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8

2014.05.19

‘밤의 여왕’ 분노보다 힘센 사랑

모차르트 ‘마술피리’

  •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tris727@naver.com

    입력2014-05-19 1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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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여왕’ 분노보다 힘센 사랑

    오페라 ‘마술피리’.

    모차르트의 마지막 징슈필(독일 노래극에서 유래한 오페라의 일종) ‘마술피리’에서 주인공 타미노 왕자는 파미나 공주를 구하려고 ‘천사 같은 세 소년’의 안내를 받아 ‘악당’ 자라스트로가 있는 사원으로 향합니다. 사원 앞에 도착하자 세 소년은 왕자에게 다음 세 가지를 당부합니다. 용기, 인내, 침묵.

    그 세 가지는 타미노 왕자가 사원에서 맞닥뜨리게 될 시험을 통과하려면 명심하고 실천해야 할 덕목이지요. 또한 그것은 지도자의 자질을 가진 자가 진정한 지도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춰야 할 요건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용기와 인내까지는 이해됩니다만, 침묵은 왜일까요?

    사원에서 타미노 왕자는 무시무시한 악한인 줄 알았던 자라스트로가 실은 정의로운 현자이자 선의와 덕망을 중시하는 사제집단을 이끄는 지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지혜의 성전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시험을 치릅니다. 그 시험에는 일종의 ‘묵언수행’이 포함돼 있는데, 침묵을 통한 겸양과 자기 내면에 대한 응시야말로 모든 수련의 기본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한 가지 더, 그 수행을 치르는 타미노가 ‘왕자’라는 사실도 함께 고려할까 합니다. 다시 말해 ‘침묵’에 대해서는 ‘지도자가 더 중시해야 할 것은 말하기보다 듣기’라는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범하기 쉬운 ‘말실수’를 경계하라는 의미도 던져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한때 기분이나 설익은 생각으로 내뱉은 말이 뜻하지 않은 실수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지요. 그리고 그 실수는 종종 부메랑이 돼 돌아오기도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에 그것은 바로잡히거나 해소되기는커녕 걷잡을 수 없이 쌓이고 번져서 결국 당사자를 짓누르고 흩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어쩌다 보니 근래에 제가 진행하는 교양강좌에서 ‘마술피리’를 다룰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방향을 조금 달리해 ‘자라스트로’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봤는데, 그러다 보니 이 ‘동화 오페라’를 대하는 자세도 조금 달라지더군요. 요즘 시국이 시국인 데다 누군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지도자가 따로 없다”고 한 말이 떠올라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 오페라의 2막에서 자라스트로가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에서 그는 어머니인 밤의 여왕의 강요 때문에 괴로워하는 파미나 공주를 위로하며 이렇게 말하지요. “이 성스러운 사원에서는 누구도 복수를 모른다오. 모두가 서로 사랑하고 원수를 용서하며, 누군가 쓰러지면 사랑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그는 친구 손에 이끌려 평화와 행복 안에서 좀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간다오.” 베이스 가수의 중후한 음성과 진지한 표정이 차분한 감명을 자아내는 명곡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밤의 여왕이 부르는 그 유명한 ‘복수의 아리아’가 나온 직후에 불려 대비를 이룹니다. 대중적 인기나 애호가 사이에서의 지명도는 그 살벌한 노래보다 현저히 떨어집니다. 일단 베이스의 음성이 소프라노의 음성에 비해 귀를 덜 자극하는 데다, 선율 흐름도 현란한 콜로라투라의 그것보다 훨씬 단조롭고 따분하게 들리는 탓이겠지요. 어쩌면 질투, 분노, 증오가 이해, 인내, 화해보다 더 힘이 세 보여서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지만은 않다고 믿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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