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8

2011.12.26

살면 살수록 모르는 것이 많다

  • 입력2011-12-26 1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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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면 살수록 모르는 것이 많다
    모른다

    꽃들이 지는 것은

    안 보는 편이 좋다

    궁둥이에 꽃가루를 묻힌

    나비들의 노고가 다했으므로



    외로운 것이 나비임을

    알 필요는 없으므로

    하늘에서 비가 오면

    돌들도 운다

    꽃잎이 진다고

    시끄럽게 운다

    대화는 잊는 편이 좋다

    대화의 너머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외롭다고 발화될 때

    그 말이 어디에서 발성되는지를

    알아채기 위해서는

    시는 모른다

    계절 너머에서 준비 중인

    폭풍의 위험수치생성값을

    모르니까 쓴다

    아는 것을 쓰는 것은

    시가 아니므로

    ― 김소연, ‘눈물이라는 뼈’(문학과지성사, 2009)에서

    살면 살수록 모르는 것이 많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늦가을, 몹시도 지루한 한낮이었다. 식곤증으로 꾸벅꾸벅 조는 아이가 많았다. 짝지가 나에게 자꾸 신호를 보냈다. 살얼음판 위에서도 우리는 꼭 놀 궁리를 해야 직성이 풀렸다. 일기도 읽는 법을 설명하시던 선생님의 표정이 일순 일그러졌다. 저기압으로 인해 ‘폭풍’이 불어 닥치기 직전이었다. 때마침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아이들이 일제히 책상 위에 머리를 떨구었다.

    짝지와 나는 땡땡이를 부리기로 결심했다.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조퇴 허가를 받아낸 아이들처럼, 우리는 당당하게 학교 밖으로 나와 야트막한 뒷동산에 올랐다. 비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닥은 축축했지만 우리는 잔디밭 위에 나란히 몸을 뉘었다. 우정을 만지면 딱 그런 감촉일 것 같았다. 나는 “궁둥이에 꽃가루를 묻”히고 “계절 너머”를, 내년을 그려보았다. 외롭고 든든했다. 입시를 생각하니 외로웠고, 그 여정에 동참할 누군가가 있다는 이유 때문에 괜히 든든했다.

    그때 우리가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우리에게는 ‘거기’가 아닌 ‘여기’에 있는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모르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냥 다 모르고 싶었다. 일탈은 으레 목적 없이 이루어지지 않던가. 대가리가 굵어지고 말의 홍수에서 어찌어찌 살아남은 지금 “모른다”고 말하는 게, 모른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는 게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민첩하고 융통성 있는 사람이 된 대신, 나는 피곤과 가식까지 덤으로 얻은 것이다. 이 시대에 가장 느린 손놀림으로 시를 쓴다는 것, 한 자 한 자 꾸역꾸역 눌러쓴다는 것,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짝지가 입을 열었다. “나중에, 그러니까 아주 나중에, 지금 이 순간이 네 기억 속에서 어떻게 떠오를 것 같니?” 그런 질문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는 이미 “대화의 너머”에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화의 너머”를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그 분위기, 그때 나무 사이로 미끄러지던 너와 나의 말, 그때 불쑥 고개를 내밀었던 초겨울의 첫인상, 그리고 너의 이름, 그토록 친했던 너의 이름, 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인 너라는 사람. 지금은 이 모든 게 희미하거나 불투명하다. 애초에 우리가 왜 뒷동산에 올랐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즉흥적인 아이는 아니었는데. 하지만 나는 지금 다분히 즉흥적인 사람. 어디서 나는 걸어왔는가. 어디로 나는 걸어가는가.

    살면 살수록 모르는 것이 많다
    다음 날, 우리는 사이좋게 선생님 앞으로 불려 나갔다. 종아리를 걷고 첫 찰싹임이 있을 때까지 나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있었다. 뒤는 차라리 “안 보는 편이 좋”았다. 통증이 찾아올 때까지 모르는 게 나았다. 그 순간에는 열 대를 맞아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삶은 그야말로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살면 살수록 모르는 건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나는 내가 10년 뒤에, 아니 내일 당장 어떤 시를 쓰게 될지 모른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나는 내가 아는 것을 쓸 자신이 없다. 모르기 때문에 막막하고 팍팍하지만, 어떤 아름다운 말은 “어디에서 발성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나는 몰라서, 감히 두근거린다.

    *오은 1982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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