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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손익계산서

위임은 짧고 하락은 길다…국민연금·KCC 2개월 사이 1조5000억 원 날려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손익계산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손익계산서
9월 1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앞두고 두 회사의 합병에 찬성한 국민연금과 KCC가 최근 2개월간 두 종목에서만 1조5000억 원 가까운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재벌 정보 사이트 재벌닷컴이 8월 26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삼성물산 지분 11.61%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6월 25일 기준 주식평가액이 1조2202억 원에서 2개월 만인 8월 25일에는 8304억 원으로 3898억 원 감소했다(표 참조). 제일모직 보유 주식 가치 역시 같은 기간 1조1794억 원에서 9109억 원으로 2685억 원 감소했다. 국민연금은 제일모직 지분 5.04%를 보유하고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주가가 하락하며 국민연금의 투자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정치권에서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연금이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 들러리를 서준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한 야당 의원은 “올 국정감사에서 국민연금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찬성 배경과 이유를 들여다볼 것”이라고 예고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위한 주주총회(주총)를 앞두고 삼성물산 자사주를 매입하며 ‘백기사’를 자처한 KCC 역시 합병 주총을 전후한 2개월 사이 두 회사의 주가 하락으로 막대한 주식평가액 감소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 토막 난 주가



삼성물산 자사주를 주당 7만5000원에 매입한 KCC는 2개월 사이 7219억 원(6월 25일)에서 4264억 원(8월 25일)으로 주식평가액이 2955억 원 감소했다(표 참조). 또한 제일모직 지분 10.19%를 보유한 KCC는 주가 하락으로 2개월 만에 2조3856억 원에서 1조8425억 원으로 5431억 원 주식평가액 감소를 기록했다. 재계 한 인사는 “부적절한 투자로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면 그에 대한 책임이 따라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엘리엇)의 경우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함으로써 막대한 주식평가액 감소를 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엘리엇이 만약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2개월 만에 2392억 원 손실을 떠안을 상황이었으나, 엘리엇이 삼성물산 보유 지분 7.13% 가운데 4.95%에 대해 5만7234원에 청구권을 행사함으로써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상당 부분 회피한 셈이 됐다.

삼성물산 주가는 합병 발표 이후 엘리엇이 합병에 반대하면서 표 대결로 치달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크게 올랐다. 6월 8일에는 한때 연중 최고치인 8만400원을 기록하기도 했다(그래프1 참조). 그러나 7월 17일 임시주총에서 합병안이 통과된 뒤 삼성물산 주가는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8월 25일에는 한때 연중 최저치인 4만3550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찬성한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은 삼성물산 주가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심지어 합병에 반대한 삼성물산 주주가 행사할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액 5만7234원보다 주가가 20% 이상 밑돌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까지 나왔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손익계산서
애국심에 흔들린 값비싼 대가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찬성한 주주는 합병 이후 새로 받게 될 통합 삼성물산 주가에 따라 손실과 이익이 크게 엇갈린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은 1 대 0.35. 삼성물산 주식 100주를 제일모직

35주와 맞바꾸는 방식으로 합병이 이뤄진다. 기존 삼성물산 주식은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위해 8월 27일부터 9월 14일까지 주식거래가 정지되고, 9월 15일에 통합 삼성물산 주식을 새로 교부받는다. 이 때문에 옛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의 이익은 통합 삼성물산 주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게 된다.

주식매수청구액이 5만7234원이었다는 점에서 1 대 0.35의 합병 비율에 따라 계산해보면 옛 삼성물산 주주들은 통합 삼성물산

1주가 최소 16만3525원 이상 돼야 합병 찬성에 따른 손실을 피할 수 있다. 즉

9월 15일 통합 삼성물산 주가가 16만3525원을 넘기지 못하면 합병에 반대하고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 것보다 못한 손실을 떠안게 되는 셈이다.

모 대기업 인사는 “제일모직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지 않는 한 삼성의 ‘애국심 마케팅’에 마음이 흔들려 합병 찬성에 위임장을 써준 삼성물산 소액주주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7월 17일 주총에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의결된 이후 소액주주들은 주가 하락으로 큰 손실을 보고 있지만, 제일모직 대주주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 출범을 계기로 삼성그룹 지배권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된다. 제일모직 지분 23.23%를 보유한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합병 이후 통합 삼성물산 지분 16.54%를 보유하게 된다. 더욱이 통합 삼성물산 출범으로 제일모직에는 없고 삼성물산에는 있던 삼성전자 지분 4.1%에 대한 지배권도 확보한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손익계산서
이번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추진 과정은 흡사 정치권의 선거를 연상케 한다. 투표일을 앞두고 서로가 유권자(주주)의 이익을 지키겠다며 앞다퉈 주장한 것도 그렇고, 막상 투표 결과가 나온 뒤 다수 유권자가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될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현실 또한 그렇다.

7월 17일 합병 주총을 앞두고 삼성물산은 주요 언론을 통해 다음과 같은 광고를 게재하며 대대적인 세몰이에 나선 바 있다. 그때 이 광고를 보고 마음이 흔들렸던 삼성물산 주주들은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삼성물산 주주님들과 함께 이겨내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지지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중략)

주주님들의 주식 단 한 주라도 저희에게 위임해주시면 큰 힘이 되겠습니다.

대표전화로 연락주시면 저희들이 일일이 찾아뵙고 위임절차를 진행하겠습니다.

삼성물산은 이번 합병을 통해 바이오 사업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 기업가치와 주주이익을 극대화하는데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간동아 2015.08.31 1003호 (p48~49)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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