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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孫으로 덮은 갈등 건드리면 터진다?

민주당 손학규 체제로 새 출발 … 全大서 드러난 계파 간 이견은 일단 잠복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孫으로 덮은 갈등 건드리면 터진다?

10·3전당대회 다음 날인 4일 아침, 민주당 정세균 최고위원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 관계자도, 의원실 관계자도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정 최고위원은 전날 전당대회에서 손학규 당 대표와 함께 선출된 최고위원 6명 중 1명이다. 정상적이라면 이날 오전 7시 30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과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9시에 열린 첫 최고위원회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나중에 확인된 사실이지만, 정 최고위원은 그 시각 측근들과 조찬회동을 겸한 대책회의를 하고 있었다. 최고위원직을 던지고 ‘백의종군’을 하느냐, 아니면 최고위원으로 남아 당 운영에 참여하느냐를 두고 숙의(熟議) 했던 것.

이날 오후 당 안팎에선 정 최고위원의 사퇴가 당 분열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전당대회 기간 손학규, 정동영, 정세균 ‘빅3’ 계파 간 깊게 팬 갈등의 골이 표면화하면 자칫 정권교체의 희망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했다. 만약 최고위원직을 사퇴할 경우 정 최고위원은 전당대회 때 지지해준 대의원과 당원들의 기대를 저버림은 물론, 전당대회 결과 불복에 따른 비난 여론까지 감수해야 할 처지였다. 결국 정 최고위원은 10월 6일 오전 광주에서 열린 두 번째 최고위원회 회의에 모습을 나타냈다. 정 최고위원은 이날 모두 발언을 통해 그동안의 심경과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시험대에 오른 집단지도체제

“민심은 천심이고, 당원 동지들의 뜻은 항상 옳고 존중돼야 한다. 정권교체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이 선이고 도움이 안 되는 일은 악이다.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선당후사일 것이다. 자신부터 선당후사를 실천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은 선당후사가 돼야 하고 저는 그런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이다.”



정 최고위원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최고위원회 회의에 나온 소감과 심경 변화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 최고위원은 “모두 발언 내용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고만 짧게 답했다. 불편한 감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새롭게 꾸려진 당 지도부 모두 화합을 외치지만 당권은 물론 대권을 둘러싼 계파 간 갈등이 상존하고 있음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민주당 지도체제가 전당대회를 앞두고 단일지도체제에서 집단지도체제로 바뀐 것은 여러 측면에서 당내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그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 지도부에 가장 많이 입성한 세력은 비주류 모임인 ‘민주희망쇄신연대’(이하 쇄신연대)다. 정동영, 천정배, 박주선, 조배숙 등 최고위원 4명이 모두 이 모임 소속이다. 이들은 전당대회에서 당 지도부 동반 진출을 위해 ‘전략투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쇄신연대 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천정배 의원이 막판에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민주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박주선 의원이 최소한 4위 정도 할 것으로 예상돼 나머지 후보들이 천 의원을 조직적으로 지원키로 내부적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 결과 오히려 박 의원이 피해를 봐 6위로 밀리고 천 의원이 5위에 오른 것 같다.”

쇄신연대는 당 대표 1명과 최고위원 6명 등 7명으로 구성된 당 지도부에서 4명을 차지하면서 명실공히 당 주류의 자리를 꿰찼다. 그만큼 당내 영향력도 커졌다. 이들은 앞으로도 행동을 같이할 계획이다.

정동영 최고위원 측은 “쇄신연대 소속 의원들은 그동안 같은 목소리를 내왔다. 최고위원회에서도 쇄신연대 단일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6일 저녁 만찬을 함께 한 30여 명의 쇄신연대 의원은 모임을 존속시키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앞서 이날 오후 쇄신연대 김성호 대변인 명의의 성명서도 발표했다. 이 성명서에서 쇄신연대는 당내 기득권 타파와 전면적인 당 쇄신을 주장한 손 대표를 지지하면서 동시에 압박했다. 성명서 내용 중 일부다.

“민주당의 전면 쇄신은 무엇보다도 기득권 타파에서 시작돼야 한다. 일체의 기득권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당원과 국민의 뜻이고 쇄신연대의 입장이다. 당의 지도체제가 기존의 단일성 집단지도체제에서 순수 집단지도체제로 바뀐 것은 지난 기간 일부 세력의 독단과 독선적인 당 운영이 초래한 시대적 산물이다. 손 대표는 말이 아닌, 즉각적인 실천을 통해 기득권 타파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쇄신연대가 주장한 ‘기득권 타파’는 사실상 정세균 최고위원을 겨냥하고 있다. 정 최고위원은 대표시절 486세력의 지지를 바탕으로 당권 연장을 위해 전국적인 조직망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다. 가장 공을 들였던 지역이 부산, 대구, 경남·북 등 영남권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대의원투표 결과만 놓고 보면 정 최고위원이 2위다. 전체 득표 2위인 정동영 최고위원을 앞서고, 1위를 한 손 대표와도 80표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은 것도 탄탄한 조직표 덕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쇄신연대가 기득권 타파, 즉 정 최고위원의 조직력을 무력화하는 데에 손 대표와 정치적 이해를 같이하고 있는 셈이다. 쇄신연대는 그러면서도 손 대표와 일정한 긴장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당 정체성에 대한 시각차가 크기 때문이다.

쇄신연대 소속 최고위원들은 전당대회에서 당 정체성을 지금보다 진보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주장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6일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다시 한 번 못 박았다.

“먼저 발톱 드러내는 사람이 진다”

孫으로 덮은 갈등 건드리면 터진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486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이인영 후보(오른쪽)를 최재성 후보가 바라보고 있다.

“광주 정신은 진보다. 10·3전당대회를 통해 민주당은 진보적 정체성을 명확히 했다. 민주당 3기 지도부는 집단지도체제다. 대표 개인의 생각이 정체성이 아니라 당헌과 강령이 정체성이다. 당헌 2조는 분명히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삼았다. 이것이 당의 목적이 됐다. 서랍에 넣거나 장롱에 넣어서는 안 된다.”

“진보와 개혁, 중도를 끌어안는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는 중도 성향의 손 대표와는 분명히 결이 다르다. 당을 더욱 선명한 진보정당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이인영 최고위원까지 가세하면 손 대표의 입지는 그만큼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전당대회에서 쇄신연대 소속 최고위원 4명과 이 최고위원을 지지한 대의원과 당원은 득표율을 기준으로 53%에 달한다. 손 대표 득표율은 21%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친노와 486세력 내부에 심각한 균열이 생긴 것도 또 다른 갈등의 불씨다. 친노진영은 손 대표와 정세균 최고위원 지지층으로 양분됐고 486세력은 손 대표와 정 최고위원, 이 최고위원 등으로 3분됐다. 손 대표와 이 최고위원을 지지한 486세력은 상당 부분 중첩된다. 전당대회에서 손 대표가 이 최고위원을 도와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정 최고위원과 유일하게 낙선한 최재성 의원을 지지한 486세력은 당내 비주류로 전락하고 손 대표와 이 최고위원을 지지했던 486세력으로부터 ‘486후보 단일화 실패’에 따른 비판을 받을 처지에 있다. 486후보 단일화 실패는 민주당 전당대회가 흥행에 실패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민주당 각 계파 간, 또는 계파 내부의 이처럼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민주당 내 갈등은 잠시 잠복 상태에 들어갔지만 폭발할 가능성은 상존해 있다. 다만 정기국회 국정감사와 예산심의가 이어지고 있어 잠복기간은 다소 길어질 전망이다.

“서로가 상처가 많이 났다. 누구라도 여기에 소금을 뿌리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정권 탈환이라는 목표는 모두 같다. 지금 대권 경쟁할 때가 아니지 않은가. 당 쇄신과 외연 확대가 급선무다. 어느 누구라도 먼저 발톱을 드러내는 사람이 진다”는 게 쇄신연대 한 관계자의 전망이다. 과연 누가 먼저 발톱을 드러낼지 주목된다.



주간동아 2010.10.11 757호 (p14~15)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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