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8

2004.08.19

“교도소에서 딴 자격증 쓸데없어요”

전과자 ‘어둠의 자식’ 낙인 멸시와 냉대의 대상 … 출소자 홀로서기 어려운 환경 ‘재범’ 부추겨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4-08-13 17: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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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도소에서 딴 자격증 쓸데없어요”

    한국갱생보호공단 생활관에 머무르고 있는 출소자 이모씨(51)와 윤모씨(46). 두 평 남짓한 방 하나를 세 사람이 사용하고 있다.

    서울 양천구 신월7동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옆에는 3층짜리 낡은 건물의 ‘한국갱생보호공단’이 있다. 무의탁 출소자들이 머물며 자립을 준비하는 이곳엔 한여름의 무더위가 무색할 만큼 항상 싸늘한 기운이 감돈다. 8월6일 오전 이곳을 찾은 기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경계심과 두려움에 싸늘함을 느꼈다. 하지만 건물에 들어서며 마주친 여러 사람들의 눈빛은 보통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 한잔 드세요”라며 말을 건네는 그들의 모습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했다.

    “나요? 받아줄 만한 가족도 없고, 자립할 돈도 없는 사람이지요. 그래도 7개월간 여기서 일하며 500만원 모았지요. 열심히 돈벌어 사글셋방 하나 얻는 게 목표요.”

    “한 번 전과자는 영원한 전과자”

    2003년 12월 청송교도소에서 출소했다는 이모씨(51)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20대 후반 폭력배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사람을 죽인 이씨는 살인 혐의로 대전교도소에서 15년간 복역한 뒤 출소했으나 석 달 만인 1998년 술에 취해 경찰관을 칼로 찔러 다시 5년의 세월을 청송교도소에서 보냈다. ‘살인’이란 말에 잠시 움찔하는 기자를 보며, “선과 악은 어쩌면 백지 한 장 차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순간의 실수로 걷잡을 수 없이 틀어져버린 삶을 바로잡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지만 사회적응 과정은 쉽지 않다고 했다.

    “교도소에서 딴 자격증 쓸데없어요”

    서울 양천구 신월7동에 자리잡은 한국갱생보호공단 서울지부 건물.

    “98년 출소해 일자리를 얻으러 돌아다니는데 교도소에서 딴 자격증이 아무 소용 없데요. 보일러 취급기사 자격증, 기계정비 자격증이 있어도 나이 많고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퇴짜 맞고, 막노동판에 가서도 줄이 없어 ‘데마치’(damage를 일어로 읽은 것. 여기서는 ‘일이 없다’는 뜻의 은어) 받기 일쑤였어요. ‘출소자 쉼터’를 출입하는 나를 보는 시선도 곱지 않고. 받아주는 데가 없으니 다시 확 (범죄를) 저질러버릴까 하는 생각이 간절합디다.”



    전과자. 사회의 어둠 속에서 늘 멸시와 냉대의 대상이 됐던 이들이 사회의 편견과 제도적 차별로 인해 너무나 쉽게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많은 이들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차별하는 건 당연하지 않냐”며 되묻기도 한다. 그러나 전과자를 포용하지 못하는 현실이 전과자들을 사회에 영원히 안착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게 우리의 실정이다. 교도소에서 이뤄지는 형식적인 사회적응 교육과 턱없이 부족한 교도소-사회 연계 프로그램으로 인해 전과자의 재범률은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한 번 전과자는 영원한 전과자’라는 주변의 인식 때문에 전과자는 사회생활에서 수많은 차별을 경험한다. 경찰 수사나 사회생활에서 겪는 차별은 이들을 다시 방황의 늪에 빠뜨리기도 한다. 40대 초반의 안진호씨(가명)는 청송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서울의 한 출소자 쉼터에 머물며 새로운 출발의 의지를 다졌다. 막노동판을 전전하면서 홀로 서겠다는 꿈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우연히 폭행사건에 연루돼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전과자의 굴레’를 쉽게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시비를 건 쪽도, 더 적게 다친 쪽도 상대편이었지만 경찰은 안씨가 전과자라는 이유로 줄곧 상대편의 이야기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결국 훈계로 끝날 수 있던 일로 그는 재구속되고 말았다.

    전과자?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

    폭력전과 7범인 박모씨(41)는 4년 전 인천의 한 공단에 취업하면서 일반 생활인으로 새 출발했다. 그의 전과 경력을 아는 사람은 회사의 한 간부뿐이었다. 그러나 박씨의 전과에 대한 소문이 회사에 퍼지면서 그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급기야 탈의실 도난사건이 일어나자 모든 사람들이 박씨를 의심했다. 결백을 주장했지만 주변인들은 의심의 시선을 쉽게 거두지 않았다. 회사를 사퇴한 박씨는 방황을 거듭하다 결국 다시 폭력 혐의로 구속됐다.

    수십년이 지나도 따라다니는 ‘전과 기록’은 이들에게 족쇄다. 10대 시절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다 우발적 사건으로 전과자가 된 이모씨(49)는 평생 따라다니는 ‘전과자 꼬리표’가 괴롭다고 했다. 지난해 실효(失效)된 전과 때문에 경찰청장이 무사고 운전자에게 부여하는 영년표시장 수여대상에서 제외됐다.

    “교도소에서 딴 자격증 쓸데없어요”

    수원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재소자들

    “10대 후반인 1975년 세 친구들과 어울리다 폭행사건에 연루됐습니다. 강간치상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았죠. 도망 다니던 저는 81년 붙잡혀 교도소에서 몇 개월간 살았어요. 하지만 그 후론 다시 실수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며 살았는지 모릅니다. 경찰서 근처에도 갈 일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이놈의 전과 기록은 무덤까지 따라올 모양이네요. 택시기사와 버스기사로 20년 가까이 살아오며 ‘무사고 경력’을 자랑하는데…. 20년 전의 폭력 전과와 무사고 운전 자격증이 사실 무슨 상관입니까?”

    이씨는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경찰청장을 상대로 ‘실효된 전과 때문에 영년표시장 수여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진정서를 제출했고, 경찰청이 이를 받아들여 다행히 구제됐다. 경찰청은 지금까지 영년표시장 선발지침에서 파렴치범 등의 전력자들은 예외 없이 제외했으나, 실효된 전과자는 구제하기로 지침을 바꾸었다. 그러나 이씨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는 전과 기록이 행여 자신의 자녀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는 “20년 넘게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과거의 전과 기록을 완전히 말소해주는 법은 없느냐”고 항변했다.

    “교도소에서 딴 자격증 쓸데없어요”

    한국갱생보호공단 서울지부의 텅 빈 컴퓨터실. 국가의 지원이 끊겨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전과자들을 포용하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천주교 서울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의 이영우 신부는 “심장과 마음의 거리는 멀어서 일반인들이 전과자를 채용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재소자 돕기 후원회 활동에 참가하는 사람들조차 이들과 거리를 두고 돕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는 전과자들에 대한 일반인의 정서적 반감을 탓하기보다 먼저 국가가 이들을 포용하고 홀로 설 수 있게 뒷받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전과자들도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치권의 핵심이었던 범털부터 기업가, 경제사범, 양심수, 폭력범들까지 말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결손가정에서 태어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성장하고, 출소한 이후에도 돌아갈 곳이 없는 가난한 전과자들입니다.”

    명동성당에서 전과자들의 취업과 사회 적응에 관한 상담을 해주고 있는 전민호 간사의 얘기다. 그는 서울역 지하보도의 노숙자 중 절반은 받아줄 곳이 없어 떠도는 전과자들이라고 했다. 교회나 성당 같은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출소자 쉼터도 무의탁 전과자들을 모두 수용하기엔 역부족이다. 취업과 자립을 포기한 이들은 다시 쉽게 교도소행을 택한다.

    선진국에 비해 사회적응 프로그램 열악

    법무부 보호관찰과의 한 관계자는 “현재 무의탁 출소자 수용시설은 한국갱생보호공단과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5개의 쉼터가 있다. 그러나 국가가 운영비 약간을 지원하는 한국갱생보호공단의 전국 17개 지부에 머물 수 있는 인원이 530~540명에 그치며, 특히 사단법인으로 운영되는 출소자 쉼터의 경우 전과자에 대해 갖는 반감 때문에 일반인으로부터 지원금조차 제대로 제공받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새 출소자 쉼터의 건립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천주교 서울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는 최근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평화의 집’을 허물고 다른 장소에 쉼터 시설을 마련했다. 쉼터가 거의 완공단계에 들어섰지만 관계자들은 기자에게 위치를 가르쳐주지 않으려 했다. 인근 주민의 반대에 부딪히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특히 선진국에 비해 교도소-사회 연계시설과 사회적응 프로그램이 열악한 점은 재범률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법무부에서 발행하는 범죄백서에 따르면 1980년대 30%에 지나지 않던 전과자 재범률이 2000년도에 63%로 두 배 넘게 늘어났다. 한국갱생보호공단의 김석기 서울 지부장은 “한국갱생보호공단에 머무르고 있는 출소자 재범률은 5%가 안 되지만, 이곳을 거쳐간 전과자 재범률은 20%대에 이른다”면서 “갱생보호원이 출소자들의 재범률을 낮추고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돕고 있지만, 수용 인원의 한계와 열악한 시설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교도소에서 실시되는 사회적응 교육 역시 ‘형식’에 그친다는 비판이 많다. 교도소에서 취득한 대부분의 자격증이 무용지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교도소에서 딴 자격증 쓸데없어요”

    연쇄살인 용의자 유영철의 변호를 맡은 차형근 변호사.

    현재 택시기사로 일하며 자립을 꿈꾸는 출소자 이모씨(51)는 “전과자가 가진 능력과 자격증을 바탕으로 취업을 맞춤 알선해주는 전과자 산업인력공단의 건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전과자의 자립을 돕는 외국의 시스템은 참고해볼 만하다. 미국은 연방정부와 계약에 의해 민간이 위탁 운영하는 ‘중간거주지(Halfway House·행형시설과 사회의 중간)’ 제도를 활용해 재소자들의 사회 정착을 돕고, 영국은 석방 10개월 전 직업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하는 ‘하우징(Housing)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 역시 국가가 지원하는 117개의 출소자 갱생시설을 운영해 출소자들의 성공적인 자립과 사회 적응을 돕는다.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 사무총장으로 최근 연쇄살인 용의자 유영철씨 변호를 자청한 차형근 변호사는 2001년 출소자 쉼터인 ‘평화의 집’에서 한 달간 공동생활을 하는 등 전과자 돕기에 앞장서 왔다. 전과자와의 동거가 꺼림직하지 않았을까. 처음엔 그들에게 구타당하는 건 아닐까, 물건을 도둑맞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을 갖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들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는 게 차변호사의 얘기다. 그는 전과자를 ‘어둠의 자식’으로 치부하기에 앞서 이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기다려주는 것이 재범률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을 단지 개인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책임은 없는지 한 번 되돌아봤으면 합니다. 전과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없이 편견만 존재하는 곳이 우리 사회니까요. 전과자들은 ‘적응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3년 이상의 심리적·직업적 교화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의 사회적응을 도와야 합니다.”

    출소자들의 사회 적응을 돕는 갱생시설

    다른 소수자들과 달리 전과자들이 머무를 수 있는 쉼터는 턱없이 부족하고 열악하다. 오갈 데 없는 형편에 처한 출소자가 머무르며 자립 근거를 마련하는 생활관과 쉼터는 다음과 같다.

    -한국갱생보호공단

    무의탁 출소자들이 생활할 수 있는 주거형 생활시설을 갖추고 있다. 출소자들에게 자립할 기회를 제공해 사회 복귀를 촉진하는 갱생보호사업 수행기관으로 전국에 모두 17개 지부가 있다. 갱생보호공단 서울지부 02-2695-8720.

    -서울 면목동 담안선교회

    과거 전과 6범이었지만, 1980년 재소자들을 위해 기도하던 군인 가족에게 감동을 받아 신앙인이 되기로 결심한 임석근 목사. 그는 20년째 출소자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머무를 곳 없는 출소자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02-435-7683

    -천주교 서울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서울 명동성당 안에 있으며, 무의탁 출소자들에게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이들의 취업을 돕고 있다.02-776-7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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