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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섭의 작은 사치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 거품도 중요

비누의 매력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 거품도 중요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 거품도 중요

경기 고양시 한 주민자치센터에서 비누 만들기 강사가 천연비누를 만들기 위해 각종 천연재료를 섞고 있다.

캘리백과 버킨백으로 유명한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에서는 비누도 판매한다. 손바닥에 들어갈 만한 동그란 베이지색 비누 양쪽에는 음각으로 ‘Hermes Paris’라고 새겨져 있다. 물론 조금 쓰다 보면 음각된 글자는 닳아서 사라지지만, 글씨가 보이지 않아도 특유의 매력적인 향기는 이 비누가 여느 비누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에르메스 고유의 주황색 상자에 포장된 이 제품은 비누치고는 꽤 고가다. “비누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써보면 안다. 어떤 이는 이 비누를 방향제로 써도 되겠다고 칭찬한다. 실제로 에르메스는 향수와 비누를 세트로 묶어 팔기도 한다.

솔직히 나도 호기롭게 에르메스 비누를 사서 일상적으로 쓰진 않는다. 선물받을 때나, 머무는 호텔에 비품으로 있을 때 쓸 뿐이다. 그렇게 아주 가끔 한 번씩 사치를 누려본다. 에르메스 비누는 유럽 특급호텔에서 생활용품으로 종종 만날 수 있다.

1개에 1만~2만 원대 고가의 비누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 거품도 중요

에르메스 비누.

누구나 하루 한두 번 이상 쓰는 것이 비누다. 세수할 때 아침저녁으로 쓰고, 화장실 갔다 오면서도 쓴다. 샤워할 때 쓰기도 하고, 심지어 머리 감을 때 비누를 쓰는 이도 있다.

비누는 생필품 가운데 하나이지만, 직접 사는 경우보다 각종 선물세트로 받는 경우가 더 많을 수 있다. 특히 치약이나 비누, 샴푸 등이 들어간 아주 고전적이면서도 가격이 합리적인 선물세트는 가장 인기 높은 명절 선물이기도 하다. 하여간 늘 가까이 있어 비누로 사치를 누려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텐데, 사실 비누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좀 좋아질 수 있다.



에르메스 비누만큼이나 비싼 비누는 꽤 많다. 록시땅, 비오템, 키엘, 더바디샵 등의 브랜드에서도 1개에 1만~2만 원 하는 비누를 쉽게 볼 수 있다. 향수 브랜드 조말론이 만든 ‘오렌지 블로섬 베스 솝’이란 비누는 2개에 6만 원이다. 블리스의 스크럽 비누는 개당 가격이 3만 원이 넘는다. 코코샤넬이 ‘럭셔리는 니즈(필요)가 충족되는 시점에 시작되는 것’이라 했던가. 생활필수품이 구비되면, 그다음엔 욕망을 위해 럭셔리를 찾고, 이는 일상의 사치가 된다.

한국인이 세수할 때 비누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지는 겨우 50여 년이 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 비누는 1956년 애경유지에서 나온 ‘미향’이었다. 물론 외국에서 들어온 수입 비누는 그전부터 부유층 사이에서 쓰였지만, 서민은 엄두도 못 낼 사치였다. 서민은 고운 쌀겨를 무명 주머니에 담아 쓰거나 팥 또는 콩깍지 삶은 물을 사용했다고 한다. 단오에는 창포에 머리를 감는 풍습이 있는데, 창포도 일종의 비누 대체재였다. 이런 천연 세정제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더 귀하고 좋지만, 과거 사람들은 비누를 더 사용하고 싶었을 것이다.

비누는 서양에서도 19세기까지 사치품으로 인식돼 비싼 세금을 부과하는 나라가 많았다. 하여간 ‘미향’은 1958년 월 100만 개 이상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셈이다. 이후 출시된 동산유지의 다이알 비누, 천광유지의 밍크 비누, 럭키의 데이트 비누 등을 나이든 세대라면 다 기억할 것이다. 나도 어릴 적 쓰던 다이알 비누를 기억한다. 금색 혹은 노란색 포장지에 들어 있던 추억의 비누 다이알은 그사이 패키지 디자인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생산, 판매되고 있다.

아마 각자 그동안 써온 비누가 하나씩 떠오를 거다. ‘아직도 그대로네’라는 광고 카피가 인상적이던 비놀리아 비누, 싱그러운 향기로 유명했던 오이 비누…. 필자가 지금까지 꾸준히 사용하는 건 도브 비누다. 우유 같은 색깔과 은은한 향이 만족스러워서다.

더러움 날려 보낸다는 ‘비루’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 거품도 중요
록시땅이나 더바디샵, 러쉬의 비누도 자주 세면대 옆에 놓는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삶의 질을 따지면서 고가 화장품이나 비누를 찾기 시작했고, 그런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손이 간 비누들이다. 얼마 전부터는 천연비누도 욕실에 자주 들어온다. 최근엔 천연재료로 직접 만든 비누를 선물로 주고받는 풍경이 흔해졌다.

비누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천연비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블로그가 많고, 동영상과 책도 많아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 다소 수고스럽지만 시간과 노력, 비용을 들여 자신이 쓸 비누를 만드는 것은 피부에 대한 작은 사치를 실천하는 행위다.

요즘은 미세먼지가 기승이고, 아토피피부염 환자도 늘어났으며, 사람들이 평소에 쓰는 화장품 종류도 많아졌다. 잘 씻어내야 할 이유가 많아진 셈이다. 흥미로운 건 요즘 비싼 비누 중에는 거품이 잘 안 나는 것이 꽤 있다는 거다. 비누에 거품이 잘 나는 건 계면활성제가 많이 들어 있다는 거다. 요즘은 이런 화학물질을 걷어내기를 원하는 소비자가 많아지고 있다.

그럼 비누라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조선시대에는 녹두가루나 창포가루를 바가지에 담아 쓰면서 더러움을 날려 보낸다는 의미로 ‘비루’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바뀌어 비누가 됐다고 한다. 영어로 비누(soap)라는 말은 고대 로마 사포 산(Mount Sapo)에서 유래했다. 사포가 소프가 된 거다.

인류 역사에 비누가 처음 등장하는 건 기원전 2800년쯤 고대 바빌론 시대다. 이때부터 동물의 지방과 재를 함께 끓여 비누 같은 형태로 만들어 썼다고 한다. 그러나 오랜 역사 동안 이를 향유한 것은 부유층이나 권력층뿐이었다.

과거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 우리는 모두 다 귀족 같은 삶을 누리는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불만이다. 꽤 잘살게 됐음에도 더 갖지 못해 속상해하는 이가 가득하다. 풍요의 시대를 살면서도 불평이 많고, 행복지수도 낮다. 어쩌면 우리에겐 돈이 아닌 마음의 풍요가 더 필요한 듯하다.

우리가 흔하게 쓰는 비누, 이것이 한때는 고가 사치품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비누를 저렴한 생필품으로만 여기지 말자는 거다. 가끔은 좀 더 비싸고 좋은 비누로 특별한 사치를 부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



주간동아 2014.08.18 951호 (p66~67)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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