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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훈의 자연주의 캠핑 | 제주 서남부

에메랄드빛 바다에 찾아온 봄의 전령

올레길 등 자연 · 역사유적 즐비 이색 바위, 모래해변 절경 연속

  •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naver.com

에메랄드빛 바다에 찾아온 봄의 전령

에메랄드빛 바다에 찾아온 봄의 전령

산방산 근처 대정들녘에 유채꽃이 활짝 피었다.

제주는 지금 봄빛이 완연하다. 특히 최남단 섬 마라도와 마주 보는 서남부 지역은 이미 눈부신 봄날이다. 이따금씩 볼을 스치는 바람도 어머니 손길처럼 따사롭다. 나른한 봄볕 아래 제주 들녘은 초록과 노랑 일색이다. 잘 자란 마늘과 보리가 파릇한 초록빛을 띠고, 거뭇한 돌담에 둘러싸인 밭에서는 노란색 유채꽃이 바다처럼 일렁인다. 이렇듯 아름답고 서정적인 제주 서남부 바닷가를 따라 제주올레 10코스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제주올레 10코스는 2011년 ‘스위스-제주올레 우정의 길’로 명명되기도 했다. 이 코스와 자매결연을 한 스위스 하이킹 코스는 ‘레만 호 라보(Lavaux) 와인 길’이다. 라보 지역의 계단식 포도밭을 가로지르는 길인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을 정도로 아름답다.

제주올레 10코스 절경들

제주올레 10코스는 총 25개 코스와 425km에 이르는 제주올레 가운데 7코스(서귀포 외돌개~월평마을 아왜낭목)에 이어 두 번째로 인기가 많다. 많은 올레꾼이 10코스를 찾는 이유는 오름, 주상절리, 해식동굴, 검은모래 해변, 지질 명소, 선사유적, 연대(煙臺), 일제강점기 군사유적 등 제주만의 독특한 자연과 역사유적을 두루 섭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길을 자분자분 걷는 것만으로도 제주의 자연과 역사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진다.

이맘때쯤 제주올레 10코스는 싱그러운 봄맞이 길이다. 겨울의 긴 터널에 갇혀 있던 사람들의 심신을 순식간에 춘광춘색이 완연한 신세계로 옮겨놓는다. 길은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금모래해변에서 시작되고, 대정읍 모슬포항의 하모체육공원에서 끝난다. 길이 15.5km의 이 코스를 섭렵하는 데는 4~5시간쯤 걸린다.



제주올레 9코스의 종점이자 10코스의 시점인 화순금모래해변은 늘 한적하다. 금빛 모래해변 저편에는 산방산(395m)이 있고, 검푸른 바다 건너편으로는 마라도가 아스라이 보인다. 가파도는 늘 그대로다. 넓은 모래해변을 가로지르고, 작은 시내를 이룬 용천수 물길을 건너면 나직한 바위산 초입의 계단에 올라선다. 바위산을 넘어온 길은 숲과 해변을 번갈아 지나게 된다. 바닷가 전망대에 서면 이색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에메랄드빛 바다 위에 검은 주상절리 암벽이 불끈 솟아올랐다. 산방산 아래 항만대 해안에서는 고운 모래해변과 거친 갯바위지대가 공존하는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항만대 해안 서쪽에는 제주의 대표적인 해안 절경이자 지질 명소 가운데 하나인 사계리 용머리해안(천연기념물 제526호)이 있다. 용머리해안과 산방산 사이 전망 좋은 언덕에는 산방연대가 복원돼 있고, 그 아래에는 하멜기념비가 묵묵히 태평양을 굽어보며 서 있다. 조선 효종 4년(1653)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의 헨드릭 하멜(?~1692)과 동료 36명을 태운 상선 스페르웨르호가 바로 이 앞바다에서 좌초됐다. 현재 용머리해안 탐방로의 초입에는 하멜상선전시관이 있다. 범선 모양의 이 전시관은 하멜이 타고 온 스페르웨르호와 같은 형태의 범선을 80% 크기로 복원한 것이다.

용머리해안과 사계포구 사이 설쿰바당 해변은 특이하게도 갈색 모래와 검은색 모래가 뒤섞여 있다. 게다가 해변 맨 동쪽 갯바위에는 한겨울에도 파릇파릇한 해조류가 융단처럼 뒤덮여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사계포구에서 송악산 근처 마라도 유람선 선착장까지는 제주 최고 해안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히는 ‘형제해안로’가 3km쯤 이어진다.

형제해안로 중간쯤에 형성된 갯바위지대에서는 2001년 8월 대규모 자연사 유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제주사람 발자국과 동물 발자국 화석산지’(천연기념물 제464호)로 명명된 이 유적에서는 약 1만5000년 전의 사람 발자국 화석 500여 개와 함께 새, 노루, 코끼리, 사슴 등 동물 발자국 화석이 수천 점이나 확인됐다.

에메랄드빛 바다에 찾아온 봄의 전령

용머리해안과 사계포구 사이 설쿰바당해변을 지나는 올레꾼들. 단산(바굼지오름) 정상에서는 대정들녘과 제주 남쪽 바다가 상쾌하게 조망된다. 둘레 500m, 깊이 80여m 이중분화구로 이뤄진 송악산 정상(왼쪽부터).

가슴 아픈 역사 유적들

제주올레 10코스의 형제해안로 구간에서는 줄곧 형제섬과 송악산을 바라보며 걷게 된다. 송악산 기슭에서는 아찔한 절벽 위에 놓인 데크 길을 따라간다. 그 길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광이 인상적이다. 푸르디푸른 바다에 희끗희끗한 포말이 명멸을 거듭한다. 멀리 태평양에서부터 밀려오는 파도가 연신 거품을 물고 들이친다. 절벽 아래에 부딪히는 파도가 굉음을 쏟아내면 지축을 흔드는 듯하다. 그래서 제주 토박이는 송악산을 ‘절울이오름’이라 부른다.

올레길만 따라가면 해발 182m 송악산 정상엔 올라설 수 없다. 하지만 그곳을 지나칠 수는 없다. 둘레 500m, 깊이 80여m의 이중분화구로 이뤄진 송악산 정상은 제주 서남부 지역의 최고 천연전망대다. 시야가 사방으로 거침없다. 남쪽 바다에는 ‘국토의 막내둥이’ 마라도와 가파도가 떠 있고, 북쪽으로는 드넓은 대정들녘과 모슬봉이 손에 잡힐 듯하다. 동북쪽으로는 산방산과 한라산, 서북쪽으로는 알뜨르비행장터와 모슬포항, 섯알오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주올레 10코스가 지나는 섯알오름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고사포진지와 탄약고가 자리했던 곳이다. 6·25전쟁이 일어난 직후 예비 검속으로 체포된 민간인 212명이 국군 해병대 모슬포부대에 의해 학살된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 사건 발생 6년 8개월 뒤인 1957년 4월에야 수습된 유골은 신원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유족들은 유골을 적당히 나눠 무덤 132개를 만들고, 모든 유족이 희생자 132명을 한 조상으로 모실 것을 합의했다. 그렇게 해서 송악산 북동쪽 사계리 들녘에 ‘백조일손지묘’가 생겼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섯알오름을 내려서면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의 알뜨르비행장이 있던 들녘에 들어선다. 알뜨르비행장은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할 즈음 완공됐다. 당시 이곳에서 발진한 일제의 폭격기가 동중국해를 가로질러 중국 상항이까지 날아가 작전을 수행했다고 전해진다. 2차 공사가 마무리된 45년에는 일본 본토 사세보에 있던 해군항공대원 2500여 명과 전투기 25대가 추가로 배치됐다. 자살공격대인 가미카제 대원들도 여기서 비행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 알뜨르비행장터에는 20여 개의 격납고 잔해가 산재해 있다. 비행장 활주로였던 들녘은 감자, 보리, 당근, 콩 등이 자라는 문전옥답으로 탈바꿈했다. 한겨울에도 기온이 따뜻해 마늘, 보리, 양배추, 감자 등이 파릇파릇하다. 알뜨르비행장터를 지나면 제주올레 10코스의 종점인 모슬포항이 지척이다. 길은 다시 바닷가 솔숲과 인적 뜸한 하모해수욕장을 지나 모슬포항의 종점에 닿는다.

에메랄드빛 바다에 찾아온 봄의 전령

여느 향교와는 사뭇 다른 정취와 풍경을 지닌 대정향교(왼쪽). 일제의 알뜨르비행장이 자리했던 대정들녘에는 아직도 비행기 격납고 잔해가 남아 있다.

대정들녘 단산에 서니…

제주올레 10코스는 제주 최대 평야지대인 대정들녘을 거쳐 간다. 추사 김정희(1786~1856)가 9년 동안 유배생활을 한 대정들녘에는 겨울이 없다. 한라산과 중산간지대의 드넓은 초원이 새하얀 설원으로 변신하는 겨울날에도 싱그러운 초록빛만 가득하다. 이 들녘에서는 1월 중순부터 3월 중순쯤까지 야생 수선화가 피고 지기를 거듭한다. 자동차가 분주하게 오가는 도로변이나 양지바른 바닷가 언덕에도 피어 있고, 들녘 밭둑이나 무덤가에서도 은밀히 피고 진다. 관상용으로 들여온 서양 수선화에 비해 꽃향기가 훨씬 더 진하고 빛깔도 고혹적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추사는 이곳의 야생 수선화를 유달리 어여삐 여겼다고 한다.

대정들녘 한가운데에 솟은 단산(바굼지오름 · 158m)도 전망 좋기로는 송악산에 뒤지지 않는다. 산방산과 송악산 사이에 있는 숱한 민가와 사통팔달의 길들, 칼로 자른 듯한 형제섬 등이 한달음에 닿을 듯 가깝게 보인다. 바로 아래에는 주변 풍광과 분위기가 매우 독특한 대정향교가 있다. 산중 절간처럼 늘 고즈넉하면서도 내 집처럼 푸근한 느낌을 주는 향교다. 경내에는 커다란 팽나무와 소나무가 든든하게 뿌리를 박고 서 있다. 추사의 대표작품인 ‘세한도’에 그려진 소나무의 실제 모델이 이 소나무라는 이야기도 있다. 대정향교뿐 아니라, 눈에 들어오는 풍경마다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봄날의 짧은 햇살은 어느새 주홍빛으로 바뀌었지만, 발길이 선뜻 되돌려지지 않는다.



여행정보

● 제주올레 10코스의 캠핑장 이용 안내

에메랄드빛 바다에 찾아온 봄의 전령

화순금모래해변 주차장 옆에는 캠핑하기 좋은 데크가 있다(왼쪽). 모슬포항 ‘부두식당’의 갈치구이.

제주 서남부 지역에 속하는 서귀포시 대정읍과 안덕면에는 정식 캠핑장이 없다. 하지만 화순금모래해변에서는 캠핑이 가능하다. 피서철에는 물론이고, 요즘 같은 비수기에도 캠핑을 즐기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 식수는 바로 옆 샘터와 가게에서 구할 수 있고, 깨끗하게 관리되는 공중화장실은 연중 개방돼 있다. 만조 때도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 백사장 안쪽에 텐트를 설치할 수 있지만, 최고 명당은 주차장 옆 작은 데크다. 서너 개쯤 되는 이곳 데크는 2인용 알파인텐트를 설치하기에 알맞다. 캠핑장비가 없거나 캠핑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은 바로 앞쪽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면 된다.

● 숙식

화순금모래해변의 주차장 근처에 조이풀게스트하우스(064-792-5551), 두그루하우스(064-900-9584), 금모래해변펜션(010-6508-7554) 등이 있다. 사계리와 송악산 사이 형제해안로 주변에도 송악리조트(064-794-6307), 사이게스트하우스(064-792-0042), 바닷가하우스(064-794-0977), 올레친구펜션(010-3659-2158) 등의 숙박업소가 즐비하다. 제주올레 10코스 종점인 모슬포항에도 잠게스트하우스(010-5094-4502), 남강모텔(064-794-2150), 황토펜션(064-794-5975), 대정게스트하우스(064-792-6666) 등을 비롯한 숙박업소가 많다. 우리나라 최남단 어업전진기지인 모슬포항에는 내로라하는 맛집이 즐비하다. 그중 부두식당(생선회 · 조림/ 064-794-1223), 미영이네식당(고등어회/ 064-792-0077), 홍서방(해물짬뽕/ 064-794-9555), 수눌음(방어요리/ 064-794-0025), 옥돔식당(보말칼국수/ 064-794-8833), 항구식당(자리물회/ 064-794-2254) 등이 권할 만하다. 형제해안로에서는 텐피자(피자/ 064-792-0033), 따미가(버거 · 감자튀김/ 070-7753-8882), 진미명가(생선회/ 064-794-3639), 사계바다(통갈치구이/ 064-794-5501) 등이 맛집으로 소문났다.

● 가는 길

제주공항 → 신제주입구 교차로(우회전) → 노형로터리(직진) → 평화로(1135번 지방도) → 서광2교차로(화순, 서광동 방면 좌회전) → 화순리 사거리(직진) → 화순금모래해변



주간동아 2015.03.09 978호 (p58~60)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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