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6

2010.12.13

TV 단막극 부활 좋다 말았네

신인 발굴과 양성 긍정적 평가에도 경제 논리에 밀려 편성 외면

  •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입력2010-12-13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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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 단막극 부활 좋다 말았네
    #1. 올해 영화 ‘아저씨’로 대종상영화제와 대한민국영화대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원빈. 그는 거칠고 반항적이지만 따뜻한 마음을 지닌 차태식을 잘 연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데뷔 초 지나치게 잘생긴 얼굴 때문에 청춘 드라마에 주로 캐스팅됐던 그가 외모를 넘어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 KBS 주말연속극 ‘꼭지’에서 연상의 다방 마담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문제아 고등학생 송명태를 연기하면서부터다. 하지만 당시 ‘꼭지’의 PD와 작가는 원빈의 꽃미남 이미지 때문에 캐스팅을 주저했다고 한다. 결국 KBS 측은 원빈에게 단막극 ‘그가 간이역에 내렸다’(KBS ‘일요베스트’)에서 명태 역과 비슷한 역할을 주었고, 가능성을 확인한 뒤 연속극 캐스팅을 확정했다.

    #2. 1995년 MBC는 창사 특집 드라마로 궁중에서 요리 대결을 펼치는 두 여인의 삶을 다룬 단막극 2부작 ‘찬품단자’를 선보였다. 이 드라마는 대표적인 한류 드라마 ‘대장금’의 모티프가 됐다. 주인공은 이영애로 동일하다.

    흔히 단막극은 신인 연기자, 작가, PD의 등용문이자 기존 연속극과는 다른 형식과 내용을 실험할 수 있는 무대라고 한다. 위의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슷한 이야기는 이 밖에도 많다. 영화배우 전도연과 소지섭은 단막극 ‘간직한 것은 잊혀지지 않는다’(MBC ‘베스트극장’)에 출연했으며 김윤석과 엄태웅도 ‘제주도 푸른밤’(KBS ‘드라마시티’)에서 호흡을 맞췄다. 배우만이 아니다. ‘간직한 것은 잊혀지지 않는다’를 연출한 PD가 바로 드라마 ‘궁’으로 유명한 황인뢰 PD. ‘거짓말’ ‘그들이 사는 세상’ 등을 히트시킨 노희경 작가는 ‘세리와 수지’(MBC ‘베스트극장’)를 통해 방송에 데뷔했다.

    평균 시청률 4%대로 고전

    하지만 언젠가부터 TV에서 단막극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방송사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고정 단막극 프로그램 폐지를 선언한 것. 단막극 한 편을 제작하는 데 보통 1억50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데 광고 수익성은 그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단막극 한 편이면 예능 프로그램 2~3편은 만들 수 있다는 논리도 따라붙었다.



    결국 MBC는 단막극 프로그램 ‘베스트극장’을 2007년 3월에 폐지했고, KBS는 2008년 3월 ‘드라마시티’를 마지막으로 시청자와 작별을 고했다. SBS는 2004년 ‘오픈드라마-남과 여’를 끝으로 일찌감치 고정 단막극의 막을 내렸고 명절, 창사기념일 등 특별한 날에 특집 단막극을 방송해왔다. MBC와 KBS는 각각 1983년, 84년부터 프로그램의 명칭만 바꾸었을 뿐 20년 넘게 고정 단막극을 방영해왔기에 단막극 애청자들의 허전함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2010년 고정 단막극이 안방극장을 다시 찾아왔다. KBS가 5월 15일부터 11월 27일까지 6개월여 동안 ‘드라마스페셜’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24편의 단막극을 선보였다. MBC도 9월 26일부터 10월 17일까지 ‘일요드라마극장’을 통해 4편의 단막극을 방영했다.

    시청률 조사기관 TNmS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드라마스페셜’의 평균 시청률은 4.3%,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단막극의 시청률은 7.6%. ‘일요드라마극장’의 평균 시청률은 4.1%, 최고 시청률은 4.6%다. 미니시리즈나 연속극 등의 장편 드라마 기준으로 보면 ‘망한’ 드라마나 다름없다. 하지만 드라마 관계자와 시청자 대부분은 이번 단막극 프로그램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단막극의 최대 미덕은 새로운 인재 발굴이다. KBS ‘드라마스페셜’의 책임프로듀서인 문보현 CP는 “이번 단막극에서 눈에 띄는 작가만 대충 꼽아도 대여섯 명”이라며 “작가, PD는 물론 좋은 작품까지 발견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후배 PD들이 선배 PD가 연출하는 미니시리즈나 연속극에서 조연출을 할 때는 각자의 성향이나 재능을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예를 들어 차분하고 꼼꼼한 성격의 후배를 보고 따뜻한 가족극을 잘하겠다고 판단했는데, 이번에 연출한 단막극을 통해 거칠고 반항적인 드라마 연출에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다. 또 인상적인 몇 편의 단막극은 4부작이나 시추에이션 드라마로 만드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드라마 작가들의 평가도 비슷하다. 과거에는 작가들이 단막극 극본 공모전에서 수상하면 단막극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하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하지만 방송에서 단막극이 사라지면서 신인 작가가 데뷔할 무대 자체가 없어졌다. 한국방송작가협회 박진숙 교육원장은 “공모전에 당선되고도 데뷔하지 못하는 작가가 수두룩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번 ‘드라마스페셜’을 통해 데뷔한 허성혜 작가 역시 2009년 단막극 극본 공모전에 당선됐지만 작품이 언제 방송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허 작가는 “나의 경우 단막극 부활 시기와 맞아떨어져 운이 좋았다”며 “예비 작가 중에는 데뷔 한 번 못하고 이 바닥을 떠나는 이도 많다”고 전했다.

    과거 단막극은 신인을 양성하고 훈련하는 인큐베이터로도 통했다. 그러나 단막극이 사라진 뒤 방송국에 입사한 PD들은 선배가 연출하는 장편 드라마에서 경험을 쌓다가 장편으로 ‘입봉’(조연출자에서 연출자로 데뷔하는 것)한다. 문 CP는 “장편 드라마는 시청률이 중요하기 때문에 드라마 내용과 형식이 비슷하다. 선배의 작품에서 조연출로 일하다 보면 자신만의 개성이 사라진다”며 안타까워했다. MBC 일요드라마극장에서 ‘나야, 할머니’를 연출한 정대윤 PD는 2004년에 MBC에 입사했다. 정 PD는 “선배 작품에서 조연출을 할 때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연출할 때의 차이는 엄청나다. 주인의식, 책임의식이 있기 때문에 70분짜리 짧은 극이지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TV 단막극 부활 좋다 말았네

    1 소통이 단절된 가족을 유쾌하게 그려낸 ‘가족의 비밀’(연출 김정민, 극본 허성혜). 2 도박, 야구, 사채 등의 소재를 기발하게 버무린 ‘텍사스 안타’(연출 박현석, 극본 한상운).

    창작의 자유와 다양한 실험 가능

    드라마 작가들 사이에서는 극본만 100편 쓰는 것보다 한 편을 쓰더라도 방송에 나가는 데서 더 많이 배운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드라마 극본은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쓰는 것인 만큼 방송을 통해서 극본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희경 작가는 “단막극은 한 편의 이야기에 주제, 구성, 촌철살인의 대사 등을 완성도 있게 녹여내야 한다”며 “단막극을 통해 미스터리, 멜로, 스릴러, 가족극 등 많은 장르를 쓰다 보면 작가의 가능성이 커지고 수명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장편 드라마는 시청자를 매회 끌고 가야 하기 때문에 기존의 드라마 공식에 의지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단막극은 일회성이라 창작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 시청자는 기존 공식과는 다른 종류의 드라마를 볼 기회를 얻는다. 대중문화 비평 전문 매거진 ‘텐아시아’의 백은하 편집장은 “주변부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다든지 과감한 대사, 하드코어 장르 등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TV에서 다시 단막극이 사라졌다. 11월 27일 막을 내린 KBS ‘드라마스페셜’은 내년 여름 정도에 시즌2로 돌아올 예정이며 MBC, SBS는 고정 단막극을 선보일 계획이 현재로서는 없다. 각 방송국 드라마 관계자들은 “단막극의 순기능과 필요성에 대해 기본적으론 동의하지만 수익성이 여전히 걸림돌”이라고 입을 모은다. SBS 허웅 드라마 국장은 “단막극이 제작비용 대비 효과를 고려했을 때 방송국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다”며 “차선으로 1~2회성으로 단막극을 방영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라고 전했다.

    단막극은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오히려 수익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기자가 만난 PD, 작가들은 하나같이 “단막극 부활은 드라마 산업을 위한 경쟁력 측면에서도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류 열풍을 이끈 ‘대장금’도, ‘칸의 여왕’ 전도연도 단막극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 지상파에서 단막극이 제대로 부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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