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2

2014.11.10

제육에 소주 열나는 속에 냉면 들이켜기

서울 면집의 육고기들

  •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4-11-10 1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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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육에 소주 열나는 속에 냉면 들이켜기

    ‘을지면옥’의 메밀냉면과 제육. ‘성천막국수’의 제육(왼쪽부터).

    냉면집이나 막국숫집에 가면 반드시 따라 나오는 고기 음식들이 있다. 서울 충무로 ‘을지면옥’ 제육은 최강의 부속 음식이다. 이 집에서 제육을 삶는 방식은 대만식 제육 삶기와 비슷하다. 고기를 100% 삶는 게 아니라 80% 정도 삶은 뒤 불을 줄여 천천히 나머지 20%를 삶는다. 그러면 육즙이 안에 남아 있어 고기 조직에 밀도가 생기면서 고기 향이 강해지고 식감은 부드러워진다. 요즘 서양에서 유행하는 수비드(밀폐된 비닐봉지에 담긴 음식물을 미지근한 물속에서 오랫동안 데우는 조리법)와도 유사하다. ‘을지면옥’ 제육은 깊고 그윽한 맛과 부드러운 질감이 잘 결합된 음식이다.

    ‘을지면옥’ 제육에 술을 한잔 곁들이면 고기와 술맛이 더 좋아진다. 약간의 취기는 개운하고 시원한 메밀냉면 한 그릇으로 푼다.

    답십리 ‘성천막국수’는 막국수와 제육을 같이 먹어야 제맛이 난다. 참기름과 매콤한 양념장을 얹은 비빔막국수와 된장 향이 은근하게 밴 제육을 얇은 무짠지에 얹어 먹는다. 국수와 고기, 채소가 결합해 면의 매끄러움과 고기 질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 집은 막국수 육수로 동치미 국물만 사용한다. 일부러 군내를 낸 동치미는 처음 접한 사람은 기겁할 수도 있지만, 제육을 얹어 먹으면 맛이 훨씬 순해진다. 막국수 식당에서 자주 사용하는 사이다를 넣지 않아 탄산이 내는 청량감과 단맛은 없지만 날이 추워지면 한 번 도전해볼 만한 고전적인 맛이다.

    남대문시장 ‘부원면옥’은 닭무침이 유명하다. 닭을 삶아 식힌 뒤 손으로 북북 찢어 설탕과 고춧가루로 무쳐내는 닭무침은 닭고기의 식감이 살아 있고 양념은 자극적이지만 과하지 않다. 달달한 맛 덕에 처음 먹는 사람도 큰 거부감이 없다.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안주다. 맑은 돼지 육수에 원시적인 면발이 좋은 냉면은 후면(後麵)으로 그만이다.

    제육에 소주 열나는 속에 냉면 들이켜기

    ‘남포면옥’의 어복쟁반.

    따듯한 음식이 그리우면 을지로 ‘남포면옥’ 어복쟁반을 찾으면 된다. 커다란 쟁반을 불판 위에 올려놓고 양지나 뱃살 같은 쇠고기와 채소를 같이 먹는 일종의 전골이다. 평양 냉면집들에서는 빠지지 않는 메뉴였다. 어복이라는 단어 때문에 생선을 연상하는 사람이 많지만, 어복은 어북의 오기 내지는 사투리에 가깝다. 어북은 소의 뱃살 부분을 말하는 단어로 평양에서 주로 사용한다. 지금도 평양에서는 어북쟁반을 즐겨 먹는다.



    장충동 ‘평양면옥’은 평안도식 커다란 만두가 유명하다. 만두피도 잘 숙성돼 맛있다. 큼직한 만두를 갈라 먹다 보면 주요리인 냉면이 나온다. 을지로 ‘우래옥’의 선주(先酒) 안주는 평양식 불고기다. 육수가 대세가 돼버린 서울식 불고기와 달리 평양식은 국물도 없고 양념을 슴슴하게(심심하다의 북한 말) 굽기 직전에 한다. 평양 시절부터 남한에 뿌린 내린 지금까지 냉면과 불고기를 담당하는 주방장이 따로 있을 정도로 ‘우래옥’에서 불고기의 비중은 크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올 때 소년과 청년이었을 노인들은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우래옥’ 불고기의 주요 고객이다.

    약수동 ‘만포막국수’의 전채 고기 요리는 닭백숙이다. 잘 삶은 커다란 닭백숙은 단맛이 난다. 살코기도 푸석하지 않고 부드러우며 양도 많다. 숨을 죽인 부추와 파를 양념장에 곁들이면 먹기가 한결 수월하다. 다 먹고 나서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말아 낸 메밀국수 한 그릇을 먹으면 독특한 우리 면 문화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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