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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무대’에 보고 싶은 얼굴 있었네

연극·뮤지컬로 가는 톱스타들… 진정한 배우·예술가 되는 필수 코스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무대’에 보고 싶은 얼굴 있었네

‘무대’에 보고 싶은 얼굴 있었네

문근영이 스트립걸 앨리스로 변신한 연극 ‘클로저’.

문근영의 연극무대 진출이 화제다. 초반에는 그녀가 연극 ‘클로저’에서 수위 높은 노출 연기와 스킨십을 하는 ‘스트립걸’ 앨리스 역을 맡았다는 데 관심이 기울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연기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높아졌다. 극 무대에 진출한 건 ‘국민 여동생’만이 아니다. 연극 ‘나는 너다’에서 안중근과 그의 아들 안중생으로 1인2역을 한 송일국, 뮤지컬 ‘키스 미, 케이트’에서 말괄량이 ‘애인’ 역할을 맡은 가수 아이비, 연극 ‘너와 함께라면’에서 70대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온 철부지 딸 역할을 맡은 탤런트 이세은, 이복남매 간의 격정적인 사랑을 그린 연극 ‘풀 포 러브(fool for love)’에 나란히 출연한 탤런트 김효진·김정화, 뮤지컬 ‘쓰릴 미’에서 함께 주연을 맡은 이지훈·오종혁 등. 요즘 대학로 연극 소개 브로슈어에서 아는 얼굴 찾기는 어렵지 않다.

연극은 보험? 이미지 제고의 역할도

‘클로저’의 연출을 맡은 연출가 조행덕 씨는 “연극무대는 배우에게 도전이다”고 말했다. 쪽대본이 아닌 긴 대본을 달달 외워, 카메라가 아닌 극장을 찾아온 350여 명의 관객에게 연기를 보여주려면 완벽히 준비해야 한다. 문근영 역시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 종영 이후 2개월간, 하루의 절반을 연기 연습에 쏟아부었다. 조씨는 “그 결과 문근영의 연기가 관객과 평론가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본인도 무대에서 상당히 편안해하고 있다. 물론 ‘국민 여동생’의 이미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색하다’고 하지만 연출가로서는 이 정도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상당수 스타는 “깊이 있는 연기를 경험하기 위해” 무대에 진출한다고 말한다. 뮤지컬평론가 원종원 씨는 “카메라 등 기계적인 장치를 통해 재연하는 것보다 관객과 같이 호흡한다는 점에서 배우도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연극평론가인 김미도 씨는 “연극무대는 TV와 달리 외로운 무대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고 한순간도 감정의 흐름을 놓칠 수 없다”고 했다. 그런 만큼 무대에서 경험을 쌓고 인정받으면 ‘진정한 고수’로 등극할 수 있다. 실제 설경구, 황정민, 박해일, 송강호, 문소리 등 요즘 드라마·영화판에서 연기깨나 한다는 ‘선수’는 모두 무대배우 출신이다. 최근 영화·드라마판에 진출해 좋은 평가를 받는 오만석, 신성록, 엄기준 역시 마찬가지다.

몇몇 가수·탤런트에게 무대 경험은 ‘보험’이기도 하다. 젊었을 때, 즉 티켓 파워를 가지고 있을 때 화려하게 연극이나 뮤지컬에 도전해 인정받고 ‘전성기 이후’를 대비하는 것. 가장 좋은 사례가 S.E.S. 출신 바다와 핑클 출신 옥주현이다. 둘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아이돌로 활동할 당시에도 탄탄한 가창력으로 인정받았고, 소속 그룹이 쇠퇴기에 들어서자 바로 뮤지컬 무대로 옮겨왔다. 그 결과 현재 대한민국 뮤지컬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디바’가 됐다.



이 밖에도 200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남성그룹 god는 맴버 중 3명(데니 안, 김태우, 손호영)이 그룹 해체 후 뮤지컬·연극 무대에 섰고, ‘쓰릴 미’의 이지훈, 오종혁(전 클릭B) 등 왕년의 ‘언니’ ‘오빠’가 뮤지컬 무대에 활발히 등장하고 있다. 공연칼럼니스트 조용신 씨는 “좀 독하게 말하면 가수, 배우로서 생명이 끝났을 때 갈 수 있는 곳은 무대밖에 없다”고 했다. 배우의 경우 TV에서는 나이가 듦에 따라 배역이 줄어들지만 무대에서는 20년 넘게 나이 차이 나는 역도 맡을 수 있기 때문에 제약이 적다는 것. 또한 “단순히 ‘스타’가 아니라 장기간 사랑받는 ‘배우’ ‘예술가’가 되려면 무대 경험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바쁜 일정에도 ‘소녀시대’ 제시카(금발이 너무해), 태연(태양의 노래), ‘빅뱅’의 승리(소나기), 대성(캣츠), ‘슈퍼주니어’ 예성(남한산성) 등이 무대에 서는 것도 같은 이유라는 것.

‘무대’에 보고 싶은 얼굴 있었네

옥주현은 이제 대한민국 뮤지컬계에 없어서는 안 될 디바다.

이 밖에 구설에 올라 팬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기 힘든 경우 연극무대를 거쳐 재기하기도 한다. 2007년에 전 남자친구 협박 파문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아이비, 2002년에 미성년자 성매매로 구속됐던 송영창, 올 초에 마약 복용으로 구속됐던 주지훈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한 공연칼럼니스트는 “대중에 직접적인 관심을 받는 TV, 영화가 부담스러울 때 연극, 뮤지컬에 진출해 이미지를 제고하며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연예 매니지먼트사가 소속 연예인들을 위해 연극 페스티벌 공동제작에 나서기도 한다. ‘클로저’ ‘풀 포 러브’ 등 총 8편이 오르는 연극 페스티벌 ‘무대가 좋다’는 공연기획사 (주)악어컴퍼니와 CJ엔터테인먼트,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인 나무엑터스가 공동제작했다. ‘클로저’에서 연기하는 문근영, ‘풀 포 러브’에 나오는 김효진, 조동혁, 한정수도 나무엑터스 소속이다. 이에 나무엑터스 권해진 팀장은 “우리는 좋은 작품이어서 추천한 것이고 배우들이 작품을 보고 개인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작품·캐릭터 선택이 더욱 중요

스타가 나온다고 무조건 다 흥행하고 좋은 평가를 받을까? 아니다. 아이비, 문근영, 송일국, ‘동방신기’의 시아준수 등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아이비는 ‘키스 미, 케이트’에서의 통통 튀는 캐릭터가 그녀의 도발적인 이미지와 어울렸고, 시아준수는 뮤지컬 ‘모차르트’에서 세밀한 연기보다 가창력과 카리스마가 중요했기에 잘 맞아떨어졌다. 한편 주지훈은 2009년 돈주앙을 연기했을 때 “배역으로서 존재감은 상당하나 뮤지컬인데 노래가 너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8년 ‘슈퍼주니어’의 강인, 희철은 뮤지컬 ‘재너두’에 출연했을 때 “가수인데 노래도 안 되고 지나치게 준비가 안 돼 놀러 온 것 같다. 코미디 뮤지컬이지만 너무 심하다”는 혹평을 받았다. 아이돌이지만 티켓 파워도 없었다. 현수정 씨는 “무조건 유명 배우가 나온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100% 소화할 수 있는 배역을 찾아 열심히 노력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톱스타가 출연하는 공연의 성공 공식이 생겼을 정도다. 주로 배우가 4명 이내로 등장해 배우 각각이 돋보이고 외국에서 장기 공연되거나 토니상 등을 수상해 어느 정도 작품성이 검증됐으며 드라마, 영화로 소개돼 대중적 관심도 끄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

연극판에서 배우들이 실제 받는 개런티는 회당 최고 30만 원. 매진 선물을 가져온 톱스타는 더 받을 테지만 1회 CF 출연에 몇 억을 받는 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수준이다. 하지만 배우들은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타고난 연습벌레’ 문근영은 매일 오후 1시부터 밤 11시까지 연습을 빠지지 않는다. ‘풀 포 러브’의 조동혁은 막 내리기 보름 전까지도 낮 연습에 빠지지 않았고, 최근 연극무대 첫 진출을 앞두고 있는 이윤지, 강혜정 등도 열정이 대단하다고 한다. 이에 조행덕 연출가는 “다들 좋아서 연극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근영이는 극의 느낌을 살리려고 영어 대사도 줄줄 외우고 있어요. 원본 번역 작업에도 활발히 참여하고요. 캐릭터와 작품에 푹 빠졌다는 증거죠. 기자님 같으면 하기 싫은데 그 돈 받고 그렇게 열심히 하겠어요?”



주간동아 2010.08.30 752호 (p62~63)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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