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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범어 전문가 신미대사 훈민정음 프로젝트 숨은 설계사 ”

인터뷰 l “한글 탄생의 주역은 신미(信眉)대사” 주장하는 작가 정찬주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범어 전문가 신미대사 훈민정음 프로젝트 숨은 설계사 ”

“범어 전문가 신미대사 훈민정음 프로젝트 숨은 설계사 ”
“훈민정음은 절에서 태어났다.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을 창제한 사람은 조선 전기 승려 신미(信眉)대사다.”

중견작가 정찬주(62·사진)의 신간 소설 ‘천강에 비친 달’은 이런 도발적 주장을 담고 있다. 유교국가 조선의 군주 세종이 성리학 경전을 백성에게 널리 보급하기 위해 집현전 학사들과 더불어 문자를 창제했다는, 한글에 대한 기존 상식을 뿌리부터 흔드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팩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정 작가는 “이 두 가지 내용만큼은 사실(史實)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믿는 구석’은 ‘조선왕조실록’(실록) 등 각종 사료다.

유난히 세종의 역할 강조

정 작가는 오래전부터 훈민정음 탄생 과정에 관심을 둬왔다고 했다.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와 ‘주룩주룩’ 쏟아지는 소나기, ‘추적추적’ 낙엽을 적시는 가을비를 구분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 모든 소리와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한글의 위대함에 탄복해온 것이 첫째 이유다. 그는 “한글은 세계문자올림픽에서 우승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문자다. 이처럼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글을 모국어로 갖고 있는 건 작가로서 크나큰 영광이자 자랑”이라고 했다.

“세종대왕은 어떻게 이런 글자를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줄곧 마음에 품고 있었어요. 그런데 불가(佛家)에서 한글의 원형이 고대 인도어인 범어이며, 세종이 당대 범어 전문가였던 신미대사의 도움을 받아 한글을 창제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죠.”



정 작가의 말이다.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이는 충북 속리산 복천암의 한 선승이었다. 신미대사(1403~1480)가 오랜 시간 주석한 이 절에는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정 작가는 이로부터 출발해 실록과 신미대사 속가(俗家)의 족보, 성현의 ‘용재총화’ 등 당대 인물의 문집까지 뒤져가며 훈민정음 창제의 역사를 되짚었다.

“우선 눈에 띄는 게 실록 어디에도 한글 창제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집현전 학사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점이었어요. 왕권국가였다고는 하지만 세종의 다른 업적을 기술하는 부분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 분야에 기여한 신하의 이름이 분명히 남아 있어요. 그러나 한글만큼은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다’고 할 만큼 세종의 역할이 강조돼 있더군요.”

그렇다면 왕 혼자 이 일을 한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성종조의 예조판서 성현이 남긴 문집 ‘용재총화’에서 찾았다. 훈민정음에 대해 ‘범어로 만들어졌다’고 소개한 부분이다. 범어 전문가였던 신미대사의 속가 영산김씨 족보에는 신미대사가 집현전 학사였으며,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정 작가는 “복천암에 내려오는 구전담과 이 둘을 연결 지으니 큰 그림이 그려졌다. ‘신미대사가 범어 실력을 바탕으로 한글 창제에 기여했다. 집현전 학사로 등용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숭유억불’ 정책이 확고하던 조선 초기 사회 분위기상 모든 공을 세종에게 돌리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관점에서 실록을 읽으니 새로운 장면들이 보였다”고 했다.

훈민정음 창제 후 세종이 직접 지은 가사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 ‘달이 천개의 강에 비치듯 석가모니의 교화가 온 백성에게 드리우는 노래’라는 뜻을 담은 찬불가라는 점, 이후에도 정부가 ‘석보상절(釋譜詳節)’ 등 불교경전 번역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인 점, 집현전 학사를 위시한 대신들은 훈민정음 사용에 반대하는 상소를 끊임없이 올린 점 등이 그것이다.

실록의 기록을 보면 당대 집현전 학사 대부분은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세종의 구상 자체를 알지 못했다. 이 글자가 세상에 공개된 뒤에는 사용을 격렬하게 반대하기도 했다. 정 작가는 이 사실을 확인하며 몇 번이나 무릎을 쳤다.

“훈민정음 창제는 사대주의를 신봉하던 당대 유학자들의 뜻에 맞서는 극비 프로젝트였던 거죠. ‘비밀 결사’ 멤버는 세종과 신미대사, 당시 세자였던 문종과 수양대군, 안평대군, 그리고 정의공주 정도였어요. 이들이 남몰래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사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있게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가을부터 이를 줄기 삼아 ‘천강에 비친 달’ 집필에 들어갔다.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빚어진 유불 갈등과 왕권 대 신권의 대립은 소설에 재미를 더하는 양념으로 삼았다.

임금이 승려에게 최고의 칭호 부여

정 작가는 여러 어려움에도 세종이 끝내 한글을 완성한 것은 백성에 대한 큰 사랑 때문이었다고 믿는다.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는 쉬운 글자를 만들어낸 뒤 불교경전을 번역해 출판한 것도 그 안에 담긴 평등과 애민사상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정 작가는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 ‘아름다운 발명품’의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신미대사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실록에는 승려 신미에 대한 기록이 적잖이 남아 있다. 그가 왕실과 밀접한 인연을 맺고 큰 존경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세종실록’에는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 신미를 ‘심히 믿고 좋아하여, 높은 자리에 앉게 하고 무릎 꿇어 앞에서 절하여 예절을 다하여 공양’했다는 내용이 있다. 세조는 신미대사가 충북 복천암으로 낙향하자 그를 만나러 현지에 행차하기까지 했다.

정 작가는 “‘문종실록’에는 세종이 유언으로 신미에게 ‘우국이세 혜각존자(祐國利世 慧覺尊者)’라는 법호를 내렸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 역사에서 임금이 승려에게 준 최고의 칭호다. 유교를 국가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 사회에서 세종이 왜 신미대사를 이렇게까지 사랑했는지, 그가 어떤 부분에서 ‘임금을 보좌하고 백성에게 혜택을 줬다’는 것인지 학자들이 추적하면 분명 한글 창제를 둘러싼 드러나지 않은 역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조선세종태학원 강상원 박사 등이 훈민정음 창제에서 신미대사의 역할을 연구 중이다. 더 많은 이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 정 작가의 바람이다.

작가로서 그 물꼬를 튼 데 만족한다는 그는, 이제 오랜 세월 동안 궁구했던 세종대왕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또 한 명의 위인 이순신을 중심인물 삼아 임진왜란을 새롭게 조명하는 대하소설을 쓰는 것이다. ‘천강에 비친 달’을 준비할 때와 마찬가지로 각종 사료를 종횡무진하며 역사의 비밀을 추적 중인 그는 “한평생 작가로 살며 쌓아온 역량을 이 책에 다 쏟아부을 생각이다. 우리 역사에 바치는 당산나무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주간동아 2014.09.29 956호 (p72~73)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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