는 지난해 3월 26일 동해상으로 발사된 노동미사일 2기가 최고고도를 160km까지 높이고 비행거리를 줄여 발사됐다는 이례적인 설명도 덧붙였다. 한국군이 THAAD를 도입해 직접 운용해야 한다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등의 주장은 이러한 설명에서 기인한다. 노동미사일에 핵탄두를 달아 서울에 날리면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 ‘THAAD는 생존권 문제’라는 찬성론의 핵심 슬로건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탄도미사일과 요격체계에 정통한 국내외 미사일 공학자들의 설명은 사뭇 다르다. 일단 노동미사일을 ‘높은 궤도’ 방식으로 쏜다는 개념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 미사일 발사각도는 비행거리에 따라 산정되고 최고 비행고도 역시 그에 따른 결과물일 뿐, 낙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일부러 각도를 높여 쏘는 일은 야포에서나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한 예비역 전문가의 말이다.
“지난해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의 최고 비행고도가 통상의 노동미사일 궤적보다 높은 것은 먼 거리를 날아가는 개량형을 실험한 것으로 보는 게 옳다. 실험 과정에서 애초 목표한 최고고도에 이르면 사실상 성공한 것으로 보고 비행을 중단시키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최고고도에 비해 비행거리가 짧은 궤도는 이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지, 일부러 높게 쏴서 가까운 목표를 맞추는 일은 불가능하다.”
결국 공학적 설명을 감안하면 ‘날아오는 핵미사일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명제는 사실과 다르다. THAAD 등 고고도에서 요격하는 방어체계를 도입한다면 이는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현재의 패트리어트 미사일로는 요격 기회가 한 차례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 스커드미사일을 맞춰 떨어뜨릴 기회를 수차례 추가로 확보하는 게 THAAD의 존재 이유이지, 노동미사일의 ‘높은 궤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설명이 의미심장한 것은 수량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THAAD 1개 포대에 탑재되는 요격미사일은 모두 48기. 2013년 미 국방부가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노동미사일은 발사대 수량이 50대 미만인 반면, 서울을 사거리 안에 두는 스커드 등 단거리 미사일 발사대는 수백 대가 넘는다. 노동미사일은 THAAD 요격미사일 48기로도 감당할 수 있겠지만, 한꺼번에 대규모로 쏘아올린 스커드미사일 중 어느 것에 핵탄두가 탑재돼 있는지 골라가며 맞추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기까지 놓고 보면 ‘THAAD가 있으면 안전해지고 없으면 고스란히 핵 공격에 노출된다’는 논리는 사실상 성립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THAAD로 생존성을 높일 수 있다’ 정도겠지만, ‘절대방어’와는 거리가 멀다. 궁금해지는 것은 평택기지에 THAAD를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미국 측 관계자들이 과연 이를 몰랐을까 하는 점이다. 북한 미사일 공격을 막기 위한 군사적 필요성이 미국의 진짜 속내인지 의구심이 생기는 이유다.
A2/AD와 재균형 정책
이러한 한계는 중국에 대해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중국 측은 THAAD 레이더 AN/TPY-2의 탐지 범위가 2000km에 육박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미국이 이 체계를 평택에 배치하려는 진짜 목적은 자신들의 미사일 전력을 감시하기 위해서라는 것. 그러나 미국 본토까지 날아갈 중국 대륙간탄도탄(ICBM)의 상당 부분은 탐지 범위를 벗어나는 서북부 내륙에 배치돼 있어 한반도를 지나지 않고, 동부에서 발사되는 ICBM 역시 한반도 상공을 스칠 무렵이면 이미 THAAD 요격미사일의 최고고도를 훌쩍 벗어난다. THAAD로는 미국을 공격하는 중국 미사일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물론 AN/TPY-2가 중국에서 미사일이 막 날아오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감지해 알래스카나 미 본토에 배치된 미군의 다른 요격체계에 전달할 수는 있다. 일종의 조기경보다. 그러나 상당수 군사기술 전문가는 그 정도는 대만이나 일본 오키나와, 이지스함 등에 이미 배치된 미군의 다른 레이더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지형에 크게 영향을 받는 레이더의 특성상 인공위성에 비해서도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군사적으로 보면 THAAD로 중국의 전력 운용이 심각한 장애를 겪게 된다는 주장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중국 역시 이러한 기술적 특성을 모를 리 없다. 한마디로 THAAD는 교리나 실전 상황 같은 군사적 이슈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쯤 되면 당연히 드는 의문.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한국군 합동참모본부에서 군사교리를 책임졌던 한 예비역 전문가는 이를 ‘개념(concept)의 전쟁’이라는 말로 정리한다. 지금 벌어지는 게임은 군사가 아니라 국제정치의 싸움이며, 공간의 지배권을 둘러싼 영역다툼에 가깝다는 것이다.
A2/AD(anti-access, area denial). 우리말로는 흔히 ‘반접근-지역거부’로 번역되는 이 용어는 21세기 중국의 군사전략 개념을 요약한 키워드다. 상대 전력이 연안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아내고 해안으로부터 일정 범위 내에 진입하는 해상전력은 철저히 무력화한다는 게 그 골자다. 상대가 들어오는 일 자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선 긋기’다. 베이징이 코앞인 서해가 그에 포함된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2009년 3월 8일 남중국해 하이난다오(海南島) 부근 해상에서 미국 관측선 임페커블호가 중국 해군 함정 5척에 의해 항해를 저지당하면서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사태는 일촉즉발 긴장 상황으로 급변했다. ‘내 바다에 함부로 감시망을 뻗치려 들지 말라’는 중국과 ‘이 바다가 왜 네 바다냐’는 미국의 대립. 이 섬을 해군 전략거점으로 삼아온 중국은 사건 이후 항공모함 건조 계획을 공식화했다.
2월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를 찾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부장관(왼쪽). 블링컨 부장관은 이날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에 대해 결정한 것도, 논의하는 것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왼쪽 사진). 그 반면 2월 4일 서울 국방부 청사를 방문한 창완취안 중국 국방부장(장관 · 왼쪽)은 THAAD가 한반도에 배치되면 한중관계가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평택기지 THAAD 배치를 둘러싼 두 나라의 갈등은 무대만 서해로 옮겼을 뿐 이 사건의 대칭형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to Asia) 정책을 공식화한 이후 미국은 일본과 대만은 물론, 호주에 이르기까지 배치전력을 강화해왔지만, 주한미군만은 획기적인 증강 조치가 없었다. 일본과 공동 MD 개발을 추진한 반면, 공식 참여를 유보해온 한국에는 관련 전략 자산을 따로 배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THAAD는 이러한 그간의 기조를 깨고 한반도에 ‘새로운 촉수’를 뻗은 첫 사건이다. 최소한 중국 측 시각으로 보자면 그렇다.
“베이징으로서는 자신들의 영역을 향해 전진 배치된 첫 번째 비수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군사적으로 얼마나 위협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THAAD의 기술적 특성을 충분히 설명하면 중국도 양해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이유다. AN/TPY-2 레이더를 북한 방향으로 고정해두거나 탐지 범위가 짧은 종말모드(terminal mode)로 소프트웨어를 장착하면 된다는 공학적 접근법도 마찬가지다.”
익명을 요청한 국책연구기관 중국 전문가의 말이다. 중국은 한국을 향해서만 경고를 날리고 있을 뿐, 정작 미국과의 회담에서는 이를 거론한 적이 없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 정재호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러한 상황을 ‘대리 경쟁(proxy competition)’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한국이 중국과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미국의 우려와, 더는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중국의 반발심리가 THAAD로 불거진 것뿐이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부풀어 오르는 중국의 영역과 그 코앞에 놓인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미국의 서태평양 패권이라는 동북아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카드가 우리에게 없다는 사실. 분명해진 것은 문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건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사실뿐이다. 굳이 따지자면 THAAD 배치의 논리적 근거로 활용되고 있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조속히 제거하는 것만이 우회로일 수 있을까. 갈수록 좁아지는 한국의 선택지와 매서워지는 긴장 사이에서 앞으로 훨씬 더 강력한 이슈들이 우리를 괴롭힐 것이라는 전망이 너울거린다. THAAD는, 그 시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