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6

2010.12.13

부풀려진 외국계 컨설팅 짐 싸!

지난 10년간 폭발적인 성장 불구 실력 의심…기업들 절대 의존에서 내부 역량 강화로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0-12-13 09: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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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풀려진 외국계 컨설팅 짐 싸!

    맥킨지코리아의 서울 사무실.

    “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남에게 맡기냐?”

    10월 1일 취임한 LG전자 구본준 부회장이 조직과 업무 파악에 나서면서 한탄조로 내뱉었다고 전해지는 말이다. 전임 남용 부회장 체제하의 LG전자는 ‘컨설팅 경영’이라 불릴 만큼 컨설팅을 맹신했다. 남 전 부회장은 지속적으로 맥킨지(McKinsey) 컨설팅을 통해 의사결정을 했을 정도다. 매년 맥킨지에 지불하는 컨설팅 비용만 수백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 전 부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 브래들리 갬빌 최고전략책임자(CSO) 등 맥킨지 출신 외국인 임원 여럿을 영입했다. 그러다 보니 LG전자 젊은 직원들 사이에선 “우리가 할 일이 뭐 있나, 어차피 다 맡길 텐데”란 자조 섞인 불만과 함께 3G(맥킨지, P&G, (주)LG의 끝 발음을 딴 것) 출신이 LG전자를 망친다”는 볼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그러나 남 전 부회장이 물러나고 구 부회장이 LG전자의 구원투수로 등장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12월 1일 LG전자는 조직개편을 통해 BS(비즈니스 솔루션)사업본부를 폐지해 조직을 슬림화하는 한편, 그동안 업무 효율성 논란을 빚어온 외국인 최고책임자급(C레벨) 임원 전원을 퇴진시켰다. 또한 구 부회장이 외부 컨설팅사들과의 관계도 청산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동안의 밀월관계도 사실상 정리했다. 경영 컨설턴트들의 조언대로 마케팅에 치우치다가, 정작 중요한 기술 개발을 등한시해 스마트폰 경쟁에서 낙오했다는 판단에서다.

    LG전자, 맥킨지와 결별

    이를 두고 재계 일각에선 지난 10여 년간 브레이크 없이 달려왔던 외국계 컨설팅사의 질주에 제동이 걸린 것으로 평가한다. 국내 컨설팅산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12%(2008년 통계청 기준)가 넘을 만큼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왔다. 성장의 계기는 1998년 외환위기였다. 국내 기업들은 대외신인도를 높이기 위해 앞다퉈 컨설팅사를 찾았다. 경영에 무엇이 문제인지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한다는 명분에서였다. 전략, 인적자원, 운영관리, 정보기술 등 뭐든지 잘 모르는 것은 일단 컨설팅사에 용역을 의뢰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정부기관 및 대학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이 부실기업 및 금융기관의 구조조정, 인수·합병(M&A), 대학의 발전방향, 한국 경제의 진로 등에 대해 용역을 의뢰하면 컨설팅사들은 보고서를 척척 만들어냈다.



    특히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운 외국계 컨설팅사의 인기가 높았다. 여기에는 국내 전문가는 민감한 사안이나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이로 인해 국내 컨설팅 시장은 맥킨지,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베인앤컴퍼니(Bain·Company) 빅3와 모니터(Monitor), AT커니(AT Kearney) 등 글로벌 컨설팅사가 독차지해왔다.

    이처럼 외국계 컨설팅사들이 호황을 누린 데는 용역을 발주하는 클라이언트와 이들 컨설팅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한 중견기업 임원은 “경영진 간 의견대립이 있을 때 각각 외국계 컨설팅사의 권위를 빌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자기 주장을 너무 강하게 하면 책임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에 적당히 컨설팅사를 이용해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컨설팅사 역시 컨설팅 명목으로 수백억 원에 달하는 비싼 수수료를 챙기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산업 이해도 떨어져 비판 시선

    그러나 경영진의 절대적 믿음과는 달리 현장 담당자들 사이에선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음에도 그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회의감이 팽배했다. 외국계 컨설팅사들이 만들어낸 보고서 중엔 고도의 전문성이 담긴 것도 있었지만, 너무 빤한 이야기를 번지르르하게 포장해 실제 알맹이는 없는 것이 적지 않았다. 국내 컨설팅사의 한 컨설턴트는 “굴지의 외국계 컨설팅사가 낸 보고서라 할지라도 어떤 보고서는 100쪽 중 10쪽만 알맹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포장을 위해 기업들은 외국계 컨설팅사를 찾았다”고 지적했다.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다르게 문제점 파악이나 자료수집, 심지어는 해결방안까지 용역을 발주하는 기관에서 제공하고, 공동 작업을 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컨설팅사와 여러 차례 작업을 같이 한 모 대기업의 한 부장은 “컨설팅사가 클라이언트의 경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외부에 알려져 있지만 이는 큰 착각”이라며 “보고서 작성을 위한 대부분 일은 우리 직원들이 하고 외국계 컨설팅사는 이름만 빌려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기업들 사이에선 몇 년 전부터 외국계 컨설팅사 절대적 의존에서 탈피해 내부 컨설팅 역량을 강화하는 변화된 흐름이 나타났다. LG전자와 함께 맥킨지의 국내 주요 고객이었던 두산그룹이 대표적인 사례다. (주)두산 박용만 회장은 LG전자 남 전 부회장 못지않은 ‘맥킨지 신봉자’로 알려져 있다. 두산그룹과 맥킨지의 인연은 맥킨지가 1990년대 말 두산그룹에 대한 경영진단을 내려 두산그룹이 OB맥주를 매각하고 중화학그룹으로 탈바꿈한 데서 시작됐다.

    맥킨지의 컨설팅을 받은 직후 두산그룹은 중장기 전략을 만드는 회장의 직속 전략 기구인 ‘Tri-C’팀을 조직했다. 단순히 외부 컨설팅사의 도움을 받는 것을 넘어 자체 역량을 키우겠다는 포석이었다. Tri-C팀 역시 초기에는 맥킨지를 비롯해 외국계 컨설팅사에서 인력 충원을 해왔지만, 지금은 국내 유명 경영대학생 및 MBA 출신자를 공채하거나 사내에서 필요인원을 충원하고 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두산은 외부 역량이 필요할 경우 글로벌 컨설팅사의 도움을 받고 있으나 이제는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다”며 “Tri-C팀은 내부 역량을 강화해 지주회사와 계열사 간의 브리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그룹의 경우 계열사별로 개별 프로젝트에 따라 외부 컨설팅업체가 참여하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는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외부 컨설팅사는 조직 구성원들보다 산업이나 제품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굳이 이들의 판단에 의존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원, 현대경제연구원 등 대기업 계열사 경제연구원도 일정 부분 ‘인 하우스(In House)’ 컨설팅 역할을 담당한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LG전자 역시 내부 컨설팅을 활성화하고, 전사 차원의 컨설팅보다는 필요한 때 소규모로 외부 컨설팅을 진행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계 컨설팅사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한국에서 기업, 정부기관과 컨설팅사 간의 밀월관계가 단번에 깨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얼마나 효과를 보았는지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가 일면서 외국계 컨설팅사에 대한 환상도 상당 부분 벗겨진 것이 사실이다. LG전자와 맥킨지의 결별이 컨설팅 시장 전반에 어디까지 파장을 미칠지 그 여진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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