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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라덴 잡은 최강 인간병기 영화보다 더 위험한 임무 수행

美 네이비실 최정예 ‘6팀’ 가장 힘든 작전 비밀리에 척척

  • 주성민 군사전문 저널리스트 bluejays@kebi.com

빈 라덴 잡은 최강 인간병기 영화보다 더 위험한 임무 수행

2011년 5월 첫날 전 세계는 국제 테러범으로 낙인찍힌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 소식에 놀라워했다.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난 지 10여 년, 매번 허탕을 치던 미국이 드디어 테러 주범을 처단한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은 바로 이 비밀작전을 수행한 주체가 누구냐에 집중됐다. 당초 사살작전을 주도한 것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으로 알려졌지만, 현지에서 임무를 수행한 것은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Navy SEALs), 그중에서도 실 팀(SEAL Team)의 최정예 ‘6팀’이었다. 과연 네이비실과 그 최정예 6팀은 어떤 존재일까. 그들은 지금껏 어떤 작전에 참가했을까. 이를 에피소드 중심으로 정리했다.

빈 라덴 잡은 최강 인간병기 영화보다 더 위험한 임무 수행

고속기동 헬기에서 내리는 네이비실 대원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오랫동안 오사마 빈 라덴과 연결된 사람들을 찾아 추적해왔다. CIA의 심장인 대테러센터(CTC)는 스파이 위성과 인적 정보망을 동원해 그들을 추적했다. ‘국가도청업체’로 통하는 국립정찰국(NRO)의 스파이 위성은 위성전화와 휴대전화를 24시간 도청한다.

알카에다 조직원이 전화하면 음성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해 그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일에 주력해왔다. 이런 방식으로 신원을 파악하고, 하부 조직원이 전화로 윗선과 접선하면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누구와 전화통화를 했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CIA는 2004년 빈 라덴과의 연결 고리를 찾아냈다. 그는 라덴의 연락책으로, 은신처에서 1시간 이상 차를 몰고 이동한 후에야 휴대전화를 켜고 통화하고 통화가 끝나면 배터리를 빼놓을 정도로 신중했으나 꼬리가 밟혔다.

CIA는 그의 가명과 휴대전화 번호를 확보해 감시했고, 2007년 무렵 실명까지 알아냈다. 그가 이동하면 고공에 뜬 스파이가 차량 번호판을 잡아내 추적하며 동선을 파악했다.결국 2010년 10월 라덴의 은신처가 드러났다.

10년에 걸친 추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대통령에게 사살작전을 승인받은 CIA 국장은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바그람 기지의 합동특전사에 작전을 지시했다. 바그람의 특전사령관은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Navy SEALs) 출신이다. 사령관은 네이비실 최정예인 6팀을 동원해 ‘오랜 숙적’을 제거하는 작전을 시작했다. 기습부대는 고속기동 헬기를 타고 이륙했다. 5월 1일 오전 1시, 파키스탄의 은신처로 날아간 대테러부대 6팀은 빈 라덴을 사살한 후 기습작전을 종료했다.



10년간 긴 추적 마침내 빈 라덴 사살

중남미 카리브 해역의 그레나다 상공을 미군 헬리콥터 2대가 빠르게 비행했다. 네이비실 대원 20여 명을 태우고 작전에 들어간 UH-60 블랙호크 헬기는 목표가 가까워지자 속도를 줄이며 선회했다. 오전 6시가 지난 시각, 타격 목표인 그레나다 총독관저에 도달했지만 뜻밖의 상황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대공포가 있었군!”

선도헬기 조종사가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작은 섬나라 그레나다에서 1983년 10월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총리는 처형되고 살아남은 총독은 감금됐다. 인구 11만 여 명에 국토 크기가 미국 워싱턴 시의 2배 정도인 그레나다에는 쿠바(Cuba)군 공병대가 비행장을 건설하고 있었다. 쿠바군이 활주로를 완성하면, 미국 해안상공을 비행하는 소련 정찰기와 폭격기의 기지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었다.

미국은 ‘그레나다 침공’을 결정했다. 레이건 행정부는 군사 개입에 나서며, 그곳 수도에 유학하는 미국인 대학생 수백 명을 구출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쿠데타 주동자들은 미국 정부에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미국인은 그레나다를 마음대로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레이건 대통령은 메시지 접수를 거부했고, 바로 다음 날 작전 명령을 내렸다. 이 작전의 이름은 ‘절박한 분노(Operation Urgent Fury)’였다. 10월 25일 새벽, 분쟁의 해결사인 육군 82공수사단, 해군 특수부대와 해병대, 공군이 그레나다를 침공했다.

네이비실은 헬기를 타고 총독이 감금된 관저로 날아갔다. 그들은 총독과 가족을 구출하는 임무를 맡았다. 관저에 접근하던 헬기 조종사는 소련제 ZU-23 대공포를 발견했다. 출발 전 확인한 정보에는 대공화기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그 순간 대공포가 발사됐고, 선도헬기는 급히 하강해 대원들을 내려놓은 뒤 최고속도로 줄행랑을 놓았다. 두 번째 헬기는 운이 나빴다. 지상으로 내려가다 포탄에 맞아 조종사와 병사 한 명이 부상당했고, 10여 명의 대원은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그들은 서두른 나머지 위성통신장비 샛캄(SATCOM)을 헬기에 두고 내리는 실수를 범했다.

실 팀(SEAL Team)은 목표를 공략해 장악한 후 총독의 안전을 확보했다. 팀이 방어선을 구축하자 주위의 상당수 적이 공격해왔고, 얼마 뒤 쿠바군 중대 병력이 장갑차를 앞세우며 나타났다. 그들은 압도적인 화력으로 관저를 포위했다. 고립된 실 팀은 통신장비가 없어 지원을 요청할 수도 없었고 탈출도 불가능했다. 다행히 대원 1명이 선이 ‘살아 있는’ 전화기를 발견했고, 미국으로 국제전화를 걸어 노스캐롤라이나 주 포트 브랙의 합동특전사령부를 불렀다. 놀란 통신병은 지원 요청을 그레나다 현지 부대로 중계했다.

카리브해에 떠 있던 상륙강습함에서 공격용 헬기 시 코브라(Sea Cobra) 2대가 긴급 발진했다. 해병대 무장헬기들이 실 팀을 근접 지원하려고 날아갔지만 매복했던 2연장 대공포의 올가미에 걸려들었다. 헬기 1대가 분당 400발이 발사되는 23밀리 포탄에 맞아 연기를 내뿜으며 불시착했다. 이어 또 1대가 직격탄에 맞아 조종이 불가능했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추락한다. 반복한다. 추락한다.”

그레나다 침공서 통신장비 분실로 ‘쓴맛’

빈 라덴 잡은 최강 인간병기 영화보다 더 위험한 임무 수행

상륙작전을 펼치는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대원들.

통제가 안 돼 격렬하게 흔들리던 시 코브라는 추락했고, 2명의 해병 조종사가 즉사했다. 긴 오후가 지나 어두워지면서 총알마저 바닥난 실 팀은 방어가 힘들었다. 이들을 구해낸 건 해병대였다. 다음 날 새벽, 해병대원들이 상륙정에 5대의 M60 전차를 싣고 해안에 상륙했다. 해병대는 실 팀이 갇힌 관저로 진격했으며, 쿠바군은 미 해병대의 기갑전력에는 상대가 되지 못해 포위를 풀고 도주했다.

미 해군이 주도해 3군 연합부대가 그레나다를 침공했지만, 저항 세력을 진압하고 구출작전을 종료하는 데는 일주일이 걸렸다. 적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고, 각 부대 간 집단 이기주의로 협력이 안 됐으며, 지휘체계와 병참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 합참의장으로 전역한 콜린 파월은 이 작전을 이렇게 회상했다.

“국방성의 통제력 부족까지 겹쳐 아주 엉망이었다.”

침공 다음 날, 대학생 일부가 첫 번째 수송기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맨 먼저 내린 청년이 무릎을 꿇으며 땅에 입을 맞췄다. 이어 뒤따라 내린 학생들이 미국 국가 ‘별이 반짝이는 깃발(Star Spangled Banner)’을 합창했다. 이 광경을 언론에서 소개했는데 미국인의 목숨을 구했다는 이유만으로 침공은 정당화됐다. 레이건 행정부의 백악관 수석 공보관이던 래리 스피크스는 자신의 회고록 ‘스피킹 아웃(Speaking Out)’에 이렇게 썼다.

“과연 그레나다를 무력으로 침공할 필요가 있었던가?”

미군은 충분한 정보도 없이 작전을 시작했다. 관저 주위에 매복된 대공포와 포진해 있던 쿠바군 병력을 사전정찰을 통해 파악하지 못했다. 네이비실은 통신장비를 분실하는 사고까지 겹쳐 최정예인 ‘6팀’도 쓴맛을 봐야 했다.

1962년 창설한 네이비실은 버지니아 주 ‘리틀 크릭’ 해군기지와 캘리포니아 ‘코로나도’ 해군기지에 2개 팀이 배치됐다. 실 팀은 부대명칭 실(SEAL)이 말해주듯 바다(SEa), 하늘(Air), 땅(Land)을 가리지 않고 작전하며 적을 타격한다.

네이비실이 되려면 험난하고 긴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먼저 해군 각 부대에서 선발돼야 1차 관문인 ‘수중폭파 기본 훈련’을 시작할 수 있다. 훈련은 사병과 사관이 같은 훈련소에서 똑같이 받는다. 이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후 훈련에 들어가지만, 80~90%는 중도에 포기한다. 네이비실 현역 장교가 쓴 ‘팀 시크릿 오브 더 네이비실(Team Secrets of the Navy SEALs)’에는 훈련소 시절의 경험이 이렇게 적혀 있다.

“129명과 기본 훈련에 들어갔으나, 7개월 후 남은 사람은 고작 15명이었다.”

이렇듯 대부분 포기하고 나가지만, 교관들도 실수를 반복하는 훈련병을 가차 없이 탈락시킨다. 무능한 병사는 작전 중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 희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군에는 그린베레, 레인저 등 여러 특수부대가 있지만 그 어느 곳도 따라갈 수 없는 부대가 있는데, 바로 육군의 델타포스와 해군 네이비실 6팀이다.

1980년 이란 미국대사관에 인질로 잡힌 52명의 미국인을 구하려고 육군, 해군, 공군이 합동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계획이 틀어져 작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아군 사망자만 남긴 채 철수해야 했다. 실패 원인은 여러 가지였다. 정치적으로 우유부단한 카터 대통령이 늑장을 부린 데다 시간을 오래 끌어 작전 장비인 헬기에 장애가 생겼고, 3군이 동원됐지만 지휘체계가 제각각이었던 것도 문제였다. 이런 마이너스 요인이 맞물려 구출작전은 만신창이가 됐다. 이 사건으로 기습부대의 주력 델타포스도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미 해군은 이런 치명적 실패에서 착안해 최고의 특수전 팀을 구상했다. 네이비실에서 엘리트 대원을 선발해 대테러 임무를 위한 고도의 훈련을 시작한 것. 훈련을 통과하려면 인간이 지닌 한계를 뛰어넘어야 했다. 실 팀에서 수년간 복무한 대원도 절반은 탈락할 만큼 훈련 자체도 혹독했다. 이렇게 해서 만든 대테러부대가 6팀이다.

1980년 10월 창설한 6팀은 국방부가 그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만큼 극도의 보안을 유지한다. 현재 6팀은 애매한 명칭으로 부대를 위장한다. ‘해군 특수전개발단(Naval Special Warfare Development Group)’이라는 간판이다. 해군은 위장 명칭인 ‘개발단’의 머리글자만 따 6팀을 ‘딥그루(DevGru)’라고 부른다. 6팀은 300명 내외이며, 네이비실 전체 병력은 2500명 정도로 알려졌다.

미 국방부는 2003년 11월, 해군과 육군으로 구성한 비밀부대를 만들었다. 빈 라덴과 알카에다를 추적하는 ‘121 기동부대’(Task Force 121·이하 TF-121)가 그것이다. TF-121은 부시 행정부가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특수부대의 비밀활동을 확대하기로 결정해 조직됐다.

기동부대의 주력은 델타포스와 네이비실이지만, 모든 작전은 CIA가 주도한다. 대원은 CIA 작전기지에 주둔하며, 기지 책임자는 대테러센터 특수활동국(SAD)에 소속된 작전관(Case Officer)이다. CIA 기지는 아프간과 파키스탄 국경지대에 있지만, 기동부대는 파키스탄 내륙 깊숙한 곳에서 비밀작전을 수행해왔다.

CIA 타격대에서는 델타와 실 팀 외에도 육군 특수작전항공단, CIA 준군사조직, CIA와 계약한 민간보안회사 청부인이 같은 팀으로 일한다. 그동안 기동부대는 라덴을 추적하면서 ‘고가치 표적’인 알카에다 간부와 조직원을 찾아 제거해왔다. 이들에게 탈레반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대테러전 특수부대 더욱 강화

CIA 준군사 요원은 군복무 중에 채용된 델타포스 대원이 대부분이다. CIA는 채용하기 전 시간을 두고 신원을 조회한 뒤 모든 기록에 대해 뒷조사를 벌인다. 법적인 문제는 깨끗한지, 금전적인 문제는 없는지 등을 조사해 결함이 없으면 CIA로 불러들여 계약한다. CIA에 고용된 킬러인 그들은 아프간에서 1급 비밀작전을 수행하지만 군 이력서에는 그 사실이 절대 드러나지 않는다. 요원들은 스스로를 가리켜 ‘다리 달린 총’이라고 부른다. 총이 하는 일은 타깃을 찾아 죽이는 것이지만, 이런저런 간섭 따위는 안 받는 데다 급료도 상당하기 때문에 그들은 별 불만이 없다.

미군은 아프간에서 전쟁을 시작했지만,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새로운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미 국방부는 낡은 사고의 장군들이 지배해온 거대한 공룡 관료체제다. 관료화돼 복잡하면서도 굼뜬 구조와 전통 방식은 새로운 전쟁 수행에 최대 걸림돌이었다. 다행히 유연한 사고를 가진 소수의 장군과 미 의회의 일부는 아프간에서 수년간 헛바퀴만 돌아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규모만 큰 군대는 층층의 수직적 관료체제로 이루어져 비정규전에는 걸맞지 않다. 이는 곧 비정규전인 테러와의 전쟁은 재래식 군대로는 치를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테러전을 위해 특수부대를 더욱 강화할 방침이며, 국방부는 최근 “특수부대의 작전 목표를 더 늘려나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5월 초 “지난 2년간 아프간에 투입한 기동부대는 4개에서 20개 팀으로 늘어났고, 작년 한 해 3200명을 사살했다”고 보도했다. 소규모 군대인 특수부대는 비정규전을 치르며 테러와의 전쟁에서 진전을 보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 해군 사관은 결정적인 행동을 재빨리 취하도록 훈련받는다. 특히 네이비실 사관은 유연성을 지닌 뛰어난 팀 리더로 명성이 높다. 아프간 바그람 기지에서 빈 라덴에게 기습부대를 보낸 합동특전 사령관은 9·11테러 이후 대테러 임무를 맡아왔다. 그는 소장이 된 2004년부터 아프간 121 기동부대를 지휘했다. 별 3개를 단 2008년부터는 아프간의 모든 비밀작전을 총지휘해왔다. 윌리엄 맥레이븐 해군 중장은 네이비실 사관 출신이며,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무수한 테러리스트를 제거해온 대테러전과 특수전 전문가다. 이런 경력의 그가 빈 라덴을 제거하는 최대 극비임무에 실 팀을 보낸 것은 당연했다. 레이븐 중장과 특전사령부(US Special Operation Command) 사령관 에릭 올슨 해군 대장은 실 팀 사관 출신이다.

소수정예부대 네이비실은 뉴욕 맨해튼을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로 만든 주범에게 죽음을 선사했다. 이슬람 세계의 영광을 위해 미국과 격렬하게 충돌해오던 테러리스트의 삶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주간동아 789호 (p46~49)

주성민 군사전문 저널리스트 bluejays@ke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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