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2

2012.01.30

‘석유모래 송유관’을 어찌할꼬!

캐나다 정부 “아시아 시장 개척 위해 꼭 필요”… 환경단체 원주민 “더러운 기름에 오염 우려” 반발

  • 밴쿠버=황용복 통신원 hyb430@hotmail.com

    입력2012-01-30 1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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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유모래 송유관’을 어찌할꼬!

    미국 환경운동가가 캐나다 송유관 연장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캐나다 석유모래(oil sand) 시장으로 흘러드는 중국 자본의 유속이 최근 2년간 놀랄 만큼 빨라졌다. 이에 화답하듯 캐나다에선 석유모래 원유를 중국으로 실어나를 송유관 부설 계획이 연초 화두로 떠올랐다.

    석유모래란 원유가 흙과 섞여 굳어진 상태를 말한다. 석유모래에서 원유를 뽑아내려면 상당한 가공이 필요해 액체 상태인 일반 원유에 비해 생산비가 많이 든다. 이 때문에 대형 석유기업에서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캐나다의 막대한 석유모래 자원을 외면해왔으나, 고유가 시대가 지속되면서 본격적으로 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주간동아’ 771호 참조).

    중국 국영 석유회사 CNPC(中國石油天然氣集團公司)를 비롯한 중국의 많은 기업이 2010년 한 해에만 총 152억 달러를 캐나다 석유모래 사업에 쏟아부었다. 석유회사들과 별도로 CIC(中國投資有限公司)는 캐나다의 한 광업회사에 17억 달러를 출자했다. CIC는 중국의 국가 외환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2010년 말 현재 보유자산이 4100억 달러에 이른다. CIC는 또 2011년 첫 해외 거점으로 캐나다 토론토에 사무소를 차렸다. 재테크가 주업인 이 기관이 첫 해외 사무소로 뉴욕이나 런던 같은 금융도시를 제치고 토론토를 선택한 점이 주목된다.

    2010년을 기점으로 중국 자본의 캐나다 진출이 급증한 데는 시장원리뿐 아니라 두 나라 간 외교관계 변화도 크게 작용했다. 2006년부터 집권 중인 캐나다 보수당의 스티븐 하퍼 총리는 첫 3년간 중국에 냉담했다. 중국의 인권상황을 수시로 비난했을 뿐 아니라, 달라이 라마에게 명예 캐나다 시민 자격을 부여하며 베이징을 자극했다. 중국인이 서방 국가에서 산업스파이 행각을 벌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두 나라 외교관계는 악화했고 이전까지 캐나다로 조금씩 유입되던 중국 자본도 뚝 끊겼다.

    체질 개선 필요한 캐나다 경제



    2009년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하퍼 총리가 각료급 대표를 수시로 중국에 보내 화해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그해 말에는 베이징을 첫 공식 방문했으며, 이듬해엔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오타와를 방문했다. 하퍼 총리가 이렇게 변한 것은 미국과의 교역에 다걸기 하다시피 한 캐나다 경제의 한계를 뒤늦게 절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후 하퍼 정부는 중국 자본의 진출을 적극 환영하는 정책을 유지하는 한편 중국 정부의 심기를 자극할 만한 일은 자제해왔다.

    중국 처지에서 보면 캐나다 석유모래 시장에는 몇 가지 불확실한 요소가 남아 있다. 송유관 부설의 성사 여부가 그중 하나다. 석유모래 산지인 내륙 앨버타 주에서 중국 기업이 원유를 생산한다 하더라도 유조선이 도착할 태평양 연안까지 연결된 송유관이 없으면 이를 중국으로 가져갈 수 없다. 워낙 대량이라 유조열차 등을 이용해 육상으로 수송하는 것은 얘기가 안 된다.

    또 다른 불확실 요소는 기름값 고공행진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냐는 점이다. 만약 저유가 시장이 계속 이어지면 일반 원유만 살아남는다. 이 밖에 캐나다에서 사업을 하려면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부담도 있다. 중동산 원유를 들여오며 늘 마음 졸이는 미국은 캐나다 원유를 비상시에 활용할 생각이다. 그런데 그것을 중국이 좌지우지하는 상황이니 미국이 편안히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송유관이다. 캐나다 송유관 운영 업체 엔브리지(Enbridge)가 송유관을 부설해 사용료를 받겠다는 사업계획을 세우고 2010년 연방정부에 승인을 신청했다. ‘북부관문 송유관로(Northern Gateway Pipelines·이하 송유관로) 사업’이라 부르는 이 사업은 앨버타 주에서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해안 마을 키티매트까지 약 1177km의 파이프라인을 깔고, 종착지에 초대형 유조선 접안시설을 건설하는 것이다. 총 사업비 60억 달러 이상이 들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환경영향 평가 단계에 있다.

    오바마도 결정 미룬 민감한 사안

    ‘석유모래 송유관’을 어찌할꼬!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

    송유관로 사업은 2015년 완공을 목표로 하지만 걸림돌이 널려 있다. 먼저 미국 환경단체의 지원을 받는 캐나다 환경단체에서 사업을 반대한다. 노선 예정지 주변의 원주민(인디언)도 이들과 뜻을 같이한다. 환경단체들은 “석유모래 원유 생산만으로도 엄청나게 환경이 파괴되고 있는데 송유관 부설과 유조선 왕래까지 겹치면 재앙 위험이 배가된다”고 주장한다. 미국 환경보호론자들은 석유모래 원유를 ‘더러운 기름(dirty oil)’이라고 부른다. 캐나다 원주민들은 생태계 파괴, 오염물질 노출로 전통적 생계수단인 수렵과 낚시가 어려워질 것을 염려하고 있다. 특히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원주민의 불만이 크다.

    19세기 미국과 캐나다가 서부로 국토를 확장할 때 막무가내로 원주민을 인디언보호구역으로 내몰았던 것은 아니다. 비록 정의로운 수준은 아니지만, 정부는 원주민 각 부족과 협정을 맺어 이들이 점유하고 이용할 수 있는 토지의 범위를 제한하는 대신 일정 수준의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브리티시컬럼비아 주는 예외였다. 19세기 중반 ‘골드러시’를 계기로 영국이 갑작스레 이곳을 직할 식민지로 지정하면서 원주민들의 토지에 관한 권리를 완전히 묵살했다. 이 원죄가 캐나다 정부로 승계돼 원주민 권리를 재정리하는 작업이 최근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이곳 원주민들은 생존권에 특히 민감하다.

    캐나다 연방정부는 송유관로 사업 성사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이 사업이 민간업체의 대형 비즈니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캐나다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리라고 본 것이다. 캐나다는 원유 부존량이 세계 2∼3위로 꼽히지만, 대부분 석유모래 형태로 존재해 몇 년 전까지도 생산이 활발치 않았다. 그리고 원유를 생산하더라도 자국과 미국의 수요만 충당했기 때문에 캐나다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송유관로를 완공하면 중국뿐 아니라 한국 등 아시아 국가도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

    캐나다 정부 당국자들은 새해 들어 송유관로 사업이 국익에 직결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퍼 총리도 “국내 환경운동권자들은 외국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과격분자”라고 성토했다.

    송유관로 사업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불과 몇 달 전까지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키스톤 송유관로(Keystone Pipelines) 사업의 진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키스톤 송유관로는 캐나다의 또 다른 송유관 사업자인 트랜스캐나다(TransCanada)가 석유모래 원유를 미국으로 보낼 때 사용하도록 부설 중인 파이프라인이다. 캐나다 앨버타 주에서 미국 오클라호마 주 구간은 이미 완공했는데 이를 텍사스까지 연장하려는 추가 사업이 환경운동권의 거센 저항에 부닥쳤다. 키스톤 송유관로 연장 승인 여부로 골머리를 앓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최종 결정을 2013년까지 보류한다고 밝혔다. 올 11월 대선 때까지 민감한 뇌관을 피해 가겠다는 뜻이다.

    키스톤 송유관로 사업 과정에서 많은 미국인이 캐나다산 원유를 ‘더러운 기름’으로 매도했고, 워싱턴 당국도 미적거리고 있다. 이 덕에 캐나다는 ‘아시아의 새 시장을 개척할 수밖에 없다’는 명분을 얻고 있다. 하여간 송유관로 사업은 시장, 환경, 원주민의 논리뿐 아니라 초강대국들의 정치 안보 변수까지 고려해야 하는 고차방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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