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2

2013.06.17

“수학아, 재미있게 놀자!”

수학과 친해질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경험 기회 늘려야

  • 고선아 월간 ‘수학동아’ 편집장 sunnyk@donga.com

    입력2013-06-17 09: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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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아, 재미있게 놀자!”

    지난해 11월 ‘수학동아’가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함께 개최한 ‘개그수학콘서트’에서 개그맨들이 수학을 주제로 한 개그를 선보이고 있다.

    “아빠! 수학 문제가 이상해요.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안 가요.”

    “에이, 문제가 이상할 리 있나. 아빠가 도와줄게. 어디 보자. 영희는 사과 다섯 개를 가지고 있다. 그중 두 개를 철수에게 줬다. 남은 사과는 몇…. 뭐? 음식을 남한테 준다고? 정말 문제가 이상하잖아?!”

    KBS 2TV ‘개그콘서트’에서 활약하는 ‘아빠와 아들’팀의 개그에 초등학생 500여 명의 웃음보가 빵 터졌다. 지난해 11월 9일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월간 ‘수학동아’가 함께 마련한 ‘개그수학콘서트’의 한 장면이다. 개그수학콘서트는 초등학생이 수학을 좀 더 재밌고 가깝게 느낄 수 있게 기획한 공연으로, ‘아빠와 아들’팀과 박형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가 서울 서신초교에서 수학을 주제로 개그와 강연을 펼쳤다.

    사실 이렇게 수학을 주제로 웃음보가 터지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남녀노소 막론하고 우리나라에서 수학은 ‘상처’와 ‘좌절’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수학을 아예 포기한 사람’이라는 뜻의 ‘수포자’라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수학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수학에 대한 학생들의 학습 태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2007년 수학·과학 성취도 비교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이 수학을 공부할 만하다고 느끼는 정도는 전 세계 50개국 가운데 45위에 그쳤고, 수학에 대한 흥미도와 자신감 역시 43위로 낮았다.



    그렇다고 수학 성취도까지 낮은 건 아니다. 우리나라는 수학·과학 성취도 비교연구에서 2007년 2위,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는 2009년 3~6위를 차지할 정도로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한다. 성취도는 우수하면서도 흥미도가 최하위권인 이런 모순적인 현상은 많은 학생이 입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학을 공부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상처’와 ‘좌절’ 수포자 속출

    그렇다면 왜 이렇게 수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걸까. 그 뿌리는 교육현장에서 찾을 수 있다. 많은 수학교육 전문가는 지난 60여 년 동안 공식과 문제 위주의 교과서, 교구 활용이 거의 없는 칠판 위주의 수업, 단답형 평가 등의 획일화된 모습으로 수학교육이 이뤄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교육 틀에서는 수학의 유용성이나 사회·문화와의 연계성 등을 이해하기보다 어렵고 딱딱한 과목이라는 인식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학이 선행학습을 가장 많이 하는 과목이라는 점도 수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쌓는 데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발표한 ‘2011 우리나라 수학교육 현안 조사연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64.2%, 중학생의 56.3%, 고등학생의 62.9%가 한 학기 이상 수학 선행학습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1년 이상 선행학습을 한다는 학생이 초중고 각각 26%, 17.5%, 20.9%나 됐다.

    놀라운 것은 수학을 선행하는 주된 이유가 바로 학교 시험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2012년 발표한 ‘전국 사교육 과열 지역의 선행학습 실태조사 결과’(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김춘진 의원실 공동 진행)에 따르면, 초중학생이 수학을 선행하는 이유로 첫손에 꼽는 것은 ‘미리 배워두면 학교수업을 받는 데 유리해서’(63.7%)다. 그다음은 ‘학교 수업과 시험이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쫓아가기 어렵다’(51.6%)였다.

    이런 문제점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2012년 정부는 수학교육 선진화 방안을 대대적으로 발표해 수학교육에 큰 변화를 가져오겠다고 선언했다. 기존의 문제풀이식 수학에서 벗어나 실생활과 연관된 수학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르치겠다는 것이 골자다. 또 올해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이 ‘공교육 정상화 촉진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입시와 관련한 모든 시험에서 선행학습 문제를 금지하게 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 실제로 교육현장을 바꾸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일상생활에서 수학을 접할 기회가 적다는 점도 수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부채질한다. 한 예로 수학을 다루는 문제집은 차고 넘치지만, 수학 역사나 수학자 등 흥미로운 수학 이야기를 제대로 다룬 수학교양서는 손에 꼽을 정도다.

    수학 축제나 체험 기회도 마찬가지다. 매년 열리는 대한민국 과학창의축전을 중심으로 과학과 관련한 체험 기회는 비교적 풍성한 편이다. 정부에서 2005년부터 ‘사이언스 코리아’ 운동을 적극 펼치면서 다양한 과학문화사업을 지원한 영향이 크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수학 체험 기회는 눈을 씻고 찾아봐야 할 정도로 극히 드물다. 국립과천과학관에서 2011년부터 매년 수학문화축전을 여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 밖의 수학 체험 행사는 규모나 내실 면에서 학교 축제 이상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수학아, 재미있게 놀자!”

    공식과 문제 위주의 수학교육 방식은 과도한 선행학습을 촉발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놀라운 창

    수학은 천재들만을 위한 학문이 아니다. 고대 역사에서 수학은 농경문화 발달과 사회 설계의 기본이 됐고, 오늘날에는 복잡한 과학뿐 아니라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의 체계를 세우고 이해하는 중요한 틀이 된다. 미분과 적분이 없었다면 만유인력의 법칙은 완성될 수 없었을 테고, 그래프 이론이 없었다면 오늘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새로운 문화는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복잡한 자연과 사회의 거의 모든 변화는 수학이 없으면 해석하고 예측하기 어렵다. 즉, 오늘날 수학을 제대로 모른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놀라운 창 하나를 잃어버리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수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꿔야 하는 이유다.

    수학교육의 변화와 수학문화 확산은 수학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중요한 2개의 틀이다. 이 둘이 서로를 뒷받침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도록 구체적이고도 실현 가능한 방법이 나오고 지원돼야 할 것이다. 천재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은 “수학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익숙해질 뿐”이라고 말했다. 수학을 이해하려면 먼저 수학과 익숙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생각해보면 익숙지 않은 모든 것은 무엇이든 어렵고 불편하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친숙하고 편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수학에 익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일이야말로 수학은 어렵고 딱딱하며 입시에나 필요한 과목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수학에 익숙해지는 방법은 다양하게 제안될 수 있다. 우수 수학도서를 발굴해 지원하는 것부터 학교에서 수학동아리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수학자와의 만남을 통해 진로탐색 기회를 충분히 열어줄 필요가 있다. 앞서 예로 든 수학콘서트 같은 수학 관련 공연이나 전시도 기획하고 발굴할 수 있다.

    마침 때가 좋다. 내년 8월 서울에서 2014세계수학자대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 대회를 기점으로 삼아 지금부터 수학에 익숙해지는 기회를 마련한다면, 대회가 끝난 뒤에는 좀 더 친숙해진 수학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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