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3

2015.01.26

선진국, 기준임금 문제 어떻게 풀었나

유럽은 노사 자율, 미국·일본은 법제화…소모적이고 무책임한 소송전 사라져야

  •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jis-park@daum.net

    입력2015-01-26 09: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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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진국, 기준임금 문제 어떻게 풀었나

    2013년 12월 18일 양승태 대법원장(가운데)이 통상임금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를 하기 위해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1월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현대자동차(현대차) 통상임금 소송에 대한 1심 판결을 내렸다. 정치적 사건이나 엽기적 사건이 아닌 노동 관련 소송 1심임에도 이 판결은 국민적인 관심의 대상이 됐다. 첫째 이유는 소송액 규모가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컸기 때문이다. 만약 원고(현대차 노동조합) 측 주장대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피고(현대차)가 추가로 지급해야 할 미지급 임금이 5조 원에서 최대 13조 원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세간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둘째 이유는 2013년 12월 대법원이 통상임금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놓은 뒤에도 여진(餘震)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내려진 하급심 판결 중에는 대법원의 판결 취지와 다른 결론을 내린 것도 더러 있다. 그 때문에 이 사건 판결 내용이 향후 관련 소송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여겨졌고, 이에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대차 노사가 이미 통상임금을 포함해 임금체계 전반에 대한 개선안 마련 논의를 시작한 상태라는 것도 이 판결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1심 판결 결과가 노사협상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기 때문이다. 나아가 현대차 노사협상이 어떻게 귀결되느냐에 따라 다른 기업의 임금체계 개선 협상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점도 이 판결에 많은 이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됐다.

    정기상여금이나 여러 명목으로 지급되는 수당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려면, 소정 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으로 지급돼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결의 핵심 내용이다. 이 가운데 고정성 문제가 현재 진행 중인 대부분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핵심 쟁점이라 할 수 있다.

    비정상적 임금체계가 갈등 유발



    고정적 임금은 그 명칭과 관계없이 임의의 날에 소정 근로시간을 채운 근로자가 그다음 날 퇴직한다 하더라도 그 하루의 근로에 대한 대가로 당연하고도 확정적으로 지급받게 되는 최소한의 임금을 가리킨다. 그런데 회사가 정기상여금을 지급일 당시 재직자에게만 지급하고 퇴직근로자에게는 지급하지 않는다든지, 상여금 지급 기간 중 최소 근무일수를 충족한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는 경우에는 고정성을 갖춘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해석이다. 이번 현대차 사건에서도 문제가 된 부분은 상여금이 지급되는 2개월 동안 15일 이상 근무해야 상여금을 준다는 지급 제외자 규정이었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상여금이) 일정 근무일수를 충족해야 한다는 추가적이고 불확실한 조건을 성취해야 비로소 지급되므로 고정성이 인정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제시한 통상임금 판단 공식을 충실히 따랐다. 이 판결처럼 하급심이 대법원의 판단 취지를 존중해 일관성 있게 판결한다면 최소 수백 건에 이르는 다른 통상임금 소송에서도 결과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으로 문제가 전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유사한 소송이 계속 제기될 테고, 노측이든 사측이든 1심법원의 판결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항소와 상고를 제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이번 판결 뒤 현대차 노동조합위원장이 유감을 표명했다. 같은 회사 소속 근로자임에도 통상임금의 범위가 다르게 판결된다면 쉽게 납득되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원인은 법원 판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오랜 기간 굳어진 우리 임금체계의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본급 비중은 낮고 상여금과 수당 비중은 비정상적으로 높게 형성돼온 관행이 문제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임금 구성과 체계를 노사가 스스로 혁신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기상여금을 모두 통상임금으로 인정해달라고 소를 제기하는 것은 문제해결의 순서가 잘못된 것이다.

    법률 제정 vs 노사합의

    선진국, 기준임금 문제 어떻게 풀었나

    2014년 8월 현대·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이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사옥 앞에서 통상임금 확대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노사관계의 사법화(司法化)를 초래하는 소모적이고 무책임한 소송은 바람직하지 않다. 판결을 통해 합리적이고 균형적인 이익 조정이 행해질 수 있다면 모를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재판부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이라고 하든, 아니라고 하든 그것으로 사태가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마다 지급 조건에 따라 통상임금 범위가 다르게 결정되면 노사 간에는 물론 노노 간에도 부당한 이익불균형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미래지향적이고 공정한 이익 조정을 위해서는 결국 법률을 통해 통상임금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해법을 구하기 전 우리보다 노동법 역사가 오래된 선진국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통상임금 소송이 거의 이슈가 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볼 일이다. 구체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초과근로나 휴일근로에 대해 할증임금을 지급하는 관행은 대부분의 나라가 갖고 있다.

    물론 기준임금을 정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하나는 단체협약을 통해 노사가 자율적으로 기준임금을 정하는 방식이다. 독일, 영국이 이에 해당한다. 이 두 나라는 법령에서 연장근로 등에 대한 가산임금액의 산정 기준이나 할증률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연장근로에 대한 보상 방식과 기준임금의 결정 자체를 노사 간 단체협약으로 정하거나 사업장의 종업원 대표와 사용자가 자율적으로 정한다. 독일의 임금테이블에는 임금그룹별 시간당 기준임금이 명시돼 있다.

    다른 하나는 미국, 일본의 경우처럼 할증임금 계산을 위한 기준임금을 법령으로 정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경우 각 임금항목별로 기준임금 산입 여부 및 산입 제외 금품의 범위를 명확히 하고 있다. 특히 보너스처럼 초과수당 산출 방식이 복잡한 사안에 대해서도 매우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일본은 기준임금에서 제외되는 금품의 기준을 하위법령에서 구체화한다. 가족수당, 통근수당, 별거수당, 자녀교육수당, 주택수당, 임시로 지급된 임금, 그리고 1개월을 넘는 기간마다 지급되는 임금 등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나라가 어떤 방식을 택하든 그 전에 할 일은 복잡하고 비정상적인 임금체계를 명확하게 만들고 단순화하는 것이다. 비정상적인 임금체계를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일관성 있는 기준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관성 있는 기준 마련이 어렵다면 대안으로 노사 합의에 의해 기준임금을 정하거나 제외 금품의 범위를 정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임금 구성이나 체계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제 더는 비정상적인 소송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노사 당사자가 스스로 합의해놓고 이를 뒤집어 소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일반인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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