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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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공주’는 지금 포근한 발걸음

안팎으로 대외활동 폭넓은 교류…틈날 때마다 콘텐츠 채우기에도 주력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입력2010-12-13 09: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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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다. 외모뿐 아니다. “몇 시간이고 변함없이 단정한 자세”로 유명한 ‘얼음공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빈틈없는 이미지에 걸맞게 그의 하루는 새벽같이 시작된다. 서울 강남구 삼성2동 저택 2층 방은 매일 새벽 5시 반이면 환하게 불이 켜지고, 오전 9시면 비서 등 보좌진이 출근한다. 외부 일정이 없는 날에는 대부분 집에 머무르며 독서, 공부, 보고서 검토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박 전 대표는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조용한 행보’를 고집하며 일절 말과 행동을 삼갔다. 그런 그가 최근 적극적이고 스스럼없이 대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친이·친박 의원을 두루 만나는 한편 대외 행사에 참가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박 전 대표는 최근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무슨 생각에 골몰해 있을까.

    새벽부터 빈틈없는 일정

    12월 7일 오전 10시를 조금 앞둔 시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이하 기재위) 전체회의가 열리는 국회 본청 430호 회의실. 삐걱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 사이로 검은 재킷에 빨간 니트를 받쳐 입은 박 전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1등으로 출석한 그가 홀로 회의실을 지키길 10여 분.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 등이 차례로 출석해 박 전 대표와 인사를 나눴다. 이날 주요 안건은 소득세와 법인세 추가 감세 조정.

    기재위 소속 여야 의원은 26명에 달하지만 이날 모습을 보인 의원은 4~5명에 불과했다. 결국 회의는 열리지 못했다. 출석 의원 수도 절대적으로 부족했지만, 한나라당의 내부 의견이 정리되지 못한 탓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오전 11시 ‘제12회 백봉신사상’ 시상식이 열리는 국회 귀빈식당. 박 전 대표가 식당에 들어서자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백봉신사상은 독립운동가이자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백봉 라용균 선생을 기리기 위해 1999년 제정된 상으로, 국회 출입기자단이 모범 의원들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수상자를 정한다. 올해 수상자는 박 전 대표를 비롯한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천정배 의원 등이다.

    하지만 이날 모든 언론의 눈은 박 전 대표에게 쏠렸다. 같은 날 이석현 의원이 원내대책회의에서 ‘박근혜 의원 사찰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이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얘기는 많이 있었잖아요”라는 정도로 간단히 언급하고 말았다. 이어진 수상소감에서는 “이 시대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고, 진정한 신사가 무엇인가에 대해 여야를 떠나 (수상자 모두) 깊은 고민을 하실 것”이라고 자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후에는 오전에 열렸다가 연기된 기재위 회의가 다시 시작됐다. 일정이 몇 차례 연기되는 우여곡절 끝에 열렸다. 기재위는 이날 감세를 예정대로 하되 소득세 최고세율(35%) 구간을 신설하자는 한나라당 안과 고소득층에 대한 감세는 완전히 철회하자는 민주당 안을 놓고 표결을 할 예정이었지만, 결정을 내년으로 연기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문제를 박 전 대표의 발언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그는 전체회의에서 “법인세 감면은 예정대로 하되 8800만 원 이상 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은 현행대료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표의 의견에 따라 당 전체 방침이 재고될 만큼 최근 여의도에서 그의 무게감은 남다르다”라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상임위에 꼬박꼬박 출석하고, 비공식적으로 여러 인사를 두루 만난다. 당내 인사는 물론 경제, 과학기술, 안보, 복지 등 관심 분야 전문가들과 교류하고 있다. 평소 눈여겨본 단체(팬클럽)와 함께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의원실 한 보좌관은 이렇게 박 전 대표의 최근 일상을 소개했다. 별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방점은 ‘교류’에 찍힌다. 그는 최근 안팎으로 대외활동의 보폭을 넓히고 있다. 국회 내부에서는 적극적으로 당 소속 의원들과 스킨십을 강화하는 중이다. “면담 요청이 오면 웬만하면 다 만나려고 노력한다”는 게 이 보좌관의 전언이다.

    경직된 평가와 180도 다른 행보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는 과거 평가와는 180도 다른 행보. 자연히 친박계 행사에 친이계 또는 중립 성향 의원들이 참석하는 일도 잦아졌다. 11월 14일 경북 구미시 상도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93회 탄신제’에 친이계인 강석호 의원이 참석했고, 10월 26일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 31주기 추도식에도 중립 성향 이범관 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외부활동도 활발하다. 최근 웬만한 행사에 모두 얼굴을 내비치며 지지기반을 다지고 있다. 11월 마지막 주말, 박 전 대표는 정신없이 전국을 누볐다. 11월 20일 방문지는 부산. 그는 측근인 이정현 의원 등과 함께 부산에서 열린 ‘포럼부산비전 창립 4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포럼부산비전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대비해 만들어진 지원조직이다. 부산지역 전문직 종사자를 중심으로 한 1000여 명의 회원이 있다. 이날 행사에는 서병수 최고위원을 비롯해 한나라당의 유기준, 허원제, 박대해, 유재중, 이종혁, 현기완, 김세연, 이진복, 이학재 의원 등과 김병호 전 의원이 참석해 ‘박근혜 세’를 과시했다.

    21일에도 박 전 대표의 대외행보가 계속됐다. 처음 찾은 곳은 시사평론가 김대우 씨가 출간한 ‘박근혜와 커피 한 잔’ 출판기념회. 행사가 열린 서울 마포구 신수동 거구장에는 출판 관계자, 정계 관계자, 지지자 등 500여 명이 모여 북새통을 이뤘다. 기념회가 끝난 뒤에는 팬카페 ‘근혜동산’의 창립 2주년 행사가 이어졌다.

    행사가 끝나기 무섭게 박 전 대표가 날아간 곳은 경기도 화성의 한 농장. 이곳에서 그는 또 다른 팬카페인 ‘호박가족’ 회원 300여 명과 배추, 무, 파 등을 수확했다. 1시간 30분 가까이 수확을 한 뒤 그는 가쁜 숨을 내쉬며 “3회째를 맞는 ‘사랑의 김장나누기’를 위해 농사를 함께 한 팬카페 회원들에게 고맙다”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해당 단체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다. 박 전 대표가 이런 점을 높이 사 매년 봉사활동을 함께 해오고 있다”는 게 박 전 대표 측의 설명이다.

    콘텐츠 채우기에도 열심이다. 박 전 대표가 최근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분야는 경제, 외교안보, 복지다. 분야별로 다양한 자문그룹을 만나 조언을 받으며 시야를 넓히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 조언을 받는 사람은 당내 경제통인 이한구, 서병수 의원 등으로 알려졌다. 때론 진보성향의 전문가를 만나 자문하고 직언을 수용하는 등 한층 유연해진 모습이라는 게 박 전 대표 측근들의 전언이다.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노력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여실히 증명됐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등 피감기관장이나 관계자들은 박 전 대표의 예리한 지적과 깊이 있는 대안 제시에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대권을 향한 움직임도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2012년 차기 대선까지 남은 시간은 2년이지만, 대선정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까지는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현재로선 박 전 대표의 당선 가능성은 여야 어느 대선주자보다 높다. 여야 어느 곳에서도 박 전 대표와 겨룰 대항마가 아직 출현하지 않은 현재로선 ‘독보적’이라는 평이 대세다. 자연히 활발해진 최근 행보에는 “대권 레이스에 본격적으로 힘을 싣는 것”이라는 관측이 따라붙는다. 정치권 한 관계자의 이야기다.

    ‘대권 레이스’ 시선에는 부담

    “다양한 포럼 등 외곽지원 단체들이 서서히 움직이는 조짐이다. ‘박근혜 대세론’이 확산되면서 영남지역은 물론 호남지역에서도 지지조직이 가시화되고 있다. ‘호남연대’ ‘국민희망포럼’이 대표적이다. 지난 대선 때 레이스 조절에 실패한 경험으로, 이번에는 빠르게 세를 결집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한 보좌관은 “의도적으로 변화를 추구한 것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다음은 이어지는 그의 설명.

    “비키니 사진은 4년 전쯤 우연히 공개된 건데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을 뿐이다. 서강대 이공계 광고모델로 나선 것도 정치적 의미는 없다. 좋은 취지로 응했는데 사진이 그렇게 크게 나올 줄 몰랐다. ‘썰렁 유머’도 자주 구사하는데, 최근 의원들과 만나면서 그 내용이 공개됐다.”

    박 전 대표의 적극적 행보는 연말까지 이어질 거라는 관측이 대세다. 은둔하던 과거와 달리 송년 모임에도 최대한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만큼 ‘미래권력’을 눈독 들인 주변인도 늘어났다. 하지만 박 전 대표 측은 “조기 대권 레이스가 시작됐다는” 평가를 불편해한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 역할을 하는 이학재 의원은 “경색됐던 정치권 분위기가 풀리고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되면서 자연히 외부 활동이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어 “시간이 닿는 한 의원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고자 한다. 하지만 초청행사, 강연 등 정치적인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절제하고 있다. 현 정권하에서는 대통령에게 관심이 쏠려 있어야 하는데, 벌써부터 대권 레이스를 시작했다는 평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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