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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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기투합 G2 “북핵 절대 안 돼”

美·中 신대국관계 설정, 신질서 구축 한반도서 처음 적용

  • 하태원 동아일보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입력2013-06-17 10: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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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월 미국 워싱턴은 ‘세기의 회담’으로 시끌벅적했다. 워싱턴 특파원 재직 당시 만났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미국과 중국의 국교정상화 합의 이후 이뤄진 1979년 덩샤오핑의 방미(訪美) 이래 가장 중요한 양국 간 국가 이벤트”라고 단언했던 기억이 난다. 중국 국가주석으로는 14년 만의 국빈방문이던 후진타오의 방미에 대해 많은 전문가는 이른바 ‘주요 2개국(G2)’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했다. 예포 21발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잔뜩 흐린 백악관의 겨울 하늘에 게양된 중국 오성홍기(五星紅旗)가 유난히 붉어 보였다.

    하지만 6월 7~8일 열린 버락 오바마와 시진핑의 미·중 정상회담에 비하면 2년 전 ‘오·후(胡)’ 회담은 전초전에 불과했다는 시각이 많다. 그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중국 위상을 염두에 둔 말이다. ‘인민일보’ 등 중국 관영매체들은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訪中)에 비견될 ‘역사적 사건’이라고 대서특필했고, ‘스마트 파워’ 주창자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도 이에 동의했다.

    양극체제 동반자로 자리매김

    워싱턴을 떠나 캘리포니아 주 랜초미라지의 휴양시설 서니랜즈에서 넥타이를 풀고 만난 두 정상은 8시간의 만남에서 양국 문제는 물론 광범위한 국제 문제를 논의했다. 경제협력, 영토분쟁, 시리아 사태 해법, 사이버 보안 등이 주된 회담 주제였으며 미국이 ‘전가의 보도처럼’ 언급해오던 중국의 인권문제나 위안화 환율조작 같은 껄끄러운 문제는 피해갔다. 회담의 으뜸 주제는 핵 문제를 중심으로 한 ‘북한 문제’였다.

    성급한 판단이라는 반론도 있을 수 있지만 현재까지 나타난 그림을 종합해보면 미국과 중국은 새로운 국제질서 설정을 위해 일단 의기투합하는 모양새다. 오바마 행정부의 세계 전략 키워드인 ‘아시아로의 귀환(Return to Asia)’과 중국 5세대 지도자들의 국가지도 이념인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접점을 찾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중국 지도자가 신형대국관계를 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제2차 중·미 전략경제대화에서 양국이 상호존중과 협력, 조화, 협력 공영의 대국관계를 열어야 한다고 주창했으며, 지난해 부주석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시진핑도 같은 말을 했다.

    이번 랜초미라지 정상회담에서도 시 주석은 많은 시간을 할애해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인사들에게 신형대국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미국과 동등한 지위를 인정받되, 양측이 서로 대립하고 충돌하기보다 상생하고 협조하는 관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회담에 앞서 시 주석은 “태평양을 뛰어넘는 중·미 간 협력이 이번 회담 목적”이라고 밝혀 역내(域內)에서는 물론 글로벌 이슈에서도 중국이 명실상부한 규칙 제정자로 대접받고 싶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미국도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관계 발전이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 지위가 사실상 무너진 상황에서 무극체제(無極體制)의 혼란을 방치하기보다 머지않은 장래에 명실상부한 양극체제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할 중국과 손잡고 전환 과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로의 귀환정책이 자칫 대중(對中) 봉쇄 강화로 비치는 것을 우려해 공식용어를 재균형(re-balancing)으로 수정했을 정도로 중국과의 관계 설정에 신중을 기한다. 미국 내에서 여전히 황화론(黃禍論·황인종이 서구문명에 위협이 된다는 이론)에 입각한 중국 견제론이 사그라지지 않았지만, 미·중 협력강화라는 시대 흐름을 완전히 되돌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미·중 양국이 새로운 양자관계의 첫 번째 협력 주제로 북한 핵무기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로 잡았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시 주석은 회담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북핵 2원칙’을 분명히 했다. 또한 두 가지 원칙을 토대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공동 노력에도 합의했다. 북한의 지속적인 핵무기 개발에 대해 제재를 강화하는 소극적 협력을 넘어, 북한이 비핵화라는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정책 분야에서도 적극 공조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중국이 과거에도 북한 비핵화와 핵보유국 불인정 견해를 밝힌 적은 있지만, 올해 양국 정상회담이 전하는 메시지와는 확실한 온도차를 보인다. 2011년 정상회담에서 나온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북한 비핵화 요구에서 방점은 한반도 안정 쪽에 찍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북한 핵무장에 대한 용인이 중국이 바라는 미국과의 신형대국관계에 걸림돌이 되는 상황을 피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

    양국 정상은 2년 전 정상회담 당시 북한의 우라늄 농축프로그램(UEP)에 우려를 표명한다는 문구를 넣었지만 그 과정은 말 그대로 난산(難産)이었다. 회담에 앞서 중국 외교부는 북한의 UEP 프로그램을 확인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제재’를 논의할 수 있느냐며 사실상 반대 뜻을 밝히기도 했다. 당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였던 커트 캠벨은 필자와 만나 “‘UEP 우려’라는 단어 하나를 넣으려고 중국 측과 새벽까지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한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천신만고 끝에 북한 비핵화에 대한 중국 측 동의를 이끌어낸 2011년과 비교한다면 올해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보여준 태도는 좀 과장해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이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 술 더 떠 양국 정상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행동에 변화가 있을 때까지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를 직접적으로 포용(engage)하지 않는다”는 데 합의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북한 처지에서는 지금까지 한반도 문제를 관장해온 미·중 양강(兩强)이 급격히 ‘게임의 법칙’을 수정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도 북한에 대단히 불리한 방향으로 말이다.

    패권전이론의 종말?

    미·중 간 패권전이론(覇權轉移論)은 이제 더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흔한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가 됐다. 2025~2030년 정도가 그 시점이 되리라는 전망도 종종 나온다. 하지만 브레진스키는 자신의 저서 ‘전략적 비전’에서 “미국이 비틀거린다 해도 국제질서는 중국 같은 발군의 승계자가 지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갈파했다. 다분히 미국 중심적인 생각이지만, 미국 패권의 쇠퇴는 새로운 질서로 대체되기보다 ‘대혼란(chaos)’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정학(地政學)적 관점에서 본다면 워싱턴은 여전히 중국이 동북아 지역의 확고한 맹주가 되는 것을 견제하려는 동인이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전략 완충지대로 여기는 북한의 불안정이 중국 측 이익과 어긋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달 초 G2 정상회담은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구상하는 신형대국관계 속에서의 협력이 모든 것을 새롭게 규정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 변화는 이미 우리가 사는 한반도에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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