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2

2012.01.30

‘상다리 부러져라’ 무조건 많이 차리기

한정식집 유감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입력2012-01-30 14:0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상다리 부러져라’ 무조건 많이 차리기

    충북 보은군의 어느 한정식집 상차림이다(아래). 남은 음식을 도시락에 담았다. 도시락 2개분이 나왔다.

    전국에는 유명하다고 소문난 한정식집이 많다. 취재를 위해 유명한 곳을 두루 다녔는데 아직 방문하지 못한 식당도 꽤 된다. 게을러서가 아니다. 여러 이유로 지방을 갈 일은 많다. 하지만 이들 한정식집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일이 허다하다. 최소 2인상, 보통 3~4인상을 내는데, 혼자 달랑 취재 가서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혼자 3~4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 돈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설령 인원을 채운다 해도 한정식집 가자고 하면 부담되는 일이 또 있다. 상에 가득 차려진 음식 때문이다. 필자는 한정식집 밥상에 올라온 음식을 다 먹어본 적이 없다. 음식 남기면 안 된다고 밥상머리 교육을 철저히 받았지만 다 먹으면 탈 날 것이 빤하기 때문에 음식을 남긴다. 또 많은 음식을 먹고도 만족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 역시 문제다. 한정식집 문밖을 나서자마자 그 많은 음식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 갖가지 음식이 제각각 다 맛있다 해도 인간의 미각과 관련한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 보통은 강렬한 인상을 받은 한두 가지를 기억하기도 어렵다(각자의 기억을 떠올려보라. 한정식집 상차림에서 인상 깊었던 음식이 무엇이었는지 손가락으로 꼽아보라. 몇 가지나 꼽을 수 있는가).

    ‘사진1’은 충북 보은군의 한 한정식집 상차림으로, 이곳 음식은 참 맛있다. 식당을 연 할머니는 돌아가셨는데, 그분이 살아 계실 때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그때에 비해 맛이 조금 빈 듯하지만, 여느 식당과 비교하면 그래도 훌륭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어도 주방 일꾼은 여전해 그럴 것이라 짐작한다. 사진 속 밥상은 2인상이다. 다 먹을 수 있겠는가. 물론 씨름 선수 정도의 대식가라면 이 음식으로 모자랄 테지만, 보통은 다 먹을 수 없다.

    ‘사진2’는 ‘사진1’의 상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담은 도시락이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식당은 식탁 옆에 빈 도시락을 놔둔다. 남은 음식을 싸 가져가라는 ‘배려’다. 남은 음식을 손님이 원하면 포장해주는 그 ‘배려’도 손님 처지에서 보면 당연한 권리다. 빈 도시락을 눈에 띄게 준비해놓은 것만도 한국 식당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므로 ‘배려’라고 작은따옴표를 붙였다.

    ‘사진2’의 도시락이 꽉 찬 것은 미리 도시락이 있음을 확인하고 상에 놓은 음식을 계획적으로 먹었기 때문이다.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을 것 같은 음식, 물기가 없는 음식은 젓가락을 대지 않고 도시락에 담았다. 이렇게 싸 가져온 ‘사진2’의 도시락으로 집에서 두 끼니를 먹었다. 참 엄청난 양의 음식이 상에 오르는 것이다.



    한국인은 전통 한국 음식이라 하면 한정식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어원이 어떻든 한정식을 ‘한국의 정식’이라 해석하고 있는 듯하다. 누군가 “한정식의 상차림은 어때야 하느냐”고 질문하면 필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한정식은 손님이 절대 다 먹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음식을 차리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러면 한정식집 주인도 웃고 손님도 웃는다. 웃기는 일이 맞다. 음식물 쓰레기를 일부러 만들어내는 상차림이란!

    보은군의 저 식당에서 도시락을 들고 나오며 ‘이거 합리적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또한 웃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으러 갔지 반찬 사러 간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남을 게 빤한데도 저 상차림을 고집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한정식집 주인님들, 왜 그래요?”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