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9

2010.10.25

고려인삼 죽은 사람도 살린다, 살려!

한의학적으로 풀어본 한·중·일 인삼 이야기

  • 임진호·한의학 박사, 한방 안이비인후 피부과 전문의

    입력2010-10-26 1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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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인삼 죽은 사람도 살린다, 살려!
    인삼은 2000년 전부터 그 약효가 알려졌으며 주산지가 우리나라로 돼 있는 귀한 약재다. ‘삼국사기’에는 “당나라에 선물로 인삼을 보냈다”는 기록이 성덕왕 편과 효소왕 편 등에 나타난다. 당나라 이순(李珣)이 편술한 ‘해약본초’에는 “인삼은 신라국에서 산출한다. 왕에게 바친 것은 손과 다리 모양이다”라고 산출지와 형태가 분명하게 묘사돼 있다.

    귀한 약재이다 보니, 그것을 통제하기 위한 무서운 법적 조치도 마련됐다. ‘경국대전’ 속대전을 보면 “인삼을 감춰 간 자는 국경 상에서 목을 베어라”는 구절이 나오며, 일본과의 대마도 교역에서도 “밀매 시 적발되면 효수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인삼의 어원학적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삼(蔘)은 사실 여러 약물에서 사용되는 이름이었다. 하늘에는 새가 산삼씨를 먹고 발효된 발 없는 새삼이 있고, 바다에는 해삼(海蔘)이, 땅에는 인삼이 있다. 색깔도 다양하다. 검은색으로 해열제와 소염제로 쓰이는 현삼(玄蔘), 지혈제로 쓰이는 꿀풀과의 붉은색 단삼(丹蔘)이 있다. 이 밖에도 진해거담과 강장 해독제로 쓰이는 도라지과 사삼(沙蔘), 해열제와 진해제로 쓰이는 자삼(紫蔘)이라는 약재도 있다. 구충제로 쓰이는 콩과의 고삼(苦蔘)을 합쳐 오삼이라고 불렀다(후한대 ‘신농본초경’).

    사실 조선시대 이전까지 ‘蔘’이라는 글자는 초두머리를 제외한 ‘參’을 썼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한자로는 그렇게 썼지만 우리말로 ‘심봤다’라고 할 때 ‘심’이 인삼을 가리킨다. ‘參’은 하늘에 떠 있는 별자리 28수 중 서쪽 하늘을 관장하는 삼성(參星), 즉 오리온 별자리를 가리킨다. 사회적 의미로 풀면 나라에선 충신을 뜻하고, 집안에선 효자를 뜻한다. 인삼의 인(人)은 형태가 사람을 닮았다는 것에서 비롯됐지만, 하늘과 땅이 서로 교류하면서 만든 최고의 영물이라는 뜻도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인삼은 하늘과 땅이 만든 약초로, 충신과 효자 노릇을 한다는 깊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춘향전’에 비견되는 일본 최고의 국민문학인 ‘주신구라(忠臣藏)’에는 고려인삼이 천하의 명약으로 등장한다. 다 죽어가던 사람이 빚을 내 고려인삼을 먹고 기사회생하는데, 인삼 값이 얼마나 비쌌던지 빚을 갚지 못해 목을 매달고 죽는다는 비장한 내용이다. 이 이야기에서 ‘인삼 먹고 목맨다’라는 일본 속담까지 나왔다. 우리나라 속담으로 치면 ‘죽 쒀서 개 준다’ 정도의 의미다.



    중국과 일본서 ‘최고의 명약’ 희소성과 가치 인정

    고려인삼 죽은 사람도 살린다, 살려!

    세계기록유산 의학서로 첫 등재된 ‘동의보감’.

    그뿐만이 아니다. 겐로쿠시대 때 일본은 조선과의 인삼 수교로 막대한 양의 은화가 빠져나가 자국 내 은이 고갈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이로 인해 순도가 낮은 화폐(겐로쿠 은)를 새로 발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선의 인삼 상인들이 이를 받아줄 리 없었다. 일본 정부가 울며 겨자 먹기로 조선과의 인삼 거래 시에만 사용할 수 있는 은화를 주조했는데, 그것이 바로 ‘인삼대왕고은(人蔘大王高銀)’이다. 인삼만을 위한 화폐가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실상을 조선의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왜인의 풍속에 병이 생기면 반드시 인삼을 쓰고 얻지 못하는 자는 죽으니, 만일 무역을 막으면 죽음으로써 다투어 시비가 벌어지기 쉬울 것이므로 부득이 교역을 허락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18세기 무렵까지도 중국에서는 부모의 병이 깊을 때 인삼을 살 돈이 없으면 약재상에 가서 고려인삼을 빌려다가 병상에 진열해놓고 문병 온 사람에게 자신의 효성이 지극함을 보이는 것이 유행일 정도였다고 하니, 고려인삼의 희소성과 가치가 대단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인삼은 땅과 지형을 많이 가리는 약재다. 마른 것, 습한 것을 모두 싫어하며 여름철에는 뜨거운 햇빛을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까다로운 성질이 바로 인삼의 강력한 효능의 근거가 된다. 그만큼 뜨겁고 강한 기운을 타고났기에 재배 환경이 조금만 어긋나도 스스로를 말려버린다.

    금원시대의 유명한 의사 가운데 한 명으로 의왕(醫王)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동원 선생은 인삼이 원양(元陽)을 보(補)한다고 했다. 인체의 가장 근원이 되는 양기(陽氣), 즉 신체를 움직이는 가장 근본적인 에너지를 보충해준다는 말이다.

    이러한 인삼의 효능이 놀라운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한 번 심으면 이동 없이 한 곳에서 4~6년을 생장하면서 지력을 모두 빨아들이기 때문에 인삼을 한 번 재배한 땅은 10년 이상 인삼을 심지 못할 정도다. 그리고 인삼은 해가 갈수록 효능이 달라진다. 1~2년산은 위장에서 소화 기능을 북돋우며, 연수가 더해짐에 따라 폐에서 호흡 기능을 돕고 신장에서 원기를 생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시간이 더해지면 간장으로 들어가 근육의 힘을 강하게 하는 데 기여하며, 5년근 이상이 되면 정신 작용과 감각 기능을 원활히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동의보감 “심장의 구멍 열고 … 피로 쌓인 질환 원기 보충”

    고려인삼 죽은 사람도 살린다, 살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고려인삼에 대해 “심장의 구멍을 열고 기억력을 좋게 한다”고 씌어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인삼의 효능을 설명하고 있다. 정신을 안정시키고 눈을 밝게 하며 심장의 구멍을 열고 기억력을 좋게 한다는 것. 특히 오랫동안 피로가 쌓인 질환에 원기를 보충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런 한방의 인삼 효능은 현대과학을 통해서도 속속 증명되고 있다. 최근 국내외 학자들은 인삼이 독감(인플루엔자) 백신의 효과를 높이고, 간질환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인삼이 심신의 기운을 북돋워 허약한 상태를 개선하고 인체의 면역력을 증강시키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근로시간이 가장 긴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그만큼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쉬어도 피로가 쉽게 풀리지 않을뿐더러, 하루 종일 권태감을 느끼기도 하고 집중력과 기억력이 저하되기도 한다. 이런 상태라면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약재가 있다면 무엇일까. 바로 인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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