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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한국인 빵에 빠지다①

빵의 역습

원조 밀로 만든 배급빵에서 참살이 건강식으로 당당히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빵의 역습

빵의 역습
프랑스 식민지였던 캄보디아는 빵으로 유명한 나라다. 한 여행가는 “갓 구운 바게트 냄새가 캄보디아의 아침을 깨운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여름휴가로 앙코르와트 유적지가 있는 캄보디아 시엠립 시에 다녀온 기자 역시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시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빵집을 찾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크루아상을 한입 베어 물었다.

맛있었다. 하지만 뭐랄까, 그 이상의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우리나라 빵집에서 사먹던 빵맛도 이에 못지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제과명장이기도 한 김영모과자점 김영모(57) 대표가 “우리나라 빵의 역사가 100년에 이른다. 구한말에 도입된 이래 빵은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이 됐고, 고급스러운 식문화로 자리 잡았다”면서 “한국의 제과제빵 기술도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강조했던 게 떠올랐다.

8월 25일 시청률 44.1%를 기록한 KBS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인기는 ‘빵’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 씨는 “빵이란 음식 소재에 주인공과 라이벌의 ‘대결구도’가 들어가면서 극의 전개가 더욱 흥미로워졌다”며 “특히 옛날 빵을 통해 우리나라 문화에 녹아든 빵의 역사를 다루면서 젊은 여성층은 물론, 빵과의 다양한 추억을 떠올리는 중장년층까지 흡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빵은 포르투갈어인 ‘팡’이 일본에서 변형돼 우리나라에 소개된 말로, 일반적으로 밀과 호밀 같은 곡분에 물과 이스트, 다양한 재료를 넣어 발효시켜 구운 음식을 뜻한다. 그렇다면 빵은 언제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일까. (사)대한제과협회에서 만든 ‘한국 빵 과자 문화사’에 따르면, 1885년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입국해 빵을 구웠는데 이를 한국 최초의 빵으로 본다. 이후 1902년 개관한 서양식 호텔 ‘정동구락부’에서도 빵을 만들었다. 여기서 만들어진 빵을 ‘면포’라 했고, 특히 카스텔라는 ‘눈처럼 희다’고 해서 ‘설고’라 불렀는데 외국인은 물론 당시 세도가 조선인에게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빵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 치하 일본의 양과자점들이 국내에 진입하면서부터다. 단팥빵, 크림빵, 소보로빵, 술빵 등 지금도 큰 인기를 끄는 ‘옛날 빵’이 이때 들어왔다(이는 빵의 본산지인 유럽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일본식 빵이다). 당시 일본인들이 운영하던 빵집에서 기술을 전수받은 한국인들이 광복 이후 우리나라 제과제빵업계의 토대를 다졌다. 6·25전쟁 후 미국에서 다량의 밀가루 원조가 들어오면서 제과제빵이 인기업종으로 떠오르며 빵집이 많이 생겨났는데 ‘뉴욕제과’(서울 명동), ‘고려당’(서울 종로), ‘풍년제과’(부산 부평동), ‘덕수제과’(서울 광화문), ‘태극당’(서울 명동), ‘독일빵집’(서울 동작구 흑석동)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빵’은 부유한 사람이나 먹을 수 있는 고급 음식이었다.



옥수수 배급빵의 추억

빵의 역습

1960년대 아이들은 학교 급식을 통해 빵과 우유를 접하게 됐다.

“1969년 국민학교 입학 후 3학년 때까지 매일 아버지 목침보다 큰 옥수수빵과 ‘우유 덩어리’를 배급받았어요. 청소 당번을 하면 빵을 하나 더 받기 때문에, 당번을 거래하는 일도 빈번했죠(웃음). 당번을 해서 빵을 하나 더 챙길 때면 집에서 기다리는 동생에게 줄 생각에 하굣길이 무척 즐거웠어요. 그때 먹은 옥수수빵의 맛과 향은 지금도 잊지 못해요. 이후로는 그런 빵을 먹어본 기억이 없습니다.”(디자이너 이모 씨·40대 후반)

미국의 원조로 밀가루가 풍부해지자 우리나라 정부는 1960년대를 전후해 ‘빵과 라면 등을 밥 대신 먹자’는 의미의 ‘분식장려운동’을 펼쳤다. 당시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옥수수빵과 가루로 된 우유를 공짜로 나눠줬는데, 이때부터 빵이란 음식이 일반 대중의 머릿속에도 각인되기 시작됐다. 실제 ‘주간동아’가 온라인 리서치기업 ‘마크로밀코리아’에 의뢰해 8월 23~24일 이틀간 전국 5대 도시 20~50대 남녀에게 ‘빵에 대한 추억’을 물어보니 40, 50대 상당수(40대 18.4%, 50대 26.9%)는 ‘학교에서 우유와 함께 나눠주던 배식빵’이라고 답했다(신뢰구간 95%, 표본오차 ±4.4%).

빵의 역습
“외삼촌이 제빵 회사에 다녔어요. 그 회사에서 나온 ‘보름달’이라는 빵이 최고의 간식거리였죠. 하루는 외삼촌이 대형 트럭에 잔뜩 빵을 싣고 저희 집에 오셔서 ‘원하는 만큼 가지고 가라’고 했어요. 100봉지 정도를 다락방에 숨겨놓고 아침, 점심, 저녁 계속 꺼내 먹었죠. 3일 동안 그렇게 했더니 물려서 더 못 먹겠더라고요(웃음).”(회사원 엄모 씨·40대 초반)

1960년대 말부터 삼립식품, 샤니, 서울식품, 기린 등 양산제빵업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공장에서 빵을 대량 생산하는 시대가 열렸다. 1970~80년대 동네 구멍가게나 학교 매점 등에서 사먹던 빵이 바로 이들 업체가 만든 ‘양산빵’이다. 기억은 시대를 반영하듯, 앞선 조사에서 50대를 제외한 전 연령대(20대 23%, 30대 22.8%, 40대 27.9%)에서는 ‘학교 매점 등에서 사먹던 양산빵’을 가장 머릿속에 오래 남은 ‘추억의 빵’으로 꼽았다.

“마치 군대처럼 엄격했다”

1970~80년대는 ‘빵공장’에서 만든 양산빵과 ‘빵집’에서 직접 만든 제과점빵이 공존했다. 또 김영모, 서정웅 등 현재 대한민국 제과명장으로 활약하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빵을 배우고 만들고 팔던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 빵을 배우려면 제과점에 들어가 ‘선배’ 제빵사들에게서 도제식으로 가르침을 받아야 했다. (사)대한제과협회 서정웅(61·코른베르그과자점 대표) 회장은 “태극당, 풍년제과, 청자당, 나폴레옹 제과점 등에서 배우고 일했는데, 당시 제과점은 마치 군대처럼 엄격했다. 일을 잘못하면 작업대에 엎드려 맞는 일도 잦았다. 그때 엄하게 배우고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지금 다 성공한 제빵사가 됐다”고 회상했다.

1970년대 말부터 뉴욕제과와 고려당, 독일빵집 등 중견 제과점의 규모가 커지면서 프랜차이즈 형태의 분점을 내기 시작했다. 이후 1984년 신라호텔에서 분리한 ‘신라명과’와 1986년 샤니를 모기업으로 하는 ‘파리크라상’, 1988년 크라운제과가 만든 ‘크라운베이커리’ 등이 이 시장에 합세했다. 이처럼 1980년대 중반 이후 양산제빵업체에서도 프랜차이즈를 통한 제과점(베이커리)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그 이유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부유해진 소비자들이 빵집에서 직접 구운 신선하고 고급스러운 빵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85년부터 제과점의 시장점유율이 양산제빵업계를 앞섰고, 이런 경향은 1990년대 이후 한층 가속화돼 1990년대 말에는 제과점의 점유율이 양산제빵업계의 2배 이상이 됐다.

2000년대 이후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의 급성장’과 ‘빵의 다양화’로 특징지을 수 있다. 국내 제과점 시장은 크게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등 특정 브랜드 이름 아래 관리·운영되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이하 프랜차이즈)와 제과제빵 기술을 습득한 일반인이 개별적으로 운영하는 ‘윈도 베이커리’(이른바 동네 빵집·이하 윈도)로 나뉜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윈도의 매장 수가 프랜차이즈의 4배에 이르렀지만, 2009년 현재 매장 수는 거의 같아졌다(윈도 약 4400개, 프랜차이즈 약 4300개). 하지만 매출 규모는 프랜차이즈가 약 1조8600억 원으로 7300억 원인 윈도의 2배 이상이다. 즉 프랜차이즈의 규모와 마진, 효율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호텔이나 백화점, 마트 등에서 운영하는 이른바 ‘인스토어 베이커리’의 비중도 점점 커지고 있다. 샤니, 삼립 등 양산제빵업체 역시 편의점, 마트, 학교 매점 등에 저렴한 빵을 공급하며,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시장을 형성했다. 특히 ‘국진이빵’ ‘포켓몬스터빵’ ‘핑클빵’ 등 트렌디한 메뉴를 개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그래프 참조). 한편 유기농 재료와 선진 제빵제과 기술을 앞세운 ‘고급 베이커리’도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서정웅 회장은 “베이커리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영세한 개인 베이커리가 고전하다 망하거나 프랜차이즈로 흡수되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다”면서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당연한 일이고, 프랜차이즈는 이미 대세가 됐다”고 설명했다.

빵의 역습
누가 뭐래도 빵맛이 좋아야…

“그동안 개인이 운영하는 윈도 베이커리가 현실에 안주하며 안이하게 대응했던 측면이 분명히 있어요. 앞으로는 천연 효모를 활용한 건강빵을 전문으로 한다거나, 품목은 적지만 독특한 맛을 내는 빵을 선보이는 등 프랜차이즈를 앞설 수 있는 영역을 특화해 경쟁력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프랜차이즈의 독주는 문제가 있겠지만, 베이커리의 다양화는 소비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죠. 더 맛있고 다양한 빵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빵집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뭘까. 누가 뭐래도 빵맛이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를 통해 20~50대 남녀에게 ‘빵집을 선택하는 기준’을 물은 결과 ‘빵맛’이 41.2%로 압도적인 1위였고 ‘특정 브랜드 선호’(6.6%), ‘저렴한 가격’(6.2%), ‘쾌적하고 세련된 매장 분위기’(1.2%) 등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미 빵은 간식에서 식사를 대신하는 주식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참살이(웰빙) 열풍에 따라 각종 건강빵이 등장하면서 ‘빵은 소화가 잘 안 되고,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마저 불식하고 있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다양한 빵. 빵의 역습은 시작됐다.

현실 속 ‘제빵왕 김탁구’는

엄격한 제빵실 군기…손으로 습도 재는 것 말도 안 돼


빵의 역습
KBS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는 양산빵을 생산하는 대기업의 서자 김탁구(윤시윤 분·사진)가 고난을 겪으면서 제빵업계 1인자로 성장한다는 내용이다. 빵을 소재로 한 드라마답게 다양한 빵과 제빵기술, 제빵업계 문화 등이 등장한다.

김영모과자점 김영모 대표는 “드라마가 우리나라의 빵과 제빵업계 역사를 잘 그려내고 있다. 특히 ‘팔봉제빵점’에서 제빵사들이 도제식으로 배우는 부분이 실감 난다”면서도 “실제는 드라마보다 훨씬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대한제과협회 서정웅 회장도 “드라마처럼 ‘막내’가 바로 밀가루 반죽을 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유명 제과점에 들어가면 제빵실 청소와 그릇 닦기, 밀가루 포대 옮기기 등을 1년 넘게 한 뒤에야 겨우 밀가루를 만져볼 수 있었다는 것. 반죽을 치고, 빵의 모양을 만드는 건 한참(사람에 따라서는 2~3년 이상)을 수련한 후에나 가능했다.

드라마에서는 제빵사들이 현대적 감각의 깨끗한 위생복을 입고 작업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당시 제빵실의 온도가 40℃ 정도였고 에어컨 시설도 없었기 때문에, 1970년대 초까지는 ‘속옷’만 입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또 빵이 귀한 음식이어서 아무리 제빵사라 해도 함부로 맛을 볼 수 없었다. 제빵실에서 몰래몰래 빵을 먹다가 걸리면 쫓겨나기도 했다.

극중 김탁구의 아버지인 구일중(전광렬 분)은 제빵에 들어가기 앞서 양팔을 벌려 손의 느낌으로 습도를 잰다. 이 장면에 대해 김 대표는 “물론 제빵 과정에서 습도가 중요하지만, 그렇게 팔을 벌린 후 손으로 습도를 재진 않는다”며 “드라마적 설정”이라고 껄껄 웃었다.

또 김탁구와 라이벌인 구마준이 벌인 1차 경합에서 김탁구는 보리밥을 빵에 넣은 뒤 발효시켜 구운 ‘보리밥빵’을 선보였다. “실제로 과거에 이런 종류의 빵이 있었는지” 묻자 서 회장은 “보리밥빵은 추억의 빵이라기보다 최근 인기를 모으기 시작한 건강빵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0.08.30 752호 (p22~25)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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