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6

2011.12.12

노인들 뭉칫돈 젊은 세대로 흘러야 한다

세대 간 부의 격차

  • 김동엽 미래에셋자산운용 은퇴교육센터장 dy.kim@miraeasset.com

    입력2011-12-12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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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대국 일본에서는 ‘노노상속(老老相續)’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노노상속이란 말 그대로 노인이 사망하면서 그의 재산을 젊은이가 아닌 노인에게 상속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일은 인간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에 발생한다. 일본인의 평균수명은 남성이 80세, 여성이 86세다. 평균수명이 80세를 넘다 보니 90세, 100세까지 사는 고령자를 찾는 게 어렵지 않다. 일본 후생성은 100세 이상 고령자가 4만4449명이라고 밝혔다. 만약 어떤 사람이 90세까지 살다 죽으면 자식 나이도 60세는 넘었을 것이다. 노인 부모가 죽어 노인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게 되는 것이다.

    노노상속이 문제인 것은 일본의 부가 노인층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지금 일본의 은퇴자는 1955년부터 70년에 이르는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이끌며 부를 축적한 세대다. 당시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9.6%에 이르렀다. 반면 1990년 일본 경제의 버블이 붕괴한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살아가는 일본 젊은이들은 고단하다.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프리터’ 또는 일하지도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니트족’으로 상징되는 게 지금의 일본 젊은이다. 반듯한 직장이 없는 이들이 부를 축적하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젊은 세대의 수입은 계속 줄어드는 데 반해 은퇴 세대의 상당수는 대출 상환이 끝난 자기 집을 보유하며 월평균 20만 엔 정도의 연금도 받는다. ‘부자 노인’과 ‘가난한 젊은이’가 일본 사회의 현실이다.

    일본 통계청 소비자실태 조사에 따르면, 30대 가계의 부채를 뺀 순금융자산은 -262만 엔이다. 금융자산보다 부채가 훨씬 많다. 반면 60대 가계의 순금융자산은 1785만 엔, 70세 이상 고령자는 이보다 많은 1860만 엔이다(그래프1).

    부가 고령자에게 집중된 상황에서 상속을 통해 노인 사이에서만 돈이 돌다 보면 사회에 활력이 떨어진다. 별다른 소득이 없는 고령자는 아무래도 수익성보다 안전성을 따지게 마련이다. 고수익을 좇다 자칫 실수라도 해 재산을 잃으면 다시 회복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일본 노인들의 자금이 보통예금 같은 안전자산에서만 뱅뱅 도는 것이다.

    노인들 뭉칫돈 젊은 세대로 흘러야 한다
    일본 닮아가는 한국



    일본 사람들은 지금 일본이 ‘두 개의 60% 덫’에 걸려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 ‘60%’는 전체 금융자산의 60%가 60세 이상 노인 가구에 집중됐다는 것이다. 두 번째 ‘60%’는 일본 가계의 금융자산 가운데 현금과 예금 비중이 60%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주식과 펀드 투자에 비중은 10%가 채 안 된다. 이렇게 보수적으로 자산을 운용하면 경제에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세대 간 부의 격차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일본과 너무 닮아 간다. 한국 사회는 고도성장기를 살아온 부자 아빠와 고용 없는 성장기를 살아가야 할 가난한 아들로 대변된다. 지금 5060세대가 한창 경제활동을 하던 1970~80년대엔 우리나라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들이 대학 문을 나설 때는 비록 단칸방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하더라도 언젠가는 내 집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50~60대는 고도성장의 과실을 따먹으며 지금의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그들의 자녀는 다르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게 된 젊은이들은 대학을 떠나 세상에 나서는 게 두렵다. 이런 상황에서 내 집 마련은 언감생심이다. 고도성장기를 산 아버지 세대와 고용 없는 성장기를 살아가는 자녀 세대 간 부의 격차는 연령별 가계자산 현황에서도 드러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 가계금융조사에 따르면 부채를 뺀 평균 가계자산이 50대는 3억2663만 원, 60대는 2억7013만 원인 반면, 30세 미만 세대의 순자산은 7042만 원에 불과했다(그래프2).

    노인들 뭉칫돈 젊은 세대로 흘러야 한다
    상속세는 높이고 증여세는 낮추는 세제개혁 필요

    물론 한국 사회가 빠른 경제성장과 높은 고용률을 보장할 수 있다면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이를 담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 20대 남성 고용률은 1995년 73.2%에서 지난해 58.2%로 급전직하했다. 20대 남자 둘 중 한 명만 직장에 다니는 셈이다.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데서 나온 ‘이태백’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반면 같은 기간 여성 고용률은 55%에서 58.2%로 소폭 상승했다. 사회 진출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 고용률이 상승했다고 고용의 질까지 높아졌다고 할 순 없다.

    노인이 가진 뭉칫돈을 젊은 세대의 소비자금으로 이전하려면 세제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표적 방법 중 하나가 상속세는 높이고 증여세는 낮춰 살아 있을 때 자식이나 손자에게 증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 일본 정부는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2010년부터 2011년까지 2년간 자녀에게 주택구입자금을 증여할 때 1000만 엔(1500만 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줬다. 이 같은 제도를 시행하자 일본 주택시장이 바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2010년 수도권 아파트 신규 공급 물량이 전년 대비 22.4% 증가했으며 평균가격도 4% 올랐다.

    일본 아파트 판매회사인 하세코아베스트의 조사에 따르면, 2010년 하반기에 주택을 구입한 사람의 31%가 부모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그중 3분의 1이 넘는 사람이 1000만 엔 이상을 지원받았다. 이와 같이 일본 정부가 증여세를 감면하는 것에 대해 ‘부자만을 위한 감세’라는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정부 처지에서는 경기 부양을 위한 고육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부자 노인이 가난한 젊은 세대를 도와야 경기가 회복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노인들 뭉칫돈 젊은 세대로 흘러야 한다
    우리나라도 지금과 같이 고용 없는 성장을 지속할 경우 세대 간 부의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일본보다 상황이 더 안 좋을 수도 있다. 일본은 연금제도가 잘 발달해 고령자들이 월평균 20만 엔 정도를 수령한다. 즉 자녀와 손자에게 재산을 증여하더라도 생활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국민연금제도를 시행 중이지만 그 속내를 보면 충분치 못하다. 국민연금공단은 정년퇴직을 눈앞에 둔 베이비붐 세대 중 국민연금 가입자는 62.5%에 불과하며, 이들이 노후에 받는 예상 연금도 매달 45만8000원에 그친다고 밝혔다.

    *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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