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국제 경제

‘변덕스러운 치즈’는 이동했다 살길을 찾고 있는가

기후변화로 산업 환경도 급변…지구촌 곳곳에 새로운 수요는 ‘준비한 자’가 차지

  • 명수정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 부연구위원 sjmyeong@kei.re.kr

‘변덕스러운 치즈’는 이동했다 살길을 찾고 있는가

외부 환경에 대한 뛰어난 적응력으로 유명한 카멜레온은 여러 요인으로 피부 색깔이 바뀐다. 저절로 바뀌기도 하고, 신체의 다른 부분이 반응하는 데 대한 반작용으로 연쇄적으로 바뀌기도 하며, 의식적으로 바꾸기도 한다. 환경에 적응하는 카멜레온처럼 산업계 역시 알지 못하는 사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바로 지구의 기후변화 때문이다.

기후가 바뀌면 시장의 수요가 변하고 원료 공급과 생산효율도 이전과 달라진다. 산업계로서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물론 이러한 변화 가운데는 기업과 경영자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있다. 그러나 알고서 의식적으로 적응해나간다면 기후변화라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 가능성은 좀 더 커질 수 있다. 이미 변화 적응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피해를 50% 이상 줄인 ‘날씨 경영’

기후변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날씨예보다. 외부에 노출된 모든 것은 날씨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으므로, 날씨 정보를 효율적으로 활용한 마케팅은 새로운 경영혁신의 첫걸음이다. 또한 기업은 이를 통해 생산효율을 높이고, 원가를 절감하며, 재해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가뭄이 들면 임금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시대는 가고, 돈을 주고서라도 날씨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2008년 대한민국 기상정보대상을 받은 현대중공업은 이른바 ‘날씨 경영’으로 재해에 미리 대비해 피해를 50% 이상 줄였다. 올해 대상을 받은 삼성에버랜드는 우리나라 최초로 날씨 정보와 잔디관리 정보를 결합한 친환경 잔디관리 예보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골프장의 농약 살포 횟수를 30%가량 줄임으로써 비용을 절약하는 것은 물론 골프장 수질을 개선하는 혁신에도 성공했다.



날씨 정보에 가장 민감한 산업 분야로는 어업을 꼽을 수 있다. 해수 상태에 민감한 특정 어종을 잡으려면 관련 정보가 필수적이다. 사조산업은 참치 어획에 꼭 필요한 표면온도와 수온약층에 대한 기상 정보를 해외 민간 기상회사에서 사들인다. 참치 떼가 이동하는 경로를 미리 알면 효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어 조업에 없어서는 안 되는 정보다. 일반 소매업도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 보광훼미리마트는 날씨 마케팅을 활용해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식품의 전체 매출을 33% 이상 끌어올렸고, 예측생산량과 실제 점포에서의 주문량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손실을 15% 이상 줄일 수 있었다.

아직도 날씨 정보는 TV 뉴스와 신문을 통해 누구에게나 공짜로 제공된다고 생각하는가. 날씨 정보를 고객 필요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공한 지 오래다. 이제 날씨 정보는 곧 돈이다. 그 진가가 확인되면서 기상 산업은 기후변화 시대에 각광받는 새로운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기후의 또 다른 중요 요소는 물이다. 강수량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물 관리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최근 한국은 비가 올 때 한꺼번에 쏟아지는 집중호우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이렇게 되면 빗물 자원을 사용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연간 강수량은 늘었지만 막상 사용할 물은 별로 없어진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을 모아 ‘자원’으로 관리하는 기술이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지난해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스피드스케이트 경기가 열린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 경기장은 가장 앞선 사례에 속한다. 경기장 지붕에 내린 빗물을 모아 일부는 냉동고로 보내 링크장 얼음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일부는 연못으로 보내 정수필터를 거친 뒤 화장실과 경기장의 청소용수로 쓴다. 한국에서도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빗물자원의 중요성을 깨닫고 빗물저장고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물 산업은 미래 효자사업

강수량이 워낙 적은 중동국가나 미국 캘리포니아 주 같은 지역은 기후변화로 수자원이 부족해지는 상황을 가장 우려한다. 캘리포니아 주의 수자원 담당부서가 “수질관리 시스템을 기후변화에 적응시키는 것이야말로 21세기의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라고 공언했을 정도다. 이렇듯 점차 가뭄이 심해지는 지역에서는 해수 담수화와 수자원 재이용 같은 기술을 적용해 대체 수자원을 확보하는 일이 핵심과제로 떠올랐다. 물 재이용 시설의 경우 동남아처럼 하수처리 시설이 부족한 지역에 수출할 수도 있다. 물 산업 기술 개발과 이를 통한 해외 진출 전략은 중공업이나 플랜트 전문기업에게 미래 효자사업 부문이 될 수 있다.

옷도 기후변화에 민감하다. 변화하는 날씨에 재빨리 적응할 수 있는 방수의류 같은 기능성 의류에 대한 요구가 시장에서 커졌다. 19세기 노르웨이 어부가 비바람을 견디려고 면직에 기름을 칠해 입으면서 시작된 방수의류 기술은 화학·섬유 산업의 발전과 함께 대중화한 지 오래다. 오늘날 이러한 기능성 의류의 주 소비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일반 대중이다. 캠브리지코오롱의 남성복 가운데 기능성 소재 제품의 판매 비중은 2008년 20%, 2009년 30%, 2010년 45%로 계속 증가했다.

매년 20~30%씩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아웃도어 시장은 이에 기름을 부었다. 2007년 1조5000억 원 규모였던 것이 2010년 3조 원 규모로 커졌고, 올해는 4조 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적으로 보면 아웃도어 시장은 70조 원 규모에 달하고 그 절반가량을 의류가 차지한다. 기후변화가 건강에 대한 관심과 기능성 의류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킨 것이다. 기후변화 시대에 의류 산업은 패션을 넘어 기술 산업이 된다.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는 세계 곳곳의 주거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 먼저 기후변화로 집이 물에 잠길까 근심하는 나라가 늘었다. 주지하다시피 네덜란드는 둑을 쌓고 바다를 막아 땅을 만든 나라로, 국토의 25%가 해수면보다 낮다. 방글라데시나 몰디브 같은 해안가 저지대 국가에서도 해수면이 상승하면 연안지역 거주지에서 큰 피해가 발생한다.

‘변덕스러운 치즈’는 이동했다 살길을 찾고 있는가

1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트 경기장으로 사용된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 2 스웨덴의 애그리테크 이노베이션 사가 개발한 식물공장 스웨드포닉의 개념도. 3 호주 퀸즐랜드 주 골드코스트 담수화공장은 댐 등 다른 수자원과 파이프로 연결돼 지역 물 격차 해소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

네덜란드의 한 건축회사는 수위가 높아지면 주택이 떠오르는 ‘플로팅하우스(Float- ing House)’를 개발했다. 홍수 규모에 따라 집이 5m까지 상승하고, 비상시에도 전기나 수도 공급에 문제가 없다. 네덜란드에만 이미 46채를 짓는 등 수요가 점차 늘고 있으며, 영국 런던과 독일 함부르크에서도 시험사업을 하는 중이다. 최근에는 기둥 위 주택, 방수주택도 시험 중이다. 한국에서도 저지대나 상습 침수지역에서 방수주택 개념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도시계획과 건축·토목은 기후변화를 가장 빨리 기회로 인식한 산업 분야다. 영국 무역투자청 조사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건설회사 가운데 38%는 기후변화를 ‘기회’로 인식했고, 32%는 ‘위험이자 기회’로 인식했다. 스웨덴의 한 건설회사는 15~20년 후 달라진 기후가 라이프스타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해 건축 상품을 개발한다. 극단적인 기후변화에 따라 특히 추위와 더위에 영향을 덜 받는 새로운 건축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옷과 집을 이야기했으니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현재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6% 정도지만, 기후변화로 경작지가 변화하고 재배 적합지가 북상하면 상당수 국가의 농업생산율이 이전보다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상당량의 밀과 쇠고기를 수입하는 호주의 경우 2030년에는 이들 식품의 생산량이 10% 가량 줄어들고 그에 따라 수출량이 밀은 11%, 쇠고기는 29% 정도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기후변화가 심해질수록 생산량과 수출량은 더 크게 감소할 테고, 먹거리 시장에 미칠 파장도 더 커질 것이다. 국가 식량안보 차원에서 이와 관련한 신(新)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물과 식량 부족 위험에 직면

‘변덕스러운 치즈’는 이동했다 살길을 찾고 있는가

네덜란드는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에 대비해 건물이 수면을 따라 위아래로 움직이는 수상도시를 건설하고 있다. 로테르담 항구 앞바다에 떠 있는 건축물.

최근 주목받는 먹거리 산업 분야의 대표적인 기후변화 적응 기술로는 수직으로 층층이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식물공장을 들 수 있다. 자연재해의 영향 없이 1년 내내 안정적인 재배가 가능하고, 도시농업으로 활용할 경우 운송과정이 필요없어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꼭 대규모일 필요도 없다. 각 가정 베란다에 설치할 수 있는 크기의 미니 식물재배기를 보급한다면 최근 확산되는 먹거리 안전성에 대한 경각심이나 웰빙 열풍과 맞물려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식물재배기에 필요한 전력을 가정에서 사용하는 운동기구와 연결하는 식의 아이디어도 가능하다. 근래 들어비록 적은 양이지만 전기자전거나 학교 놀이터의 기구 등을 자가발전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었다. 집 안의 운동기구로 식물재배에 필요한 전기를 공급한다면 기후변화 적응뿐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 저감도 가능해 일거양득이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의 많은 국가에서는 여전히 나무를 주 연료로 사용한다. 그러나 기후변화 때문에 토양 비옥도가 떨어지자 경작지로 개간한 산림이 늘어 땔감을 구하기가 힘들어졌고, 이 때문에 많은 토착민이 에너지 부족에 직면했다. 이를 극복하고자 탄자니아 정부는 하천 변에 설치하는 미니 수력발전기를 보급하는 중이다. 지역 주민이 스스로 관리하면서 장기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구조다.

이러한 기술이 아프리카 국가에만 유용한 것은 아니다. 당장 우리만 해도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순간 전력수요량이 급변해 대규모 정전사태를 맞은 바 있지 않은가.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마을이나 산업체에서 비상시 사용할 수 있는 미니 발전기를 상업화한다면 해외 진출도 어렵지 않다.

스펜서 존슨의 베스트셀러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일과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하는 어른을 위한 우화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은 기후변화로 향후 수십억 명이 물 부족과 식량 부족, 건강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영영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익숙한 기후는 이미 변화하는 중이다. 새로운 치즈를 찾아 도전할 것인가, 치즈가 사라진 창고에 남아 있을 것인가. 지구 곳곳의 새로운 수요에 민감하게 반응해 수출품목을 준비하는 기업과 경영자만이 이러한 변화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주간동아 807호 (p36~38)

명수정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 부연구위원 sjmyeong@kei.re.kr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85

제 1285호

2021.04.16

“6월 이후 유동성 빠지면 알트코인 쪽박 위험”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