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3

2011.04.18

“여행 참아주세요”…위험해진 지구촌

미국발 경제위기, 민주화 시위와 내전, 테러 빈발…향후 50년간 위험지수 급증할 듯

  • 신석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kyle@donga.com

    입력2011-04-18 14: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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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참아주세요”…위험해진 지구촌
    외교통상부(이하 외교부)는 3월 15일 민주화 시위와 내전에 이어 국제사회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리비아를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했다. 이로써 여행금지 국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등과 함께 4개국으로 늘었다.

    외교부는 이와 함께 해외여행경보 단계 대 국민 포스터를 새로 제작했다. 전보다 자연스럽고 친근한 그림과 친절한 설명으로 홍보 효과를 높이려 노력했다. 여행경보제도가 무엇인지를 비롯해 경보 1(유의), 2(자제), 3(제한), 4(금지)단계가 어떤 내용인지도 넣었다. 그리고 하단에는 여행금지 국가를 열거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이 여행금지 국가에 허가 없이 입국하는 것은 법에 의해 금지돼 있으며 위반했을 때 처벌된다”고 엄중하게 경고했다.

    여행 제한, 자제 국가 크게 늘어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의 민주화 시위 및 분쟁이 크게 늘면서 지구촌이 갈수록 위험해지고 있다. 여행금지 국가뿐 아니라 제한, 자제, 유의 국가도 급증하는 추세다. 한국에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미국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2009년, 지난해 연초와 올해 4월 7일 현재를 각각 비교하면 3단계 국가 숫자는 15, 18, 24, 30개로 크게 늘었다. 2단계 국가는 23, 31, 40, 42개로 증가했다. 다만 1단계 국가는 2008년 32개에서 2009년 43개로 늘었다가 그 후 43, 42개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는 해외 각국의 판단과 현지 사정을 객관적으로 고려해 여행경보 단계를 높이고 내리기 때문에 경보 단계를 기준으로 ‘세계 위험도’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 세계 위험 지역이 급증한 것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민주화 시위 및 무력 충돌과 무관치 않다. 외교부는 4월 6일 반정부 시위로 치안상태가 악화된 시리아 일부 지역의 경보 단계를 2단계에서 3단계로 상향 조정했다. 또 리비아를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한 다음 날인 3월 16일 바레인을 2단계 여행자제에서 3단계 여행제한 국가로 상향 조정했다. 외교부는 이에 앞서 이집트 전체를 1월 29일 2단계 여행자제 지역으로 지정했고, 같은 달 11일에는 튀지니 전체를 2단계 여행자제 지역으로 선포했다.

    “여행 참아주세요”…위험해진 지구촌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않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의 내정 불안은 만성적인 위험 요인이다. 지난해 12월 2일에는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가 2단계에서 3단계로 높아졌다. 이 나라에선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은 로랑 그바그보 전 대통령이 내전을 촉발해 국제사회의 군사 개입이 이어졌다. 사하라사막 서쪽에 있는 모리타니도 테러조직의 활동 및 외국인 납치사건이 늘어나 지난해 12월 2일 3단계 여행제한 국가로 지정됐다.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도 세계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었다. 외교부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유출 문제가 심각해지자 지난달 주변 반경 30km 이내 지역을 3단계 여행제한 지역으로 지정했고, 이후 반경 80km 바깥 지역에 체류하는 사람도 풍향 변화 등 여러 변수를 감안해 좀 더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할 것을 권고했다. 지난해 1월 강진 피해를 입은 아이티도 즉각 3단계 여행제한지역으로 지정됐으며, 지금도 이 여행경보는 유효하다.

    21세기는 ‘위험한 세계’

    외교부에 따르면 2010년 이후 4월 현재까지 여행경보가 새로 발령되거나 단계가 높아진 국가는 모두 26개국(일본 포함)으로 중동 아프리카 13개국, 중남미 7개국, 아시아 4개국, 유럽 2개국 순이다. 지정 사유는 민주화 및 폭력 시위, 테러 등에 따른 치안 불안이 23건, 자연재해가 3건(아이티, 칠레, 일본)이다.

    일본을 제외하면 전보다 더 위험해진 국가는 대부분 후진국 또는 개발도상국이다. 미국 정치학자 임마뉴엘 월러스타인의 분류를 인용하면,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주변부 또는 반 주변부에 속하는 국가인 셈이다. 중심부-반 주변부-주변부 국가가 단일 시장경제로 묶여 있는 세계체제에서 주변부와 반 주변부 국가의 정치 및 치안 불안의 원인은 중심부의 경제위기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치경제학적 시각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최근 중동 및 북아프리카 정치 불안은 근본적으로 미국의 경제위기가 원인”이라고 말했다. 2008년 11월 미국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한 이후 일본과 한국, 유럽연합(EU) 등 중심부 선진국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을 풀었고, 이로 인해 국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식량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는 것. 배가 고픈 사람들은 정부에 정치적 반기를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세계가 앞으로 더 위험해질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을 내놓는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민주화 바람은 이제 시작이며 향후 50년 동안 계속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막 시작한 이 지역의 민주화가 다양한 단계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1989년 동독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시작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전환에 버금가는 세계사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중심부 국가들의 경제 불안도 불길한 전망의 토대가 되고 있다. 미국의 경제 불황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태이고,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의 생산과 소비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인도와 브라질 등 ‘브릭스(BRICs)’ 국가의 경제성장에 따른 식량과 자원 부족 현상이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한 갈등양상도 더욱 확산될 우려가 크다”고 귀띔했다.

    세계적 민주화 열풍을 애써 모른 척하는 북한도 잠재적 위험 요소다. 3대 권력 세습이 진행 중인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날 경우 한반도 주변지역의 위험도는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북한 급변사태는 정치적 리더십의 붕괴, 엘리트 내부의 분열, 아래로부터의 봉기 등 다양한 원인에서 촉발할 수 있다. 최근에는 백두산 폭발이나 영변 원자력 안전사고 등 사고에 의한 변화 가능성도 거론된다.

    20세기 국제사회가 남북으로 갈려 ‘불평등한 세계’를 화두로 논쟁했다면, 21세기 국제사회는 고착화한 ‘경제적 불평등’과 확산되는 ‘정치적 자유’가 빚어내는 ‘위험한 세계’를 화두로 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은 태생적으로 위험을 싫어하는 한국인에게 도전이 되고 있다. 위기, 위험을 잘 연구하고 관리해 국익 및 이윤창출의 기회로 삼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때다.

    “여행 참아주세요”…위험해진 지구촌

    2010년 이후 민주화 및 폭력 시위 같은 치안 불안과 자연재해 등의 이유로 26개국에 관한 여행경보가 새로 발령되거나 단계가 높아졌다. 여행금지 국가로 상향 조정된 리비아(왼쪽)와 여행제한 국가로 새로 지정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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