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7

2011.12.19

노조도 “퇴직 지원·노후 대비책 세워 달라”

퇴직자 양산 고령화 시대

  • 김동엽 미래에셋자산운용 은퇴교육센터장 dy.kim@miraeasset.com

    입력2011-12-19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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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직지원 제도 마련을 더는 늦출 수 없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하 노조)에서 2011년 11월 발간한 노조 소식지 ‘민주항해’ 1면을 큼지막하게 장식한 헤드라인이다. 나날이 더해가는 고령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노조 측이 회사에 문제해결을 요구하고 나선 것. 정년퇴직을 앞둔 근로자 수가 늘면서 노조의 활동 방향도 임금 인상에서 노후 복지로 바뀌었다. ‘민주항해’는 “현대중공업은 2007년 이후 해마다 600명가량이 정년을 맞았고, 2010년에는 900여 명에 육박하는 퇴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런 추세라면 향후 10년간 1만 명 넘는 근로자가 정년퇴직할 것이라고 노조는 분석한다.

    사업체 수 6만8600개, 취업근로자만 53만4000명에 달하는 산업도시 울산은 1인당 지역내총생산(GDRP)이 4만 달러가 넘는 부자도시다. 게다가 울산은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7.0%로 전국에서 가장 낮다. 고령자 비율이 가장 높은 전남(20.4%)의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전국에서 가장 젊고 부유한 도시인 울산의 대표 기업 노조가 노후 복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하겠다.

    울산이라고 고령화의 파도에서 비켜서 있을 수만은 없다. 울산의 고령인구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낮다곤 하지만, 유엔이 제시하는 ‘고령화 사회’ 기준인 7%에 이미 도달한 상태다. 고령자 예비군에 해당하는 50대 인구 비율도 전체 인구의 14.2%나 된다. 통계청 장래인구 추계자료를 바탕으로 필자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50대 인구 비율은 2015년 17.7%, 2020년 18.3%로 급속히 늘어날 전망이다.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울산의 주축 세대가 40대에서 50대로 옮겨가고 있다.

    정년을 눈앞에 둔 50대 인구가 늘면서, 노조의 관심도 자연히 근로자의 퇴직 대비책 마련 쪽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노사 공동으로 전직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제2 인생 설계를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업장도 늘고 있다. 퇴직자의 심리적 불안요소를 해소하고 자신감을 고취하려는 심리상담 프로그램, 창업과 재취업을 돕는 경력 관리 자가진단과 개인컨설팅 등을 실시하기도 한다. 일부 기업에서는 정년 후 재계약을 통해 근로기간을 1년 연장해주기도 하며, 채용시험에서 정년퇴직자나 장기근속자 자녀에게 가점을 부여하기도 한다.



    노조도 “퇴직 지원·노후 대비책 세워 달라”
    선진국에선 노조가 노후설계 교육 지원

    선진국에서는 노조가 조합원의 노후설계 교육을 지원하는 사례를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 굴지의 통신부품 업체 세이코 엡슨의 노조가 대표적이다. 보통 노조라고 하면 임금 협상과 노조원의 복지 향상을 위해 투쟁하는 조직이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세이코 엡슨 노조는 조금 다르다. 조합원이 1만2000명가량인 세이코 엡슨 노조는 조합원이 은퇴 후에 당황하지 않고 제2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미리 교육을 시키는 일에 앞장선다. 이 같은 노조 혁신을 주도한 인물은 시미즈 마나부(44) 노조 부위원장이다. 2011년 7월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가 ‘근로자의 은퇴교육과 기업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국제 세미나에 참석한 시미즈 씨는 강연을 통해 노조 운동 방향을 바꾼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노조원이 된 다음 임금을 올리려고 회사 측과 여러 번 협상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기업의 경영 성과가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근로자 임금만 올려 달라고 하는 임금 투쟁은 무의미했죠. 그래서 노조원이 월급을 잘 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꿨습니다.”

    즉, 그는 회사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자 성과 없는 임금 협상에 매달리기보다 제대로 된 재무교육을 통해 불필요한 가계지출을 줄이고 가계 자산운용의 효율성을 높여 가처분 소득을 늘리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한국 처지에서도 한 번 생각해볼 대목이다.

    세이코 엡슨 노조의 교육 내용은 다채롭다. 노조 홈페이지를 통해 재무설계 칼럼을 연재하고, ‘부자계산기’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택대출, 교육, 노후자금 등 필요자금을 계산해보도록 유도한다. 은퇴 이후 느낄 상실감을 최소화하려는 정신교육과 제2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직업교육, 취미교육에도 공을 들인다. 무엇보다 노후의 주요 수입원이 될 퇴직연금 운용에 대해 꼼꼼히 교육한다. 그리고 지부와 본부 단위로 매년 100회 가까운 세미나를 실시하는데, 연평균 2000명이 참석한다.

    선진 기업에서 종업원의 노후설계 지원이 기업경영의 주요 과제로 부각한 지 오래다. 기업이 불안한 노후를 걱정하는 근로자의 근심을 덜어주지 못한다면 근로 의욕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

    미국 최대의 목재회사 와이어하우저는 1980년대부터 모든 종업원을 대상으로 재무설계와 생애설계(Life Planning) 교육을 실시 중이다. 와이어하우저의 노후설계 교육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연령별·직급별로 차별화한 교육을 실시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50대 이상 근로자에게는 2박3일간의 은퇴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퇴직연금과 공적연금을 활용한 노후자산 관리법을 알려준다. 30대 이하 젊은 신입사원에게는 은퇴준비만을 주제로 하지 않고 주택 마련, 월급 관리, 부채 및 신용 관리 등의 내용을 담아 반나절 교육을 실시한다.

    노조도 “퇴직 지원·노후 대비책 세워 달라”
    둘째, 생애설계에 기반을 둔 자산관리 교육을 실시한다는 점이다. 맹목적인 돈 관리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인생의 목표와 비전을 정한 다음 이를 달성하려면 자산관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교육하는 것이다. 셋째, 노후설계 교육을 배우자와 함께 받도록 한다는 점이다. 퇴직한 다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가정이고, 노후와 관련된 의사결정은 배우자와 함께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조도 “퇴직 지원·노후 대비책 세워 달라”
    와이저하우저의 노후설계 교육은 종업원뿐 아니라 미국 내 다른 기업으로부터도 ‘따뜻한 배려가 담긴 교육’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종업원의 노후설계를 위해 기업이 직접 나섰다는 점에서 고령화시대 기업의 구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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