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1

2011.01.17

극단적인 두 형제 욕망 앞에 충돌

연극 ‘트루 웨스트’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1-01-17 1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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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적인 두 형제 욕망 앞에 충돌
    “사막에서는 개만큼도 필요 없을” 아이비리그 출신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오스틴. 휴가 간 어머니 대신 집을 지키던 그에게,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 영혼’, 나쁘게 말하면 ‘망나니’인 형 리가 오랜 사막생활을 마치고 찾아온다. 리는 성공한 동생을 사사건건 비꼬고, 동생은 형을 이해하지 못한다. 마침 오스틴이 잘나가는 영화 프로듀서 사울과 계약을 하려는데 리가 특유의 매력적인 성격으로 사울을 사로잡는다. 결국 사울은 오스틴이 아닌 리의 스토리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정한다.

    형 때문에 그토록 바라왔던 기회를 놓친 오스틴은 충격에 빠져 술만 마시고 글도, 구성도 모르는 리는 스토리를 진행할 수 없다. 마치 오스틴과 리의 모습이 바뀐 것처럼. 점차 파멸해가는 두 사람은 결국 거래를 한다. 오스틴의 도움으로 리가 시나리오를 완성하면, 오스틴을 사막으로 데려가주기로 한 것. 하지만 둘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결국 오스틴은 전화선으로 리의 목을 졸라 살해한다.

    샘 셰퍼드 원작의 ‘트루 웨스트(True West)’는 ‘국내 최초 정식 라이선스 공연’이라는 불필요한 수식어를 뛰어넘어 ‘대학로에 이토록 치열한 연극이 있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워낙 이야기 전개가 빠르고 예상하기 힘들어, 한순간이라도 놓치면 스토리를 따라갈 수 없다. 막이 오른 직후부터 두 배우는 속사포처럼 대사를 쏟아낸다. 관객들이 미처 두 형제의 관계를 눈치채기도 전에 둘은 갈등하고 싸우고 부딪친다. 이야기는 계속해서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실감나게 오스틴이 형의 목을 조르는 순간 관객들은 모두 경악한다.

    하지만 그 거친 몸싸움에 어려움 없이 공감하는 것은 결국 형제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한 번쯤 너처럼 캠퍼스에서 책을 끼고 걸어보면 어떨까 궁금했다”는 형과 “내 상상 속에서 형은 늘 모험이 있는 곳에 있었다”며 형을 동경하는 동생. 달라도 너무 다른 형제는 자신이 갖지 못한 서로의 장점에 대해 속으로는 부러워하고 겉으로는 경멸한다. 수많은 현실의 형제들이 과거에 겪었던, 지금도 견디고 있을 갈등이다. 이런 ‘뜨거운 형제들’의 보편적인 감정을 ‘서부극 시나리오 짓기’ 과정에 투입해 더욱 이야기를 풍부하게 했다.

    쿼드러플 캐스팅(배역당 동시에 4명을 캐스팅)으로 배우 중 특히 눈빛이 서글서글한 오만석이 광기 가득한 형 리 역할로, 오랫동안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배우 홍경인이 모범생 동생 역할로 분했다. 최근 뮤지컬 ‘그리스’ ‘헤드윅’ 등에 출연하며 천천히 커리어를 쌓아가는 조정석의 정교한 연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2월 27일까지, 대학로 컬처스페이스 엔유, 02-6273-5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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