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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습 봤지!! 구자철 전성시대

아시안컵서 맹활약 또래 중 최고 입증 … 해외 진출 거뜬 한국축구 새 아이콘으로

  • 최용석 스포츠동아 기자 gtyong@donga.com

내 모습 봤지!! 구자철 전성시대

4골 2어시스트. 2011년 아시안컵 예선 3경기에서 구자철(22·제주)이 보여준 활약상이다. 그는 팀 내 득점-어시스트 1위를 기록하며 한국의 8강 진출을 견인했다. 그의 활약은 예고됐다. 구자철은 지난해 만년 하위였던 제주를 단숨에 리그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축구대표팀 주장을 맡아 한국이 동메달을 거머쥐는 데 중추적인 기능을 했다.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그의 존재감이 대표팀에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구자철은 준비된 선수였다”라고 평가했다. 아시안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게 전혀 새로울 게 없다는 뜻. 차세대를 이끌어갈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구자철은 2011년 한국축구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홍명보 감독과 운명적인 만남

홍명보 감독의 구자철에 대한 표현은 간단하다. “또래 중 최고.” 구자철을 프로에 데뷔시켰던 정해성 전남 드래곤즈 감독은 “보인고 재학 때부터 볼 차는 게 달랐다. 그는 창조적인 축구를 할 줄 안다”라고 극찬했다. 구자철은 보인고를 전국대회 준우승으로 이끈 뒤 대학행을 포기하고 바로 프로에 뛰어들었다. 당초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었지만 제주 지휘봉을 잡고 있던 정해성 감독이 그를 설득해 프로에 입문시켰다.

“제주에서 고등학교 결승전 경기가 열려 관전했다. 그런데 보인고 미드필더 중 패스 감각이 남다른 선수가 있었다. 그는 동료들이 편하게 볼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을 선보였다. 고등학생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센스가 뛰어났다.”

정 감독의 말처럼 구자철은 재능이 뛰어났지만 성장통을 피할 순 없었다. 그가 프로 데뷔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것은 아니다. 그는 데뷔 첫해에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1군과 2군을 오가며 적응기를 가졌다. 그러나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구자철은 프로 데뷔 2년 차에 곧바로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행운의 대표팀 발탁을 이뤄냈다. 그를 프로에 입문시킨 정 감독은 그가 프로 2년 차가 되던 해 대표팀 수석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정 코치는 “대표팀에 젊은 선수들을 발탁하고 싶다”는 허정무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구자철을 추천했다. 구자철은 2008년 동아시아대회에서 꿈에 그리던 축구대표팀이 됐다.



태극마크의 첫 경험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유럽파가 대부분 빠지고 국내파 위주로 팀이 구성됐지만 구자철은 경쟁에서 살아남기에 부족함이 많았다. 태극마크가 주는 중압감을 이겨내기엔 너무 어렸던 까닭이다. 동아시아대회 이후 구자철은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지만 팀에서 꾸준히 성장했다. 많은 경기를 소화하며 서서히 경쟁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선수로 변신했다. 그 과정에는 그의 성실함이 뒷받침됐다. 구자철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훈련을 통해 선배들에 비해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채워나갔다. 그리고 2009년 진정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K리그를 통해 활짝 핀 꽃

이런 구자철에게 홍 감독은 각별하다. 구자철이 대표팀에서 실패를 맛본 뒤 잠시 주춤하고 있을 때 그에게 힘을 불어넣어준 이가 바로 홍 감독이다. 그는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에 취임한 뒤 구자철을 선발하고 주장 완장을 채워줬다. 선수시절 대표팀의 ‘영원한 주장’이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었던 홍 감독은 재능과 리더십, 자기관리 능력 등이 뛰어난 구자철을 자신의 팀 주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때부터 구자철은 확연히 달라졌다. 구자철은 “홍 감독님을 만난 게 나에게는 엄청난 의미가 있었다”며 존경과 감사를 표했다.

그는 주장답게 동료와 후배들을 하나로 만들며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팀이 8강에 진출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 물론 홍 감독의 지도력이 성적의 밑거름이 됐지만 구자철도 적지 않은 노릇을 했다는 게 코칭스태프의 전언. 그는 U-20 대표팀 경험을 바탕으로 태극마크의 중압감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세계무대를 경험하면서 다시 한 번 성장한 그는 K리그에서 눈에 띄게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구자철은 이를 바탕으로 다시 성인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남아공과 스페인에서 실시한 전지훈련에 참가했다. 그는 최종 엔트리에 들고자 안간힘을 다해 선배들과 경쟁을 벌였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 일은 그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1년 후배인 이승렬과 김보경은 최종 엔트리에 승선했지만 구자철은 스위스에서 남아공행이 아닌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큰 실패를 맛본 그는 슬럼프에 빠질 수 있었지만 오히려 K리그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며 남아공행 탈락의 아쉬움을 털어냈다. 월드컵이 종료되고 다시 시작된 K리그에서 구자철은 제주의 돌풍을 이끌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대부분의 경기에 출전하며 기량을 마음껏 펼쳤다. 감각적인 패스를 할 뿐 아니라 간혹 골까지 만들어내며 제주를 K리그 2위에 올려놓았다.

박경훈 제주 감독은 “구자철은 딱히 지시할 필요가 없는 선수다. 그라운드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컨디션 조절을 위한 자기관리도 뛰어나다. 감독으로서 예뻐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K리그의 활약을 밑천으로 구자철은 연맹 시상식에서 팬들의 투표로 가리는 가장 인기 많은 선수에 선발됐다. 도움왕, 베스트11을 수상하는 등 상복도 터졌다. 연말에는 스위스 영보이스라는 팀의 영입 제의를 받는 등 프로 입단 이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구자철은 “지난 1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어떻게 지냈는지 모를 정도로 바쁜 한 해였다. 그러나 팀이 좋은 성적을 내고, 개인적으로도 좋은 일이 많아 정말 기쁘다”며 환하게 웃었다.

구자철은 아시안컵을 통해 대표팀 주축 선수로서의 입지를 굳히며 기분 좋은 새해를 열었다. 그는 아시아 최고 권위의 대회에서 활약을 한 덕분에 스위스뿐 아니라 유럽 빅리그 팀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아시안컵 참관을 위해 카타르를 다녀온 홍 감독은 “현장에 유럽 스카우터가 많이 보였다. 구자철에게 더 좋은 기회가 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밝은 전망을 내놓았다.

2001년, K리그를 통해 기량을 검증받은 구자철은 박지성(맨유)처럼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거목으로 성장하기 위한 과정에 있다. 이를 위한 하나의 길목이 해외 진출이다. 그는 해외 진출을 통해서 더 넓은 세상에서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배우며 더 발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제주 구단도 구자철의 미래를 위해 해외 진출에 적극 협조할 계획이다.

구자철이 자신의 뜻대로 해외, 특히 유럽무대로 진출해 더 많은 경험을 쌓는다면 박지성처럼 한국축구를 이끌 선수로 우뚝 설 수 있다. 물론 쉽지는 않다. 유럽 선수들과의 거친 몸싸움을 이겨내야 하고, 다른 문화에도 적응해야 한다. 그래야만 만만치 않은 유럽에서 성공 스토리를 이어나갈 수 있다. 축구적 재능뿐 아니라 성실함을 무기 삼고 있는 구자철. 지금처럼만 노력한다면 ‘제2의 박지성’이라는 타이틀도 거머쥘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해본다.



주간동아 2011.01.24 772호 (p62~63)

최용석 스포츠동아 기자 gt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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