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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흑진주 3남매 눈물 누가 닦아주나

생활고 시달리던 아빠 황정의 씨 투신 “엄마 잃은 아이들 돌봐주지 못해 미안”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흑진주 3남매 눈물 누가 닦아주나

흑진주 3남매 눈물 누가 닦아주나

황정의 씨가 몸을 던진 부산 태종대. 3남매는 천애고아가 됐다.

“3남매를 키우는 일이 참 힘듭니다. 힘들 때마다 ‘내 운명이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몸과 마음이 약해질 때는 흔들리는 게 사실입니다. 어려운 상황을 이기기 위해 마음을 모질게 먹습니다.”(2009년 5월 (사)지구촌사랑나눔과의 인터뷰에서 황정의 씨)

왜 조금 더 모질지 못했을까. 가나 출신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3남매를 기르던 황정의(40) 씨가 9월 8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8년 7월 방송된 KBS 다큐 미니시리즈 ‘인간극장-아빠와 흑진주’ 편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황씨가 어린 흑진주 3남매를 뒤로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부산 해양경찰청은 8일 낮 12시경, 영도구 동삼동 태종대 자갈마당 인근 절벽에서 투신한 황씨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해경은 절벽에서 황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발과 소주 1병을 수거했지만 유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다음 날 오후 8시경 황씨의 유골은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안식의 집’에 안치됐다. 2008년 4월 뇌출혈로 사망한 아내 로즈몬드 사키 씨 옆자리였다.

“피부색 검다” 마음에 상처 받은 아이들

원양어선을 탔던 황씨는 1997년 잠시 정박했던 가나에서 사키 씨를 만났다. 이듬해 한국으로 함께 들어와 도담(12), 용연(11), 성연(10) 남매를 낳았다. 전북 부안에서 자본금 2억 원을 들여 농사를 지었으나 남은 건 2억 원의 빚뿐이었다. 빚을 갚기 위해 황씨 가족은 경기도 성남으로 올라왔다. 황씨 지인에 따르면 빚은 거의 다 갚은 상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황씨의 형편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성남의 산 중턱에 자리한 작은 월셋집에 살며, 건설업체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다. 출근시간이 빨랐고 일을 마치면 바로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 아이들은 제 할 일을 알아서 했지만 역시 부모의 손이 필요했다. 황씨는 2009년 5월 지구촌사랑나눔에 “엄마처럼 음식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다 보니 아이들의 건강과 체력이 부실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용돈이라도 넉넉히 줘 먹고 싶은 것을 사먹게 해주고 싶은데, 워낙 가난하니 그것도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방송 이후 언론의 관심이 쏟아지며 후원도 많았지만 그것도 한때였다.

생활고보다 힘든 것은 마음에 상처를 입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그는 위의 인터뷰에서 “엄마 없다고, 피부색이 까맣다고 놀리는 친구가 많아 힘들다”며 “생활도 환경도 열악하니 정신적 여유가 없고, 그러다 보니 엄마를 잃은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줄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비교적 엄한 아버지였던 황씨는 아이들에게 자립을 강조했다. 그간 황씨과 3남매를 후원해온 지구촌사랑나눔 김해성 목사는 “(황씨가) 다정다감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밝혔다.

김 목사가 기억하는 황씨는 매우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원양어선을 타는 사람들은 여러 나라에 정박하면서 그곳 여인과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은데, 황씨는 가나에서 만난 여인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고 바로 한국으로 데려왔다. 김 목사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겠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정말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가장이었다”라고 말했다.

왜 그는 연고도 없는 부산에 가서 몸을 던졌을까. 김 목사는 “황씨가 원양어선을 탔던 만큼 부산 바다가 익숙했던 것 같다. 또한 ‘태종대 바위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황씨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다문화학교에 입학 예정

현재 3남매는 전북 부안의 할머니댁에 머무르고 있다. 9월 9일 유해를 안고 온 3남매는 담담한 표정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새 학기가 시작됐지만 성남의 학교에 아직 못 나가고 있다. 이선희 목사는 “아이들은 추석 지나고 서울에 올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오면 후원단체가 마련해준 집에서 24시간 거주하는 보육교사와 지낼 예정이다. 아이들을 맡아주겠다는 그룹홈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성별이 다른 도담이와 두 남동생이 떨어져 지내야 한다. 이미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에게 또 가족 간의 이별을 겪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김 목사는 “아이들은 그동안 지냈던 성남 쪽에서 살며 원래 다니던 학교에 나가기를 바라는데, 그러면 아버지의 흔적을 계속 마주해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구체적인 내용은 추석 이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들은 내년 3월에 경기도 광주에 설립되는 국제다문화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다. 김 목사는 “유치원 50명, 전교생 120명 규모로 설립된 국제다문화학교에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다중언어 전문가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학교에서 흑진주 3남매는 피부색이 다르다고 놀림받을 필요가 없다. 김 목사는 “내년에 국제다문화학교에 세 아이가 입학하고 기숙사 생활을 하면 황씨의 부담이 줄었을 텐데 안타깝다. 조금만 참았더라면…”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이전 인터뷰에서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몹쓸 병을 옮기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차별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사회에 야속한 마음을 드러냈다. 지구촌사랑나눔 후원자인 김석배 씨는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상처받고 있는 흑진주가 많다. 이번 애도가 일회성으로 그칠 게 아니라 흑진주들에게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을 주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흑진주 아버지의 눈물

현지 가족 허가 요구 … 10구가량 장례 못 치러


2008년 4월 가나 출신 로즈몬드 사키 씨가 뇌출혈로 사망한 지 보름 뒤. 아내의 시신을 화장하려는데 남편 황정의 씨의 전화가 울렸다. 가나대사관 측은 “사키 씨는 아직 가나 국적이므로 가나 현지 가족의 동의가 없으면 화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황씨는 “시집온 지 10년이 지나 이미 가족과 연락이 끊긴 상태인데 무슨 수로 가족의 동의를 받느냐”며 아내의 시신을 대사관 앞에 내려놓고 시위를 했고 결국 3일 만에 대사관은 화장을 허락했다. 가나대사관이 가나에 있는 사키 씨의 가족에게 허가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김해성 목사는 “황씨가 대사관 앞에서 시위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장례를 못 치렀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자국민 보호를 위해 존재하는 대사관이지만 몇몇 국가의 대사관은 자국민 사망자의 가족 확인을 전적으로 유족에게 맡긴다. 김 목사는 “현지 가족의 허가를 받지 못해 장례를 못 치른 시신이 내가 아는 것만 해도 10구는 된다”며 “자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대사관이 나 몰라라 하니, 죽어서도 한을 풀지 못하고 차가운 냉동실에 있는 외국인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0.09.20 755호 (p106~108)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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