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1

2012.01.16

‘헬리콥터 조업’ 출판사 줄도산 어찌합니까?

  •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2-01-16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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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리콥터 조업’ 출판사 줄도산 어찌합니까?
    흔히 출판은 ‘자전거 조업’으로 살아남았다고 얘기한다. 출판사가 망하지 않으려면 멈추지 않기 위해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처럼 신간을 빠르게 펴내야 한다는 뜻이다. 몇 년 전까지는 신간을 펴내 총판이나 도매상, 혹은 중대형서점에 배본하면 대부분 바로 수금이 가능했다. 그래서 출판사는 신간 종수를 늘리며 버틸 수 있었다. 한때는 저전거로는 안 되고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것만큼 빠른 속도로 신간을 펴내야 한다고 해서 ‘헬리콥터 조업’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이런 식의 출판경영은 이제 물 건너갔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몇 대를 이어 운영했던 한 서점이 매달 100여만 원의 적자를 버티지 못해 몇 달 전 문을 닫았다. 하지만 얼마 뒤 도시 중심가에 자리한 그 서점 건물은 하루에 100만 원(한 달 3000만 원)의 임대수익을 올리기 시작했다. 지방에서는 이런 일이 속출한다. 상황이 이러니 그나마 남아 있는 유서 깊은 오프라인서점도 문을 닫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앞으로도 오프라인서점의 폐업은 가속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프라인서점이 하나 둘 사라지니 총판이나 도매상의 구실도 축소된다. 잡지 총판으로 한때 명성을 날렸던 30여 년 역사의 수송사는 잡지의 판매 하락세로 어려움을 겪자 한 대형 할인마트에 입점, 어린이책과 단행본, 잡지를 주로 판매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다. 대형 할인마트는 처음에 평균 5%의 판매수수료를 받았지만 지금은 평균 25%의 판매수수료를 챙겨간다. 게다가 직원인건비, 판매장려금, 광고비 명목으로 온갖 부담을 떠안긴다.

    여기에다 책 판매부수마저 격감하자 이런 구조에서 책을 팔아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한 수송사는 약 1년 전 대형 할인마트에서 철수했다. 그 후 소매서점에 책을 공급하거나 공공기관에 납품하는 일을 주로 했으나 결국 1월 4일 부도 처리되고 말았다. 그동안 간간이 터지던 총판 부도가 올해 크게 늘어나리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때 호황을 구가하던 대형 할인마트에서의 책 판매가 하향세로 돌아선 것은 온라인서점들이 반값 할인 등 엄청난 할인공세를 펼치면서부터다. 온라인서점이 무한 할인경쟁으로 점유율을 높이자 대형 할인마트마저 설 자리를 잃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오픈마켓이 새롭게 등장해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염가판매를 해대자 온라인서점의 책 판매도 하향세로 돌아섰다. 2011년 온라인서점 매출이 10~15%의 감소했다는 소식이다.



    온라인서점은 신간이 나와도 견본 한두 부밖에 받지 않는다. 그러나 팔릴 만한 책은 매절이라는 명목으로 대량 구매한다. 이때 온라인서점은 출판사에 공급가를 대폭 인하할 것과 돌출광고나 검색창 광고, 갈수록 다양해지는 이벤트에 참여할 것을 함께 요구한다. 출판사 처지에서는 대형 베스트셀러가 아닌 이상 이런 요구를 모두 들어주다 보면 이익을 내기 어렵다. 온라인서점의 수익모델이 책을 판매해서 이익을 얻는 게 아니라 출판사가 만든 책에 광고라벨을 붙여 광고비를 받는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 정도니 출판사가 견딜 재간이 없다.

    ‘헬리콥터 조업’ 출판사 줄도산 어찌합니까?
    이런 구조에서 대부분의 책은 초판도 소화하지 못한 채 유아상태에서 사망하고 만다. 그러니 출판사는 신간을 줄인다. 특히 초기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어린이나 청소년 책 분야에서 탁월한 기획의 신간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신간을 펴내봐야 자금 회수가 어려운 까닭이다. 소수의 팔리는 책은 판매부수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지만 그런 책을 내기란 쉽지 않다. ‘자전거 조업’이나 ‘헬리콥터 조업’마저 어려워져 출판의 의외성은 더욱 요원해지고 있다.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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