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7

2011.12.19

‘마음의 벽’ 높으면 옳은 말도 밉게 들린다

상사의 감성대화

  • 김한솔 IGM 협상스쿨 책임연구원 hskim@igm.or.kr

    입력2011-12-19 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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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과장과 점심을 먹고 온 박 대리의 표정이 어둡다. 그런데 이 과장은 더 답답한 표정이다. 방 과장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박 대리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이 과장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박 대리, 원래 저렇게 꽉 막힌 친구였어?”

    스토리는 이랬다. 박 대리가 최근 지각이 잦아지자 팀장이 이 과장을 불러 ‘박 대리한테 주의 좀 주라’고 지시했다는 것. 그래서 진심을 담아 충고를 해줬는데, 박 대리의 반응이 싸늘하더라는 게 이 과장의 얘기다. 사정을 알아본 방 과장이 박 대리와 대화를 시작했다.

    “안 좋은 일 있어?”



    망설이던 박 대리가 답답했던 마음을 쏟아낸다. 지난번에 술 한잔 하면서 얘기했던 아이의 건강 문제가 더욱 안 좋아졌단다. 그래서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마음도 어수선하다는 것. 그런데 이런 상황도 모르면서 이 과장이 대뜸 ‘직장에서 성공하려면…’으로 말문을 연 뒤 ‘옳은 말’만 해대자 짜증이 났단다. 방 과장은 박 대리를 토닥이며 격려해주었다. 이 과장과 방 과장, 두 사람의 차이는 뭘까.

    중학생에게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괴롭히는 친구? 선생님? 아니다. 1등은 ‘부모’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부모가 ‘싫어하는 사람’ 중 1등이라니 놀라운가. 이유는 더 충격적이다. 부모가 싫은 이유는 흔히 생각하듯 ‘잔소리를 많이 해서’가 아니다. ‘나를 이해해주지 않아서’ 같은 철학적 이유도 아니다.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다 맞는 얘기인데, 말을 너무 밉게 해서”다.

    다 맞는 얘기라는 걸 알면서도 싫어하는 아이의 심리는 인간 본성과 관련 있다. 우리는 인간이 이성의 지배를 받는 합리적 존재라 생각한다. 이성을 지닌 존재기 때문에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고 믿는다. 하지만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이성적이지 않다. ‘이유는 모르겠지만…’이라며 저지르는 일이 너무 많다.

    영업직에 종사하는 이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 ‘People love to buy, but hate to be sold.’ 물건을 사는 건 좋아하지만 ‘사게 되는 것’은 싫어한다는 뜻이다. 같은 돈을 주고 동일한 물건을 손에 쥐더라도 어떤 땐 행복하고 어떤 땐 불행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이유는 뇌의 작용 때문이다. 뇌의 쾌락중추에서는 우리 감정에 영향을 주는 호르몬인 도파민이 분비된다. 그런데 그 시점이 문제다. 도파민은 우리가 이성적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감정에 영향을 준다. 사람이 이성적 판단을 지향해도 어쩔 수 없이 감정적 중추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하는 말이 어떤 메시지인지를 이성과 합리로 미처 판단하기도 전에 ‘감정운동’이 먼저 일어난다. 결국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보다 상대에 대한 마음 관리가 먼저다. 상대에게 내 말이 먹히도록 하려면 마음의 벽을 허물고 먼저 관계를 쌓아야 한다.

    ‘마음의 벽’ 높으면 옳은 말도 밉게 들린다
    능력만큼 중요한 게 관계다. 특히 직급이 올라갈수록 관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렇게 얘기하면 많은 사람이 “자신 있다”고 말한다. 한 번 만난 거래처 사람과도 꾸준히 연락하는가 하면, 상사의 대소사를 챙겨가며 마음을 얻으려 부단히 노력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하나 빠진 게 있다. 바로 부하직원과의 관계다. 당신의 실적을 올려줄 수 있는 존재는 거래처다. 당신을 지금 승진시켜줄 권한을 가진 사람은 상사다. 하지만 당신의 업무를 돕고 당신을 지지하며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사람은 부하직원이다. 부하직원에 대한 당신의 관계지수는 과연 몇 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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