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2

2011.08.29

손님이 가위 들고 조리 이보다 원초적일 순 없다

‘닭 한마리’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입력2011-08-29 14: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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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이 가위 들고 조리 이보다 원초적일 순 없다

    ‘ 닭 한마리’는 손님이 집게와 가위를 들고 직접 조리하는 음식이다.

    올봄 ‘미슐랭 가이드’ 한국판이 나와 화제가 됐다. 음식점에 별점을 주는 ‘레드 가이드’가 아니라, 한국의 여러 관광지를 소개하는 ‘그린 가이드’로 여기에 실린 음식점들도 덩달아 화제로 떠올랐다. ‘미슐랭 가이드’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권위가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판 ‘그린 가이드’에 실린 음식점 중 내 눈길을 확 잡아끈 것은 ‘닭 한마리’를 내는 식당이었다. 양푼에 별 양념도 없이 대충 끓여 먹는 서민 음식이 ‘그들’ 목록에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그게 뭔 맛이라고…’하는 생각이 있었다. 많은 언론도 이 내용을 흥밋거리로 다루었는데 “미슐랭이 한국의 서민 음식에도 관심이 있다”는 사실에 고무된 반응이었다. 예전 마이클 잭슨이 방한했을 때 비빔밥을 먹었다는 사실에 호들갑을 떨었던 것과 유사해 보였다. 한국인은 남의 시선에 참 민감하다.

    닭 한마리는 동대문시장 골목 음식이다. 골목에 들어서면 이 음식을 내는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미슐랭 가이드’에 실린 집도 여기에 있다. 이 식당이 닭 한마리를 처음 냈다는 사실에는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닭 한마리가 누구의 개발품인지 물으면 대답하기 곤란하다. 실상은 그냥 닭백숙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 닭 한마리라는 이름을 최초로 붙인 곳이 이 식당인 것이다.

    닭 한마리는 말 그대로 닭 한 마리를 양푼에 삶아 고기는 양념에 찍어 먹고, 그 국물에 칼국수를 끓여 먹은 뒤 먹을 배가 더 남았으면 밥을 넣어 볶거나 죽을 만들어 먹는 음식이다. 값싸게 술과 끼니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서민 음식이다. 오래전 나는 이 음식 맛에 혹평을 했었다. 그리고 ‘미슐랭 가이드’에 실린 그 식당에 대한 평가를 소개하면서 그나마 그 집이 낫다는 말을 덧붙였다. “최근 동대문시장 안의 ‘원조’ 집을 취재했는데, 이곳 음식점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대체로 좋은 닭을 써 누린내가 조금 덜하고 질기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굳이 닭 한마리를 먹자면 그 식당에 가라고 추천까지 했었다.

    최근에 이 닭 한마리를 먹으러 갔다. 그 골목은 여전했다. 닭 한마리를 내는 식당은 다들 번창하는 듯 보였다. 여름이라 더했을 수도 있다. ‘미슐랭 가이드’에 실린 그 식당은 번듯한 건물로 바뀌어 있었다. 불이 나 건물을 다시 올렸다고 했다. 허름한 시장 골목에는 어쩐지 안 어울려 보였다.



    음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회색 양은그릇도, 닭 등짝에 감자를 끼워 넣은 것도 똑같았다. 간장에 고춧가루, 겨자, 식초를 더한 양념이며 그 맛없는 떡볶이도 여전했다. 크게 달라진 것은 일본인 관광객이 손님의 절반은 넘어 보였다는 점이다. 단체가 아니라 삼삼오오 찾아온 관광객이었다. 그들은 이 음식에 대해 잘 아는 듯 익어가는 닭을 집게로 잡고 가위로 자르는 일을 능란하게 했다. 고기를 다 먹고 칼국수를 넣어 끓여 먹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들 흥미로운 눈빛으로 이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유럽인의 관심을 끌기 전부터 일찌감치 일본인들이 자기네 음식인 양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동대문시장이 일본인의 관광 및 쇼핑 코스가 되면서 닭 한마리도 덩달아 뜬 것이라는 말도 있고, 일본의 어느 유명 연예인이 이 음식을 극찬해 ‘붐’이 일었다는 말도 있다.

    일본에 한국 음식과 식당을 소개하는 책을 내는 작가가 이 자리에 함께 있었다. 닭 한마리가 일본인에게는 어떤 매력이 있는 음식인지 그에게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원초적이잖아요.”

    올겨울 미슐랭의 ‘레드 가이드’ 한국판이 나올 것이라고 한다. 이 닭 한마리 집이 여기에 실릴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그린 가이드’는 흥미로운 것을 중심으로 소개한 흔적이 보이는데 ‘레드 가이드’는 평가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식탁에서 손님이 집게와 가위를 들고 직접 조리하는 음식점을 ‘레드 가이드’에서는 어찌 평가할지 정말 궁금하다.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정도’라는 한국판만의 별도 평가항목을 하나 만들자는 생각을 하는 것은 혹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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