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8

2011.10.17

부부가 아니라 웬수 숨소리조차 싫다 싫어!

남과 여, “이런 때 이혼하고 싶다” 숨겨진 속내

  • 김희연 객원기자 foolfox@naver.com

    입력2011-10-17 09: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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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가 아니라 웬수 숨소리조차 싫다 싫어!
    연애가 그렇듯 이혼 또한 어떤 어른에겐 장래희망 같은 것이다. 남과 여는 어떤 때 이혼하고 싶을까. 겉으로는 무탈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부부라 해도 속에는 절절 끓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나만 그럴까. 누구나 화끈하게 이혼하고 싶은 때가 있다. 현실적 이유로, 사회적 평판 탓에,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일 뿐. 물론 이혼하고 싶은 감정은 한때의 바람인 경우가 많지만….

    ‘시어머니가 가방을 뒤졌다.’

    ‘남편이 주식으로 돈을 날렸다.’

    ‘한 번 눈감고 넘어간 배우자의 바람이 그칠 줄 모른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조회 수가 높은 글을 살펴보면 우리네 일상에서도 드라마보다 더 끔직한 ‘사랑과 전쟁’이 펼쳐짐을 알 수 있다. 우리 부부는 그래도 행복하다며 남의 일로 넘기지만, 가슴은 채워지지 않고 한구석이 서늘할 때가 적지 않다.



    불륜, 학대 등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사례가 아닌, 평범해 보이는 부부가 이혼하고 싶다고 느끼는 경우들이 궁금해진다. 한국 부부의 이혼 사유 1위는 외도나 경제적 파탄이 아닌, 성격 차이다. 부부가 아니고서는, 아니 부부도 잘 모른다는 성격 차이는 결혼생활을 그럭저럭 유지하는 부부에게도 당연히 있다.

    남자는 외로워, 돌봄이 필요해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아무도 없어요. 아내하고 아이가 학원이다 뭐다 해서 자기들끼리 나간 거죠. 남편은 필요 없는 거예요. 전 40대로 결혼생활이 10년 넘었어요. 아내의 관심과 초점이 완전히 아이에게 이동했잖습니까. 남자 심정이 시어머니가 아들을 며느리에게 뺏긴 기분과 비슷하다고 말하면, 여자가 외로운 남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내에게 대접받고 싶어요.”

    노모 씨는 40대 초반으로 초등학생 두 자녀를 뒀다. 어쩌다 집에 일찍 들어가도 아이들 공부하는 데 방해되니 조용히 방에 있으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집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게 청소년 자녀가 아니라 노씨 같은 어엿한 남편이다.

    연애 10년, 결혼생활 7년을 넘긴 서모 씨가 미취학 아동인 딸과 아들을 돌보느라 정신없는 아내에게 자주 하는 말은 이렇다.

    “여보, 나도 좀 돌봐주라.”

    아내 김씨는 퇴근하고 돌아온 서씨를 챙길 생각은 않고 짜증만 부린다. 첫째 한 명만 있을 때는 안 그러더니, 둘째를 함께 키우면서는 주말에 운동하러 나가는 것에도 시비를 건다. “운동 말고 내 인생에 낙이 뭐가 있느냐”고 항변했다가 “그러는 나는 평일에 애 보고, 주말에도 애 보고 무슨 낙이 있을 것 같으냐”고 되묻는 아내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아이에게 품이 많이 드는 30대 중후반 남성에겐 성관계 또한 말 못 할 고민이다. 아이가 잠든 것 같아 아내에게 접근하면, 피곤하다며 뿌리치는 서슬에 자존심이 상하고 오기가 생긴다. 두 자녀를 둔 30대 후반 한 남성의 고백이다.

    “아내가 하는 말이 ‘성관계가 너한테는 오락이겠지만 나한테는 노동’이라는 거예요. 종일 착 붙어 있는 아이에게서 겨우 떨어져 쉬려는데 또 중노동을 하는 느낌이라서 자신은 그냥 참고 견디는 거라더군요. 그러더니 우리 친구로 지내면 안 되겠느냐고 하더라고요. 충격이었습니다. 조금은 이해가 됐지만, 자존심이 상했어요. 이혼하고 싶더군요. 나를 거부하는 건가 싶어 고민을 많이 했죠.”

    자녀가 다 자란 50대 이상의 남성은 아내로부터 느끼는 소외감을 더 가부장적인 태도로 표현한다. ‘자식은 챙기면서 나는 밥도 안 차려준다’ ‘아내가 나를 무시한다’ ‘옆집 남편과 비교하며 기를 죽인다’ 등이다. 남편이 아니라 큰아들처럼 돌봐주기를 원하면서도 가장으로서 권위는 세우고 싶은 남성의 모순된 마음이 드러난다.

    이혼은 사소한 감정 대립, 서운함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대화를 통해 그때그때 풀지 않으면 곪아 터진다.

    아내가 이혼하고 싶은 이유에는 두 사람의 관계를 넘어 시집과의 갈등이 자주 등장한다. 시집 식구와의 직접적 갈등보다 거기에 대처하는 남편의 무관심이나 모호한 태도가 빌미가 되는 경우가 많다.

    지친 여자의 가슴엔 강물이 흐른다

    부부가 아니라 웬수 숨소리조차 싫다 싫어!

    이혼 등 가정문제를 이야기하는 상담실이 있는 한 변호사 사무실.

    “지난 추석에 과일 한 상자가 선물로 들어왔어요. 남편이 대뜸 ‘우리 집에 가지고 가자’는 거예요. 얼마 전 제가 아이를 낳아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하는 친정 엄마한테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어떻게 자기 집이 먼저 생각나는지 모르겠어요. ‘넌 네 집, 난 내 집’이라는 생각에 정이 뚝뚝 떨어졌어요.”

    결혼하고 이제껏 두 번의 명절을 지낸 신모 씨의 말이다. 싸움 끝에 가끔 이혼이라는 말을 내뱉은 적은 있지만, 이때는 정말로 남편과의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고 한다.

    ‘친정 험담을 한다’‘친정 일은 세상일의 마지막인 줄 안다’ 등 본가와 처가를 차별하는 남편의 모습을 볼 때 이혼을 고민한다는 것은 20대부터 60대까지 여성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여성이 이혼을 결심하는 것은 한 가지 이유에서가 아니라 사소한 일이 여러 번 겹쳐서인 경우가 많다.

    “제 남편은 무슨 주제든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아주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마치 남에게 일어난 일인 것처럼 말해요. 남편도 가족인데, 남의 편 같아요. 이기적이라고 해야 하나? 남편이 차갑게 느껴질 때 이혼하고 싶죠.”

    40대 주부 이모 씨의 말이다. 이씨 경우처럼 아내의 말에 공감하지 않고 본인이 옳다고 믿는 얘기만 늘어놓으며 여성을 무시하는 남편에 지친 부인이 많다. 20대 중반에 결혼한 김모 씨는 아이 한 명을 낳고 끝내 이혼했다. 약간 이른 나이에 결혼했지만 연애 기간은 꽤 길었다고 한다.

    “결혼하고 나서도 남편이 내 옆에 있기를 바랐는데, 남편은 그러지 않았죠. 마침 시집에 좀 안 좋은 일이 생겨서 신경 써야 할 상황이었어요. 나보다 일이 좋은 건가, 나보다 시집 식구에게 더 관심이 많은 건가 불만이 쌓여갔죠.”

    50대 중반으로 큰아들 혼사를 앞둔 주부 김모 씨는 매일 이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아들이 둘인 김씨는 자신이 없으면 끼니를 차려 먹을 줄 모르는 세 남자 틈에서 지금껏 살았다. 40대까지 한눈팔지 않고 남편과 아들들을 위해 몸 바쳤는데, 세 사람만 즐거움을 누리고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듯 느껴졌다는 이야기다.

    “이혼해야 할 절박한 고통이 있는 건 아니지만, 다 내려놓고 자유롭고 싶어요. 열심히 살 때는 나를 소진한 대가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네요. ‘아내의 가슴속에는 내가 건널 수 없는 깊은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는 드라마 대사가 생각나요. 제 마음이 요즘 딱 그래요.”

    법원 행정처가 해마다 펴내는 ‘사법연감’에 따르면, 전체 이혼율은 물론이고 결혼한 지 20년 이상된 부부의 황혼이혼도 꾸준히 증가했다. 당장 이혼을 결심할 중대 사유가 발생하지 않았다 해도, 남녀 모두 이혼 사유를 켜켜이 쌓으며 사는지도 모른다. 상대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 얘기하지 않는 것이 이혼의 시발점이라고 한다. 완벽한 남편과 아내라는 실현 불가능한 기대를 버리고 서로 부족함을 채워주는 부부가 되고자 노력하는 게 해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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