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8

2012.03.12

레임덕은 없다

1회 광우병

  • 입력2012-03-12 11: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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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임덕은 없다
    “대국민담화 연설문입니다.” 대통령실장 류우익이 서류를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2008년 6월 초, 창밖의 하늘은 맑았고 나뭇잎은 푸르다. 대통령 취임 첫해, 그 감흥이 6월의 푸름에 비교할 것인가? 그러나 밤만 되면 서울은 광우병 시위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시위가 두 달째 계속되면서 이명박의 감개는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지금은 무기력증으로 바뀌어졌다. 서류를 편 이명박이 꼼꼼히 읽는 동안 류우익은 잠자코 기다린다. MBC의 PD수첩이 촉발시킨 광우병 파동은 이제 유모차 부대까지 동원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우유를 먹고 내 아이가 뇌에 구멍이 뚫려 죽는다면서 아우성을 친다. 정부는 기를 쓰고 해명을 했지만 역부족이다. 사전에 충분한 홍보 없이 미국과의 협정을 밀어붙인 것, 정부의 성과 위주 정책이 현 상황을 불러일으켰다고 하지만 , 그 바탕에는 반정부세력의 치밀하고 조직적인 음모가 있다. 이것이 주원인이라고 정부와 집권세력은 믿는다. 그때 이명박이 머리를 들었다. 손끝으로 연설문 원고 한쪽을 짚고 있다. “이거, 내가 청와대 뒷산에서 ‘아침이슬’을 따라 부른다는 내용 말이요.”

    “예, 대통령님.”

    긴장한 류우익이 그곳을 보았다. 그렇다.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 그렇게 썼다. 대통령도 그런 방향으로 나가라는 언질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명박이 말을 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까 안 되겠어. 뺍시다.”

    류우익의 시선을 받은 이명박이 입술 끝을 비틀며 웃었다.



    “우리의 상대는 상대가 약하다고 생각하면 더 잔인해지는 자들이야. 내가 그자들 습성을 알지.”

    “아아, 예.”

    “달래면 안 돼, 더 내놓으라고 할 거야.”

    그러고는 이명박이 서류를 덮더니 류우익을 보았다. 류우익은 이명박의 시선 초점이 자신을 뚫고 뒤로 뻗어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이명박이 말했다.

    “담화는 당분간 보류하고 내가 갈 데가 있어요. 연락해봐요.”

    “에? 노무현 씨한테 가신다구요?”

    기획조정비서관 박영준이 질색을 했다.

    “아니, 대통령님이 왜 노무현 씨를 만납니까?”

    했지만 정무수석 박재완이 알 리가 없다.

    박재완도 방금 류우익한테서 들었기 때문이다. 둘은 청와대 복도에 서 있었는데 지나가다 만났다.

    “아니, 대국민담화는 안 합니까? 방송 일정도 잡아놓았다던데.”

    박영준이 다시 묻자 박재완은 입맛을 다셨다.

    “글쎄, 나도 답답합니다. 유 실장도 내막을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이거 매스컴이 난리가 나겠구먼.”

    박영준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노무현은 지금 봉하마을에 내려가 있다. 아마 노무현도 놀랄 것 같다고 박재완은 생각했다.

    “얼씨구.”

    했지만 안병한의 얼굴은 굳어져 있다. 안병한은 광우병방지대책위원회 상임고문이며 민주노동당 서울시 당위원장이기도 하다. 눈을 가늘게 뜬 안병한이 강성규를 노려보았다. 둘은 지금 시청 근처의 커피숍에 앉아 있다. 오늘밤 행사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다. 강성규는 요즘 인터넷에서 뜨는 리포터 겸 해설자로 역시 광우병 위원회 임원이다. 안병한이 물었다.

    “노통한테 뭐 하러 간다는 거야?”

    “글쎄, 시국이 시국이니만치 조언을 받으러 가는지, 아니면 협박을 하러 간다는 소문도 있던데….”

    “뭐? 협박?”

    “비자금 문제로 협박하고 광우병 시위 진압에 협조해달라고 한다는 거요.”

    “지랄허고.”

    “어쨌든 민주당도 난리가 났어요. 일부는 봉하마을에 내려가고 일부는 만나지 말라고 전화를 했다던데.”

    “이런 지기미.”

    안병한의 이맛살이 더 찌푸려졌다. 안병한에게는 모든 뉴스의 초점이 광우병 시위로 맞춰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타이틀을 이명박의 노무현 방문에 빼앗긴 것 같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노무현이 옆에 선 비서관 김경수에게 말했다.

    “앞으로 전화 바꾸지 말그레이.”

    “예, 대통령님.”

    김경수는 아직도 노무현을 대통령님으로 부른다. 힐끗 김경수에게 시선을 준 노무현이 손을 내밀었다.

    “담배 있나?”

    “예.”

    김경수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내밀자 노무현이 한 개비를 빼 입에 물었다. 다시 김경수가 켠 라이터 불꽃에 담뱃불을 붙인 노무현이 씩 웃었다.

    “이명박이가 날 찾아온다고 할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구먼.”

    혼잣소리였으므로 김경수는 듣기만 했다.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은 노무현이 창밖의 마당을 보았다. 잔디를 깔아놓았지만 어딘지 어색하다. 아직 집 단장이 덜 끝났고 기성복을 사 입힌 것 같아서 집과 주변이 잘 맞지 않는다.

    “난리가 났구먼. 만나지 말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번 일에 절대로 협조해줄 필요가 없다는 사람도 있고….”

    다시 한 모금 연기를 뱉은 노무현이 말을 잇는다.

    “다, 즈그들 계산을 바닥에다 깔고 하는 소리들이지, 하긴.”

    자리에서 일어선 노무현이 김경수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나도 심심했다가 이명박 씨가 찾아온다카이 정신이 바짝 나는 거 안 있나?”

    김경수는 노무현의 시선을 받지 못하고 머리를 숙였다. 그렇다. 그동안 대통령님은 소외되었던 것이다. 이명박이 찾아온다고 하자 이쪽저쪽에서 전화통에 불이 나도록 전화를 해온다. 그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으므로 김경수는 전화기로 다가갔다. 노무현은 이미 방을 나가고 있다.

    “항복하러 가는 겁니다.”

    KBS 보도국 기자 이병진이 단정하듯 말했다.

    “시위에 두 손 두 발 다 든 거죠. 그러니까 살려달라고 가는 거라고요.”

    “너는 그래서 진급이 안 되는 거다.”

    정색한 보도국장 임명수가 말을 이었다.

    “니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 때문에 니 눈에는 쫌생이들만 보이는 거다.”

    “아니, 그게.”

    아무리 임명수가 직속 국장이었지만 이병진이 벌컥 화를 냈다.

    레임덕은 없다
    “제가 쫌생이란 말입니까?”

    “맞다.”

    “그 이유를 대십시오.”

    “이 시벌놈 봐라?”

    했지만 임명수가 정색한 채 말을 잇는다.

    “아무리 쇼라고 해도 굽히고 들어가는 쇼는 하기 힘든 거다. 니가 명박이 입장에서 생각해봐라. 항복하고 적진에 기어 들어가는 꼴이 될 텐데 그 짓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이병진이 머리를 비틀었지만 이명박 입장은 감당이 안 되는 표정이다. 임명수가 한마디씩 힘주어 말했다.

    “지금 온 국민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려 있어. 어젯밤 시위 군중 분위기도 흔들리고 있었단 말이다.”

    “아니, 더 기세를 올리고 있다던데요?”

    이병진이 기를 쓰듯이 나서자 임명수는 머리를 저었다.

    “나도 봤어. 더 목청들을 높였지만 불안정했어. 노빠들은 환호하면서도 적의가 식어가고 있단 말이다.”

    “그렇습니까?”

    눈을 가늘게 뜬 이병진이 임명수의 가슴을 노려보았다. 임명수가 노빠였기 때문이다.

    이명박이 앞에 선 류우익에게 지시했다.

    “우리 측 참석 인원은 나하고 총리, 그리고 비서실장, 거기에다 대변인으로 하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서둘러 메모한 류우익이 이명박을 보았다.

    “해당 장관을 데려가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정운천을 말하는 것이다. 광우병 사태에 대한 협조를 구하려고 이명박이 봉하마을에 내려간다는 소문은 이미 전 세계로 퍼졌다. 그때 이명박이 머리를 내저었다.

    “우리가 소 유전자 이야기하러 가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그쪽도 우리하고 구색을 맞춰야 할 테니 번거로울 것 아닌가? 그대로 합시다.”

    그래서 이쪽 진용은 갖춰졌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김경수가 노무현을 보았다.

    “대통령, 총리, 그리고 비서실장에 대변인이 공식 방문자라고 합니다.”

    “거, 참.”

    쓴웃음을 지은 노무현이 입맛을 다셨다.

    “웬 총리까지? 귀찮게.”

    “저기, 대통령님, 어떻게 할까요?”

    김경수의 온몸에 활기가 돌고 있다. 노무현의 시선을 받은 김경수가 말을 이었다.

    “지금 문 실장님하고 윤수석은 와 있습니다만.”

    문 실장은 문재인 비서실장을 말하고 윤수석은 대변인 겸 홍보수석을 맡았던 윤승용인 것이다. 노무현이 눈을 크게 떴다.

    “그 사람들 언제 왔어?”

    “오전에 왔습니다.”

    “지금 뭐해?”

    “예, 고….”

    “고스톱치고 있어?”

    “예에.”

    “나아참.”

    했지만 노무현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부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들도 이명박의 봉하마을 방문 소식을 듣고 달려왔던 것이다. 김경수는 이제 이명박 측과 회담 구색을 맞추려면 노무현 정권 때 총리를 맡았던 인사 한 명만 더 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시간쯤 지났을 때 한명숙과 이해찬이 거의 동시에 전화를 해왔다. 뉴스를 보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문재인, 윤승용과 함께 고스톱을 치던 노무현이 김경수의 보고를 받고 말했다.

    “누가 먼저 전화한 거야?”

    “예? 예, 한 총리께서….”

    김경수가 더듬대며 대답하자 노무현이 똥피를 먹으면서 말했다.

    “그럼 한 총리더러 오라고 해, 그리고….”

    힐끗 앞에 쌓인 밑천을 훑어본 노무현이 말을 잇는다.

    “천 원짜리 좀 많이 바꿔오라고 해, 한 총리한테.”

    2008년 6월 중순, 봉하마을 위쪽의 하늘은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마치 푸른 종이를 덮어씌운 것 같다. 그러나 지상은 수백 명의 기자와 수천 명의 구경꾼, 전경, 시위대까지 엉켜서 요란했고 혼잡했다. 오전 11시, 응접실 옆 회의실에는 직사각형의 테이블이 놓였고 그 양쪽 끝에 이명박과 노무현이 앉았다. 좌측 옆에는 한승수, 류우익, 이동관이 차례로 앉았으며 우측에는 한명숙, 문재인, 윤승용이다. 김경수가 주빈 측 연락원으로 벽 쪽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방 안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노무현이 분위기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근데, 요즘 고생 많으시데요.”

    하고 노무현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으므로 마침내 모두 긴장했다. 노무현이 먼저 입을 떼어 준 것이다. 노무현의 시선을 받은 이명박이 앉은 자세에서 머리를 깊이 숙였다.

    “도와주십시오. 신세는 잊지 않겠습니다.”

    “어허.”

    그 순간 정색한 노무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한명숙 쪽의 뒤를 돌아 이명박의 옆으로 다가와 섰다.

    “이 대통령, 우리 둘이 이야기하십시다.”

    “그러시죠.”

    이명박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노무현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전히 굳어진 표정이다.

    레임덕은 없다
    “우리, 이 방에서 있었던 일은 입 다물기로 하십시다.”

    제일 먼저 머리를 끄덕인 것은 류우익 등 이명박 쪽이었고 노무현의 시선을 받은 한명숙 등이 나중에 머리를 끄덕이며 그러겠다는 표시를 했다.

    전·현직 대통령 둘이 나간 곳은 회의실 밖 베란다였다. 베란다에서는 뒷산이 보였고 흔들의자가 두 개 앞쪽을 향해 나란히 놓여졌다. 둘이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지만 몸이 조금씩 흔들렸다.

    “오신다는 말 듣고 좀 놀랐습니다.”

    노무현이 앞쪽을 향한 채로 먼저 입을 열었다. 입맛을 다신 것이 담배 생각이 난 것 같다. 어깨를 들었다 내린 노무현이 말을 잇는다.

    “5년이 눈 깜박하는 사이에 갔구만요.”

    “도와주십시오.”

    이명박이 말하더니 가슴 안주머니를 뒤적거렸으므로 노무현이 긴장했다. 그때 이명박이 담뱃갑과 일회용 라이터를 꺼내 노무현에게 내밀었다.

    “한 대 태우시지요.”

    “아이구.”

    환하게 웃은 노무현이 담뱃갑과 라이터를 받아들었다.

    “이거, 뇌물입니까?”

    “비서관 시켜서 겨우 샀습니다.”

    “아이구, 이 귀한 것을.”

    그때 이명박은 노무현의 치켜뜬 눈에 물기가 가득 고이는 것을 보았다.

    한 시간쯤 후 이명박과 노무현은 봉하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저택 뜰에 나란히 서 있다.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것이다. 연단 좌우에는 전·현 정권의 고위 인사가 나란히 배석했고 앞쪽은 수백 명의 방송국, 신문사 기자가 모였다. 이윽고 노무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본인의 협조를 요청하셨습니다만….”

    말을 멈춘 노무현이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했다. 이젠 메이크업을 안 해서 얼굴이 거칠다. 그래서 더욱 서민 티가 난다. 노무현이 말을 이었다.

    “난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이 미친 소동은 곧 끝날 것이라고. 내가 시작했던 협상을 이명박 정권이 마무리를 짓는 터라 나도 책임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니, 내가,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두 전·현직 대통령이 뇌송송 구멍탁 하는 쇠고기를 국민에게 먹이겠습니까?”

    그러더니 노무현이 씨익 웃었다. 노무현만의 독특한 웃음이다.

    “시발, 끝났다.”

    광우병방지대책위원회 상임위원이란 긴 명함을 두 달 동안 갖고 다니던 안병한이 TV 앞을 떠나면서 말했다.

    “그 빌어먹을 뇌물현이, 개새끼.”

    안병한은 노무현 욕을 처음 한다.

    이원호

    레임덕은 없다
    194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주)백양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무역 일을 했고, (주)경세무역을 설립해 직접 경영했다. 1992년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이 100만 부 이상 팔리며 최고의 대중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스케일이 큰 구성,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그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기업, 협객, 정치, 역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50여 편의 소설을 냈으며 10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할증인간’ ‘바람의 칼’ ‘강한 여자’ ‘보스’ ‘무법자’ ‘프로페셔널’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강안남자’ ‘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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