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8

2012.03.12

딱 한마디라도 가슴에 남게 하라

말의 편집력 3가지

  • 김용길 동아일보 편집부 기자 harrison@donga.com

    입력2012-03-12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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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한마디라도 가슴에 남게 하라
    긴 시간 부서회의를 했는데 머릿속에는 부장이 앞장서 내린 결론만 떠오른다. 사랑하는 연인이 한나절 동안 두런두런 대화를 했는데 나중에는 아무런 추억도 생각나지 않는다. 세미나에 참석해 몇몇 발언을 하고 밀려드는 주의·주장을 들었는데 뚜렷하게 떠오르는 한마디가 없다. 오늘 하루 실컷 말하고 무수한 타인의 말을 들었는데 왜 이리 공허할까. 뇌리에 박히는 딱 한 줄의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드물다.

    말의 목적은 전달이다. 대화의 목적은 상호 이해다. 자신의 언어에 담긴 메시지의 형식과 방향이 엉망이라면 넘치는 말과 대화는 무의미한 한 줌 재일 뿐이다. 타인과 대화할 때 꼭 챙겨야 할 말의 편집력 3가지를 살펴본다.

    첫째, 핵심 메시지를 꼭 준비하라. 아주 간단한 자기소개라도 나이, 이름, 주소만 말한다면 소통 의지가 없는 것이다. 1분 스피치를 하더라도 청중 기억 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한마디의 표현을 고민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다. 말의 물꼬는 두괄식으로 트는 것이 좋다. 가장 하고픈 말을 빙빙 돌릴 필요가 없다. 전달하고픈 뼈대 메시지를 먼저 말하라. 그러고 나서 주장하는 결론의 근거와 사례를 들어 부연 설명하라.

    모든 연설의 첫 문장은 핵심 메시지로 다가가는 첫 단추여야 한다. 방송사 기자와 인터뷰할 때는 꼭 말하고픈 핵심만 두세 문장으로 간결하게 말하라. 길게 말하면서 결론을 가장 나중에 언급한다면 자르고 이어붙이는 편집 과정에서 왜곡될 수 있다. 미디어의 인위적 편집이 개입할 소지를 주지 않으려면 말 첫머리에 핵심 주장을 펼쳐야 한다.

    둘째, 죽은 표현을 하지 마라. 들으나 마나 한 공자님 말씀, 누구나 아는 소문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나 마나 한 표현, 지리멸렬한 대사, 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관행적 연설은 시간 낭비다.



    학생을 대하듯 강사의 눈높이에서 번져 나오는 계몽적 표현 또는 훈계조 말은 거부감만 불러일으킨다. 가르치려 하지 말고 같은 눈높이에서 가슴으로 다가가야 한다. 사랑, 행복, 최선의 노력, 정신력, 인류애, 휴머니즘 같은 추상적 단어는 최소화하라. 추상적이고 막연하며 애매모호한 메시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새누리당 부산 사상구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된 27세 손수조 씨는 “돈 경력이 부족하지만 보통 사람의 딸로 상식적 정치를 펼쳐보겠다. 사상구가 누군가의 대권 정거장이 돼선 안 된다. 이번 선거는 남을 자와 떠날 자의 대결이 될 것”이라며 기염을 토했다. 단 세 문장이지만 유력 대권주자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확연히 차별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유권자의 귀에 쏙 들어오는 생생한 표현으로 선거 판세를 주도적으로 그려 나가고 있다. 구체적이고 살아 있는 표현의 힘이다.

    표현 선택과 메시지 집중을 통해 청중에게 암시를 주고 상상의 여지를 준다면 최상의 말이 된다. 연사의 말이 근거 있는 표현으로 짜임새를 갖추면 설득력이 배가되며, 글로 옮기면 그대로 명문장이 될 수 있다.

    셋째, 비난하지 말고 공감하라. 말은 상대방을 위한 서비스가 본질이다. 서비스는 아양과 아첨이 아니다. 정확한 팩트와 논리적 인과관계 전달이야말로 대화 상대를 위한 서비스 요체다. 그러려면 듣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이익을 줄 수 있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

    비난은 최소화하고 격려는 최대화해야 한다. 칭찬을 늘리고 비아냥거림과 조롱은 빼야 한다. 비우호적 표현은 줄이고 긍정적인 유대감은 늘려야 한다. 비난은 상대방에게도 독화살이 되지만 자신의 영혼도 갉아먹는다. 말은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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