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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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유재하를 사랑하기 때문에

리메이크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2-05-21 1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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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유재하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은미의 소개와 함께 김건모가 등장했다. 전날 지방 공연의 피로가 풀리지 않은 탓인지 얼굴이 붉었다. 조용히 일렉트릭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에 손을 얹었다. 원곡 그대로 전주가 흘러나왔다. 유재하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5월 13일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나는 가수다2’(이하 나가수2) 생방송 때 김건모가 불렀던 곡이다. 그는 이 노래로 상위 3위권에 들었다. 지난 시즌 계속 지적됐던 나가수의 단점, 즉 ‘성대 차력대회’화를 감안하면 김건모의 이 편안하고 차분한 무대는 의미심장했다. 애써 없는 바이브레이션을 넣고 원곡보다 높은 옥타브로 부르는 ‘양념’을 치지 않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청중평가단뿐 아니라 시청자평가단의 투표까지 집계하는 시스템의 변화 덕이리라.

    좋은 리메이크란 둘 중 하나다. 원곡의 본질을 그대로 살리거나, 원곡의 권위에 눌리지 않거나. 김건모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은 전자의 전형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원곡에 대한 애정도 중요하지만 숙달도 중요하다. 남의 노래가 하루아침에 내 것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김건모가 이 노래를 알게 된 건 서울예대 신입생이던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과 달리 실용음악과가 거의 없던 때다. 당연히 가수가 되고 싶은 소년 소녀들이 몰렸고 선후배의 위계질서도 엄격했다. 졸업생이 연습실에 나타나 후배들과 어울리는 건 일상이었다. 김건모의 2년 선배가 유영석이었다. 노래 ‘겨울바다’가 실린 푸른 하늘 1집으로 데뷔하기 전부터 유영석은 기존 음악계 인물들과 어울렸다. 1987년 봄, 서울음반에 놀러 간 그에게 아티스트와 레퍼토리(A·R)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이 아직 발매하지 않은 음반을 들려줬다. 사전 심의를 통과하고 공장에서 찍어 막 회사에 도착한, 유재하의 데뷔작이자 유작을.

    유영석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충격이었다. 내가 한창 공부하는 코드와 화성이 이미 재하형 앨범에 다 들어 있었다.” 그는 그 앨범을 들고 아직 트로트적 감성, 즉 ‘뽕끼’에서 벗어나지 못한 주변 작곡가에게 들려줬다. 그들 모두 충격을 받았다. 유재하로부터 한국 대중음악 모더니즘이 시작됐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클래식에 기반한 화성만으로 기존 가요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정서를 구현했기 때문이다.

    그 충격이 정식으로 앨범이 나오기도 전에 ‘선수들’ 사이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충격받은 사람 가운데 하나가 김건모였다. 유영석은 LP를 들고 학교로 가 후배들에게도 들려줬고, 김건모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 후 김건모는 학교에서 종종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가리워진 길’ 같은 노래를 불렀다. 서울예대 국악과 새내기였던 그때의 김건모는 25년이 지나 나가수2에서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부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유재하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잘 알려지지 않은 비화 하나 더. 그에게는 학창시절부터 사귀던 애인이 있었다. 유재하의 유작에 담긴 가창곡 여덟 곡은 모두 그녀를 위해 쓴 곡이었다. 첫 만남과 깊어가는 연정, 한 번의 이별과 재회의 과정에서 유재하는 그녀를 생각하며 곡을 썼고, 그 마음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불멸의 명반으로 남았다. 앨범에서 플루트를 불기도 했던 그녀와 유재하는 함께 유학을 떠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87년 11월 1일, 유재하가 비운의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등지면서 그녀는 혼자 영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1년 후 1988년 11월 1일. 유재하의 1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런던에는 비가 내렸다. 그녀는 착잡한 심정으로 템스 강변을 거닐었다. 그리고 우연히 들어간 강변의 카페.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놀랐다. 어떻게 이 노래가 나오는지 물었다. 카페 주인은 말했다.

    “며칠 전 어떤 한국 유학생이 이 앨범을 주고 가면서 들어보고 좋으면 가게에서 틀어달라고 하더라고요. 들어보니 정말 좋아서 틀어 놓고 있었죠.”

    현실은 이렇게 종종 어떤 영화보다도 극적이다. 가고 없는 이들은 남은 이들에게 추억을 안긴다. 그 추억은 때로 비현실적일 만큼 아름답게 되살아난다. 김건모가 부른 유재하 노래를 보고 들으며 생전의 유재하를 알았던 많은 음악인이 그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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