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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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와 구연산 육수가 비장의 양념법인가

물회의 진실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입력2011-08-22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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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료와 구연산 육수가 비장의 양념법인가

    맹물 물회다. 엉터리 육수를 넣느니 차라리 이런 물회가 낫다.

    여름이 지나고 있다. 바닷가에서 먹었던 시원한 물회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회 먹고 나면 말이야, 입안이 노래지더라.” “나는 오줌이 노랗던데?”

    물회는 생선과 푸성귀에 고추장 또는 된장을 넣고 비빈 후 물을 부어 먹는 음식이다. 요즘은 맹물을 붓지 않는 식당이 많다. 맛을 더한다고 얼린 육수를 낸다. 그런데 이 육수 재료가 요상하다. 청량음료 맛이 난다. 물회 육수를 내는 비법으로 사이다를 들먹이지만 요즘은 환타나 오란씨 맛이 더 강하다. 색까지 예쁘니 이를 쓸 것이다. 환타나 오란씨 육수의 물회를 먹고 나면 혀와 입안이 오렌지색이나 노란색으로 물든다. 나무젓가락을 쓰면 그 젓가락도 물든다. 요즘 물회는 이 청량음료 육수가 대세다.

    이 청량음료 외에 또 하나 요상한 맛을 내는 것이 구연산이다. 구연산은 약간의 산미에 개운한 느낌을 주는 맛으로 최근 슈퍼에서도 파는 건강 드링크류의 주요 성분이다. 고깃집 냉면 육수에서도 이 구연산 맛이 나고, 최근에는 김치에서도 이 맛이 난다.

    예전에 일본 김치에서 이 맛을 느껴 속이 거북했는데 요즘 한국 김치가 그렇다. 한국 김치를 세계화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고 자랑하는 국제식품규격(Codex)의 김치 기준에 구연산 첨가를 허용했다. 당시 일본 측 주장을 받아들여 그렇게 한 것인데, 그때 이미 우리는 한국 김치를 잃었다. 최근 구연산을 첨가해 만든 공장 육수가 크게 번졌다. 구연산 건강 드링크를 먹고 나면 오줌이 노랗게 나오는데, 물회를 먹고 나서 노란 오줌을 보는 황당함을 경험한 이도 있을 것이다. 오줌 냄새도 야릇하다.

    물회는 어민의 끼니였다. 막 잡은 생선을 가늘게 채 쳐서 집 안에 항상 있는 된장, 고추장 따위에 버무려 먹는 것이 막회인데, 여름이면 여기에 물을 더해 냉국처럼 훌훌 먹었던 것이 물회다. 여름이면 텃밭에 푸성귀가 많으니 이것저것을 더했을 것이다. 그러니 ‘전통 물회’는 맹물을 붓는 것이 맞다. 이때 생선살에 양념이 잘 스며들어 일정한 맛이 나게 하려면 먼저 고추장이나 된장을 넣고 생선살을 치대는 작업을 해야 한다. 묵나물 주무르듯 생선살에 양념을 넣고 충분히 주물러준 다음 맹물을 부으면 먹을 만하다. 가끔 맹물 물회를 내면서 주무르는 과정을 생략하는 식당이 있는데, 그러면 생선살을 물에 헹구어 먹는 듯한 느낌이 들어 싱겁고 비린 맛이 된다.



    이 맹물의 전통 물회가 아무래도 맛이 조금 허전하니 최근에 물회 육수를 따로 내서 붓는 조리법이 등장한 것이다. 육수를 내려고 갖은 과일과 채소를 넣어 장시간 달이는 수고를 감수하는 식당도 없지 않지만, 청량음료나 구연산 첨가 공장 육수로 간단히 해결하는 식당도 많다. 이렇게 각기 다른 육수를 쓰는 물회는 식당의 노고를 생각해, 또 원가를 감안한 소비자가격을 생각해 구분해서 팔아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식당 간판에 육수를 구분하지 않으니 고급과 저급 물회를 동일한 가격에 동일한 음식인 듯 파는 것이다.

    텔레비전의 음식 프로그램에서 가끔 식당 주인이 비장의 양념법이라며 카메라 뒤에 숨어 무엇인가를 넣는 장면을 연출한다. 내 경험으로는 음식 맛있기로 소문난 수십 년 전통의 식당 주방에는 비밀이 없다. 어떤 재료에 어떤 조리법을 쓰는지 다 공개한다. 무엇인가 숨기는 것이 있다면 절대 ‘좋은 무엇’이 아니다. 해외 외식업계 사정에 밝은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식당에서 그 음식을 어떻게 조리하는지 비밀이라며 유난을 떠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한다. 물회에 청량음료 또는 공장의 구연산 육수나 쓰니 그렇게 비밀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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