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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미식생활

찬란한 도자기의 나라 플라스틱 그릇 유감

멜라민 식기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찬란한 도자기의 나라 플라스틱 그릇 유감

찬란한 도자기의 나라 플라스틱 그릇 유감

서울 을지로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에서 맛볼 수 있는 보르쉬. 일종의 채소수프로 그릇과 음식의 색깔 조합으로 눈부터 맛있다.

우리는 ‘고려와 조선이 도자기의 나라’였다고 배웠다. 고려에서는 청자를, 조선에서는 백자와 분청사기를 잘 만들었다고 알고 있고, 임진왜란 때 왜군이 조선 도공을 납치해 가 일본의 찬란한 도예문화를 일궜다고 배웠다. 일본에서 가장 귀한 국가적 보물로 여기는 다완이 조선의 막사발이라는 사실도 들었다.

한국인 가정집에서는 많이들 도자기를 식기로 쓴다. 잘 깨지지 않는 강화유리 제품을 주로 사용하지만 기본은 도자기다. 한민족은 오랜 전통을 이어온 도자기를 사용한다. 도자기 식기를 쓰는 것은 지구상 거의 모든 인류의 공통 문화다. 도자기가 음식을 담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식당에서는 다르다. 많은 대중음식점에서는 도자기 대신 멜라민 식기를 쓴다. 고려와 조선의 그 훌륭한 도자기 전통을 이어받았다는 대한민국 땅에 있는 대중음식점은 대부분 멜라민 식기를 선호한다.

멜라민 식기의 재료 멜라민수지는 플라스틱의 한 종류로, 무색투명해 착색을 할 수 있으며 열에도 강하다.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배출하기도 하지만, 제대로 만든 멜라민 식기는 안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기야 인체에 유해하다면 언론에서 많이 지적했을 것이다. 몇 년 전 중국산 저질 멜라민 식기에 대한 보도가 있을 때도 “제대로 만들면 안전하다”고 토를 단 것을 보면 크게 위험하지는 않을 수 있다. 안전하니까 그렇게 식기에 많이 쓸 것이다.

음식점에서 멜라민 식기를 쓰는 까닭은 가볍고 깨지지 않고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도자기는 비쌀뿐더러 무겁고 잘 깨지니 부담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음식을 도자기에 담지 않다는 것은 기본 품격을 잃는 것이고, 세계인의 보편적 문화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멜라민 식기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가격이 저렴해 저개발국가에서도 흔히 쓸 듯싶다. 그런데 많지 않은 필자의 해외여행 경험에서 멜라민 식기를 본 기억이 없다. 세계 여행을 취미 겸 직업으로 갖고 음식문화에도 밝은 사람에게 멜라민 식기를 쓰는 나라에 대한 정보를 물은 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멜라민 식기요? 아프리카에서나 봤습니다.”



최근 서울 을지로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에 갔었다. 한국에 돈을 벌려고 온 우즈베키스탄 사람이 들락거리는 대중음식점이다. 한국인을 위한 음식점이 아니다. 그날 샤슬릭, 채소수프, 빵, 양고기 찜, 보드카, 맥주를 먹었는데 여느 한식당보다 저렴했다. 이 식당에서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음식이 아니라 그릇이었다. 음식은 모두 도자기에 담겨 나왔고, 대부분 코발트색이 강렬한 청화백자였다. 러시아 여행 중에 가끔 봤던 그런 도자기였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 틈에 끼여 그 아름다운 도자기에 담긴 우즈베키스탄 음식을 먹으면서 필자는 가보지 못한 우즈베키스탄의 하늘과 그곳 사람들의 정서를 생각했다. 흐리멍덩한 색깔의 멜라민 식기에 담겨 나왔다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대한민국의 2010년 경제규모는 1100조 원으로 세계 13위다. 국민소득은 2만759달러. 만일 대중음식점의 그릇을 보고 국가 순위를 매긴다면, 우리는 한참 밑에 랭크될 것이다. 국민소득이 높다고 문화 수준까지 저절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주간동아 2011.11.28 814호 (p64~64)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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