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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래도 시정 안 할래” 건축사와 지자체 무더기 고발

구조기술사회, 내진 설계 부실 알리기 나서 … 초강수 두자 국토부 뒤늦게 움직여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이래도 시정 안 할래” 건축사와 지자체 무더기 고발

“이래도 시정 안 할래” 건축사와 지자체 무더기 고발

(왼쪽) 4월 7일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가 대검찰청에 제출한 고소장. (오늘쪽) 위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없음.

전국 각 건물의 내진 설계를 담당하는 건축구조기술사들이 내진설계를 허위로 한 건축사와 이를 눈감아준 지방자치단체장을 검찰에 무더기로 고발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국내 건축물도 6.0 이상의 강진 피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와중에 건축물의 총체적 안전진단과 구조공학적 내진설계를 책임지는 건축구조기술사들의 고발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와 함께 우리 정부의 내진 대처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도 여과 없이 드러났다.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이하 구조기술사회)는 4월 7일 오후 건축사 117명과 서울 서초구, 은평구, 충북 청주 등 7개 지역 시·구청장 등 총 124명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고발당한 건축사는 건축물의 내진설계를 허위로 한 혐의고, 7개 지역 시·구청장은 부실한 ‘구조안전 및 내진설계 확인서’(이하 내진설계 확인서)를 받고도 무분별하게 건축 허가를 남발한 혐의다.

발등 불 떨어진 시·구청, 건축사

2010년 10월 구조기술사회는 서울 은평구, 광진구 등 전국 7개 시·구에서 2007년 이후 건축 허가를 받은 3~5층 건축물 2355채 가운데 1400채(59.4%)의 내진설계 확인서가 허위로 작성된 사실을 밝혀냈다. 내진설계 확인서는 건축물의 밑면전단력(건물이 지진 등으로 압력을 받을 때 측면이 얼마나 흔들리는지 진단), 최대 층간변위(지진이 발생했을 때 변형 정도 진단) 등을 구조공학적으로 계산해 작성한다. 그런데 적발된 내진설계 확인서 가운데 1241건은 건축사가 내진 정도를 반영하지 않은 임의수치를 기입했고, 106건은 내진 항목 관련 부분에 아무것도 기입하지 않았다.

2010년 10월 구조기술사회는 조사결과를 국회와 국토해양부(이하 국토부),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알렸고, ‘주간동아’는 2010년 10월 당시 구조기술사회의 자료를 단독 입수해 보도했다(주간동아 760호 ‘3~5층 다세대주택 지진에 무방비?’ 참조).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지만, 당사자들은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당시 한 구청 관계자는 “일부 행정상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며 사태를 축소했고, 다른 구청 관계자는 “인사이동 때문에 업무 파악이 안 됐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해당 건축사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별 일 아니다” “서류에는 기입하지 않았지만 실제 내진설계는 된 것”이라며 안일한 반응을 보였다.



올해 3월 ‘주간동아’는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지진 관련 기사를 게재했다(주간동아 779호 ‘설마 무너지겠어… 건축 설계부터 지진 불감증’ 참조). 지난해 10월 당시 건축구조사회로부터 지적 받은 시·구청, 소방방재청, 국토부, 국회 등이 그 이후 어떤 대책을 세웠는지 알아봤다. 그런데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은 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었다. 당시 구조기술사회 이문곤 회장은 “‘직접 조사를 벌여 그 결과를 코앞에 내놓았는데 시정할 기미가 없다. 시·구청 관계자를 이해할 수 없다. 정말 큰일이 나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며 개탄했었다.

이번 구조기술사회의 고발로 해당 시·구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구조기술사회는 “고발 이후 서울시 거의 모든 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 구가 고발 대상에 포함되느냐’를 묻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이미 지난해 10월 통보를 받아놓고도 대부분 시·구청은 “몰랐다”며 이제야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부산을 떨고 있다는 것.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던 상부기관도 당황하긴 마찬가지다. 소방방재청은 4월 11일 급히 구조기술사회 담당자를 불러 사건 진위를 파악하겠다고 나섰다. 국토부 담당 과장은 건축구조기술사에게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약속하며 의견을 수렴했다. 구조기술사회에 따르면, 3월 24일 건축구조기술사와의 오찬 회의에서 정종환 국토부 장관은 “내진설계가 지금껏 잘되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보고가 올라오지 않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확한 발언 내용은 확인할 수 없으나 문제 해결 의지를 밝힌 것은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이래도 시정 안 할래” 건축사와 지자체 무더기 고발
우리나라 건축물 97% 내진설계 안 해

구조기술사회 박정민 총무단장은 “정 장관은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직접 가져오라’고 부탁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쉬운 일이 아니다”라면서 “지금껏 아무리 건의해도 들어주지 않다가 대검찰청에 고발하는 등 강력하게 대응하자 이제야 조금 움직인다”며 답답해했다.

소방방재청이 2010년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건축물 680만 채 가운데 660만 채(97.7%)가 내진설계가 돼 있지 않다. 구조기술사회의 조사에서는 법적 내진설계 대상이 아닌 2층 이하 건축물뿐 아니라, 구조기술사와 함께 건축사도 내진설계를 할 수 있도록 법에 규정된 3~5층 건축물 역시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문곤 회장은 “이번 조사는 서울 시내 7개 시·구, 그중에서도 2007년 이후 건축허가를 받은 건축물만 표본으로 한 것이므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서울시나 국토부에서 전체 건축물을 대상으로 조사해 미리 내진 대비를 하지 않으면 이 역시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내진설계 확인서를 허위로 작성한 건축사는 건축법 제110조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시·구청장은 형사법상 직무 유기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 대한건축사협회는 아직 소견을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대한건축사협회 관계자는 “117명의 건축사가 개별로 조사를 받을지, 아니면 협회 측에서 도와줄지 논의 중이다. 자칫하면 두 협회가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잘못이 있으면 처벌받는 게 맞지만 구조기술사와 건축사는 서로 협력해야 하는데, 구조기술사 측에서 초강수를 두니 당혹스럽다”고 덧붙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부도 나름대로 건축물 구조 안전을 강화하는 방안을 세워놓고 연차별로 추진하고 있다. 계속해서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주간동아 783호 (p50~51)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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