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5

2012.02.20

‘R&B와 솔’ 흑인 꿇어!

한국의 10대 그루브와 리듬·감수성 더 뛰어나 ‘올인 체제’ 조기교육 통해 ‘기량 규격화’ 완성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hanmail.net

    입력2012-02-20 13: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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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B와 솔’ 흑인 꿇어!

    1990년대 중후반 R&B 붐의 주역이었던 교포 출신 가수 솔리드와 2000년대 초반 ‘흑인음악 한국화’의 기수 구실을 했던 휘성, 세븐(왼쪽부터).

    잠시 시계를 돌려 한국의 리듬앤드블루스(이하 R·B)와 솔 음악이 태동하던 때로 돌아가보자. 한국 대중음악에 파워풀한 흑인 창법을 도입한 1세대 보컬리스트로 인순이에서 윤미래에 이르는 흑인 혼혈 가수를 들 수 있다. 타고난 성대에 재능이 더해진 경우다. 유전자와 상관없이 R·B 붐을 일으킨 세대는 1990년대 중반에야 등장한다. 김조한이 몸담았던 솔리드와 박정현이 그 주역이다. 이전까지 성악 창법에 영향을 받았던 가수의 바이브레이션과 달리, 그들은 꺾기와 흘리기가 주를 이루는 새로운 형태의 보컬을 선보였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들이 성장한 문화권이 미국이었기 때문이다.

    10대기 때문에 솔을 부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 청소년이 ‘노래’에 눈을 뜨는 계기는 교회 성가대 활동이다. 영화 ‘블루스 브라더스’에서 볼 수 있듯, 미국 교회의 성가대는 밴드와 함께 부르는 가스펠 스타일의 노래를 주로 택한다. 우리말로 흔히 ‘복음성가’로 번역하는 가스펠 음악은 솔과 블루스라는 장르를 낳았고, 블루스는 로커빌리를 거쳐 록으로 파생했다. 다시 말해 가스펠은 밴드의 원형이자 대중음악의 원류인 셈이다. 계보가 이렇다 보니 가스펠 문화권에서 음악을 시작한 재미 한국인이 흑인음악을 체화할 수 있었던 건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반면 90년대까지 한국 음악시장의 패러다임은 철저히 백인음악 위주였다. 록이나 스탠더드 팝이 시장 대부분을 점령했고, 음악을 시작하는 계기도 백인음악을 듣고 이에 자극받아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거나 기획사의 문을 두드리는 과정이 일반적이었다. 작곡이나 가창 역시 백인음악 중심일 수밖에 없었으며, 흑인음악 스타일의 보컬은 필연적으로 솔리드나 박정현처럼 미국에서 자란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한국 보컬리스트 세계의 기본 공식이었다.

    그런데 다르다. SBS의 오디션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 - K팝 스타’(이하 K팝 스타)에서 발견하는 가장 놀라운 사실은 출연진의 가창력이 이러한 기본 공식을 배반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해외파보다 더 해외파스러운 국내파라고 해야 할까. 이들이 소화하는 R·B나 솔 보컬은 비록 예능 프로그램 특유의 과장이 어느 정도 더해졌다 해도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들이 이제 중고교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같은 시간대의 MBC 간판 예능 프로그램 ‘우리들의 일밤 -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는 당대의 가수와 어느 정도 자웅을 겨뤄볼 만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다. 더 흥미로운 것은 화제를 모으는 참가자 상당수가 재미교포나 외국인 참가자보다도 흑인음악의 감수성을 더 훌륭하게 구현해낸다는 점이다. 과연 이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체계적 훈련 완전히 다른 감성 키워

    ‘R&B와 솔’ 흑인 꿇어!

    SBS의 오디션 프로그램인 ‘K팝 스타’에서 뛰어난 그루브와 리듬감을 보여주고 있는 이미쉘(왼쪽)과 백아현.

    해답을 찾아가는 첫 번째 힌트는 이들이 ‘10대의 나이에도’ 솔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10대기 때문에’ 솔을 부를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설명한 대중음악 시장의 판도가 바뀐 것이 2000년대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먼저 미국에서부터 R·B와 솔 등 흑인음악이 음악 시장의 주도권을 잡았다. 어셔, 메리 제이 블라이즈, 비욘세 같은 가수가 빌보드를 석권한 것이 이 무렵의 일. 반면 1990년대까지 시장 파이를 상당 부분 차지했던 록은 비주류 장르로 전락했다.

    빌보드로 상징되는 미국 트렌드에 엄청난 영향을 받는 한국 주류 음악 시장은 이에 발 빠르게 반응했다. 1세대 아이돌이 활동을 중단한 이후 비, 세븐, 휘성 같은 가수가 새로운 스타가 됐고, 이들은 1990년대 스타일의 백인 댄스음악 대신 리듬과 플로를 중시하는 흑인음악을 추구했다. 2000년대 전반기 최고 명곡으로, 혹은 ‘한국 R·B의 완성’으로 손꼽히는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벌써 1년’은 이러한 흑인음악의 한국화를 상징하는 곡이다. 유재하에서 시작해 조성모로 이어지던 스탠더드 팝의 위상을 R·B가 대체했음을 보여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듣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음악인을 꿈꾸기 시작하는 연령대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에 다닐 무렵 정도다. 이때 듣는 음악이 감수성을 개화시키고 추구하는 음악 방향을 결정한다는 얘기다. 이 연령대에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가 된 흑인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가 바로 지금의 10대고, 이 때문에 록이나 팝 보컬보다 흑인음악을 지향하는 청소년이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가속도를 붙인 것이 대학 실용음악과의 대거 등장이다. 1990년대 후반 연예인 지망생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전국 대학에서는 우후죽순 실용음악과를 설립했고, 외국 유학 경험이 있는 음악인을 교수로 채용했다. 실용음악과를 졸업한 이들의 상당수는 다시 입시생을 상대하는 학원에서 레슨을 했다. 기억해야 할 것은 한국 실용음악과의 커리큘럼이나 입시요강이 규격화한 기준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정해진 그림을 해당 대학의 ‘족보’에 얼마나 잘 맞추느냐를 따지는 입시미술처럼, 실용음악 입시교육 역시 창작의 재능보다 소화의 재능을 요구한다. 화성, 코드, 노트 등 음악이론에 충실한 입시생의 합격 확률이 더 높은 시스템이다.

    대중음악 영역에서 이론이 가장 체계화한 장르는 재즈이고, 재즈는 블루스와 솔, R·B의 기교나 표현과 많은 영역을 공유한다. 이런 코스를 따라 많은 청소년이 선배와는 달리 발성, 호흡, 발음, 화성 등 보컬을 위한 체계적인 훈련을 조기교육으로 받았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감성을 키웠으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조기교육을 받은 새로운 세대가 탄생한 것이다.

    미국 청소년이 음악 활동을 시작하는 또 다른 루트는 친구와 결성하는 밴드다. 교회든, 밴드든 철저히 자율에 의거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반면 한국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하는 루트는 실용음악과에 진학하기 위해 조기교육을 받거나, 기획사 오디션을 통과한 뒤 아이돌이 되려고 스파르타 훈련을 받는 두 가지 중 하나뿐이다. 외국 대중음악이 취미로 시작해 직업으로 발전하는 식이라면, 한국은 직업을 정해놓고 필요한 기능을 쌓아가는 타율 시스템에 가까운 셈이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이 타율 시스템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선행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상급 학년의 교과과정을 먼저 배우는 우등생, 혹은 학교 수업도 빠진 채 하루 종일 훈련만 받는 스포츠 특기생에게 적용해온 ‘올인 체제’가 대중음악 영역에까지 치고 들어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놀라움과 씁쓸함 사이에서

    ‘R&B와 솔’ 흑인 꿇어!

    한 서울 소재 대학 실용음악과의 수업 모습.

    “노동자 계급의 청년이 신분 상승을 하려면 축구 선수가 되거나 록 스타가 되는 길밖에 없다.” 영국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자조 섞인 농담이다. 한국이라고 크게 다를까. 명문대에 들어갈 만큼 학업성적이 뛰어나지 않은 아이가 누구나 부러워하는 성공을 이루려면, 김연아나 박태환 같은 스포츠 스타가 되거나 아이돌이 되는 길뿐이다. 꿈이라는 이름의 신분 상승을 위해 엄마 손을 잡고 기획사 문을 두드린 청소년은 화성과 옥타브, 바이브레이션을 배우고 목소리를 규격화해나간다. 이러한 선택과 집중의 시스템 속에서 타율이 자율보다 월등히 높은 기량을 생산해내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R·B와 솔이 한국에서 대중화한 지 10여 년, ‘올인 체제’에서 자라난 한국의 10대가 자율 체제에서 자란 외국의 10대보다 흑인음악의 그루브와 리듬감, 감수성을 더 뛰어나게 구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초등학생 때부터 아이돌로 키워진 아이들이 아시아를 석권하고 서구로 진출해 성공을 거두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말이다. ‘K팝 스타’에 등장하는 국내파 참가자의 약진이 한편으로는 놀라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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