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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포스트 록 희열을 그대에게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첫 내한공연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포스트 록 희열을 그대에게

포스트 록 희열을 그대에게
외국 뮤지션의 내한공연이 더는 특별한 일이 아닌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연초부터 음악팬이 환호성을 지를 만한 소식이 잇달아 들린다. 먼저 2월 2일 ‘펑크 대모’ 패티 스미스가 내한한다. 2월 23일에는 이미 여러 차례 내한해 깊은 인상을 남긴 레이철 야마가타, 24일에는 ‘피아노 록의 마법사’ 벤 폴스 파이브가 한국을 찾는다. 3월 27일에는 영국 록계의 새로운 거물로 떠오른 스크립트가 첫 내한공연을 갖고, 5월 16일에는 키스 재럿 트리오와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시귀르 로스가 같은 날 다른 무대에서 공연한다.

이 공연들을 다 보려면 마이너스 통장이라도 개설해야 할 지경이다. 이 많은 공연 가운데 단 하나만 가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2월 6일 서울 광장동 유니클로 악스에서 열리는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의 첫 내한공연이라고. 에릭 홉스봄의 개념을 빌리면, 1990년대 록은 91년 시작됐다. 너바나의 ‘Nevermind’, 유투(U2)의 ‘Achtung Baby’, 앨리스 인 체인스의 ‘Facelift’, 블러의 ‘Leisure’, 펄 잼의 ‘Ten’, R.E.M.의 ‘Out of Time’, 스매싱 펌프킨스의 ‘Gish’,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Blood Sugar Sex Magic’, 그리고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의 두 번째 앨범 ‘Loveless’가 있었다. 해저에 묻혀 있던 얼터너티브 대륙이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바다 위로 솟아올라 여러 대륙으로 쪼개진 격변기였다.

너바나가 ‘Nevermind’로 1990년대 빗장을 부수며 록의 새로운 창세기를 썼다면,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은 1997년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로 시작될 포스트 록 전성기에 대한 묵시록을 남겼다. 먼 옛날 지미 헨드릭스가 일렉트릭 기타의 가능성을 확장시켰다면,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의 케빈 실즈는 기타라는 악기의 정의를 새로 썼다. 일찍이 음악이 표현할 수 없었던 세계를 소리 화폭에 훌륭하게 담아냈다. 그들의 사운드는 달콤한 악몽 같다. 프로이트가 말한 이드(id)의 사운드트랙이랄까. 음악적 소리의 범주에 속하지 않던 기타 노이즈를 가다듬고, 12음계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선형적 음계를 부여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미적 요소를 음악 안에 끌어들였다. 가장 외적인 것에서 가장 내적인 혁신을 이뤄낸 것이다.

1983년 결성해 B급 호러영화 제목에서 팀 이름을 차용한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은 1989년 무렵, 음악적 기틀 확립과 함께 런던 클럽가에 이름을 알렸다. 당시 대표적인 인디 레이블크리에이션과 계약한 후 정규 데뷔앨범 ‘Isn’t Anything’을 발매했다. 영국 음악저널들은 “이 앨범은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앨범”이라고 극찬했다. 그리고 3년. 밴드는 꼬박 다음 앨범 작업에 매달렸다. 1989년부터 91년까지 엔지니어 18명이 그보다 많은 수의 스튜디오를 거쳤다. 기타 57대와 앰프 43대가 리허설 룸에 쌓였다. 완벽주의를 넘어 결벽증 자체였던 케빈 실즈의 집착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핏빛으로 처리한 팬더 기타가 커버 사진 속을 부유하는 ‘Loveless’가 발매된 것이다. 이제나저네나 그들의 앨범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경악했다. 말 그대로 상상을 거부하고 예측을 불허하는 새로운 소리의 향연에 평단은 기립했다. “포위된 아름다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음악” 같은 상찬이 이어졌다. 영국 음악저널 NME는 “‘Loveless’는 (훌륭한 음악의) 기준을 높인다. 인간을 신격화한다는 건 뭔가 데카당스적이지만,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은 그런 실수까지 포함해 존경 이상의 가치를 받을 만한 밴드”라고 평가했다. U2와 콜드플레이의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브라이언 이노는 힙합 비트와 노이즈를 결합한 수록곡 ‘Soon’을 일컬어 “팝의 새로운 표준이다. 어떤 히트곡도 이 노래만큼 모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앨범 발매 후 이들은 소속사와 결별하고 밴드가 해체되는 시련을 겪었다. 다음 앨범을 위한 케빈 실즈의 결벽증이 또 도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줄 알았던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이 재결성한 건 2009년. 미국 코첼라, 일본 후지 록 등 페스티벌을 돌기 시작한 것이다. 내한공연 소문도 있었지만 성사되진 않았다. 그런데 마침내 그들이 한국에 온다. 그들의 순수한 음악적 희열을 지금 여기서 함께 나눌 수 있게 됐다.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전 지식도, 예습도 필요 없는 무의식의 음악으로.



주간동아 2013.01.28 873호 (p68~68)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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