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7

2010.07.26

열강이 탐낸 해상 요새 쪽빛 휴식처로 거듭났다

남해 여수 거문도

  • 글 김화성 mars@donga.com 사진 양영훈 travelmaker@empal.com

    입력2010-07-27 15: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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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강이 탐낸 해상 요새 쪽빛 휴식처로 거듭났다

    1, 2. 거문도 등대가 있는 수월산을 오르는 관광객들.

    거문도는 여수 앞바다 뱃길 끝에 있다. 여수와 제주도의 중간쯤에 있다. 여수에서 남쪽으로 114.7km, 제주에서 동북쪽으로 86km 거리를 두고 있다. 겨울 맑은 날엔 거문도 등대에서 눈 덮인 한라산 봉우리가 보인다. 제주 갈치나 거문도 갈치나 바다가 겹치는 부분이 많다.

    거문항은 ‘우묵배미 항구’다. 바다의 천연 요새다. 동도, 서도, 고도의 3개 섬이 어깨동무를 하고 ‘ㄷ자’를 만든다. ‘ㄷ자’의 터진 부분도 왜병 모가지처럼 좁다. 파도는 3개 섬의 등만 죽어라 때리며 화풀이를 해댄다. 가끔 수월산 앞 ‘목넘이’로 물을 넘겨보지만 그 정도로는 끄떡도 없다. 항구 안은 아늑하다. 잔잔한 호수 같다. 면적은 약 330만m²(100만 평).

    사람들은 3개 섬의 가슴과 갈비뼈 품 언저리에서 옹기종기 모여 산다. 주민은 인근 손죽도, 초도 등을 포함해 모두 877가구 1900여 명. 50대 이상이 대부분이다. 한때 주민이 1만1000여 명이나 된 적도 있다.

    거문도(巨文島)는 ‘문장이 훌륭한 선비가 많이 사는 섬’이라는 뜻이다. 1885년 영국 해군이 무단 점령하기 전까지는 ‘삼도(三島)’라고 불렀다. 당시 청나라가 조선을 제쳐놓고 영국 러시아와 협상을 벌이고 있었는데, 청나라의 제독 정여창이 현지 사정을 살피러 왔다가 주민들의 해박함에 놀라 조정에 섬 이름을 거문도로 해달라고 청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거문도 바다는 쪽빛이다. 하늘은 남색이다. 섬 어느 곳에 있든 쪽빛바다가 출렁인다. 쪽빛은 아득하고 깊다. 몽환이다. 거문도 등대는 쪽빛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등대에 오르는 길은 한갓진 동백 숲길이다. 천연기념물 흑비둘기가 산다. 새가 노래하면 파도가 반주를 넣는다. 우묵사스레피나무나 갯고들빼기, 갯무도 있다.



    거문도 등대에선 바다에서 두둥실 솟는 붉은 해가 황홀하다. 미끄덩 물속에 가라앉는 홍시 같은 해가 아득하다. 길 잃은 배는 불빛을 보고 눈을 뜬다. 불빛이 마라톤 코스와 비슷한 42km나 나가는 이 등대는 1905년 4월 남해안에서 처음으로 불을 밝혔다. 한국 최초의 유인등대인 인천 팔미도등대(1903년)보다는 늦지만 부산 영도등대(1906년)나 포항 호미곶등대(1908년), 제주 마라도등대(1915년), 울산 간절곶등대(1920년)보다는 앞선 때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걷기 좋은 서도 해안길

    서도엔 면사무소, 경찰서, 우체국 등 행정관청이 몰려 있다. 아직까지 일본식 집들도 남아 있다. 면사무소 뒤쪽으로 600m쯤 돌아가면 영국군 묘지가 있다. 1885년 4월부터 87년 2월까지 약 2년간 영국군이 주둔했을 당시 사망한 군인들의 묘지다. 지금의 거문초등학교 자리에 영국군이 주둔했다. 병사들은 축구와 테니스를 즐겼다. 가는 길 주위는 말쑥하게 자란 쑥밭 천지다. 거문도 사람들은 한 해 쑥을 3번이나 딴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큰 쑥이라 품질도 으뜸이다. 보통 쑥으로만 한 해 400만∼500만 원씩 소득을 올린다. 쑥밭이 금밭이다.

    열강이 탐낸 해상 요새 쪽빛 휴식처로 거듭났다

    3. 전남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에서 동쪽으로 28km 지점에 솟은 백도. 백도는 바람과 파도가 빚어낸 흰 바위와 벼랑의 기묘한 형상으로 ‘남해의 소금강’이라 불린다. 4. 등대가 있는 수월산을 오르다 보면 우거진 동백나무 터널을 지나게 된다.



    영국군 묘지엔 원래 9기의 무덤이 있었다. 1887년 영국군이 물러간 뒤 경략사 이원회가 조선 조정에 보고한 내용이다. 이후 하나둘 본국으로 이장해가 현재는 2, 3기가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식 묘지석과 나무십자가가 서 있다. 해마다 주한 영국대사관 관계자들이 참배를 빠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서도 해안길은 목넘이에서부터 시작된다. 쉬엄쉬엄 가도 2시간(8.5km)이면 충분하다. 목넘이∼거문도(유림)해수욕장∼삼호교∼거문도 뱃노래전수관과 서도(이금포)해수욕장, 녹산등대까지 맞닿아 있다. 마을은 이 길을 따라 띄엄띄엄 자리를 잡고 있다. 삼치, 갈치잡이 배들도 발품을 쉰다. 짭조름한 바닷냄새가 맛있다. 바닷바람이 살갗을 어루만진다.

    목넘이에서 잠시 샛길로 빠져 보로봉∼신선바위∼기와집몰랑∼거문도해수욕장으로 가는 코스는 아버지와 아들이 인생을 얘기하며 걷는 길이다.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 거리. 보로봉의 해돋이와 해넘이, 기와집 모습의 바위들, 쪽빛 바닷물에 뿌리를 박은 신선바위…. 역사소설가 홍성원(1937~2008)은 마지막 눈을 감으면서 바다를 노래했다. 그렇다. 아들과 아버지는 언젠가 바다에서 만난다.

    ‘한 개의 선과 두 개의 색상이/ 바다가 만드는 구도의 전부다/ 가장 큰 것이 가장 단순해서/ 바다는 우리를 감동시킨다/ 우리가 다시 바다에서 만난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축복이다.’

    여/행/정/보

    열강이 탐낸 해상 요새 쪽빛 휴식처로 거듭났다

    5. 거문도 등대에서 바라본 백도 일출. 6. 유람선을 타고 거문도를 둘러보는 관광객들.

    ●숙박

    섬마을횟집민박(061-666-8111)은 2층에 단체 손님(10인)과 일반 손님(4인)을 위한 방이 있으며 1층은 백반과 갈치조림, 갈치회를 메뉴로 한 식당이다. 하얀집민박(061-666-8054)은 단체 손님(5~6명)을 위한 방과 4인 가족이 함께 쓸 수 있는 방이 있다. 거문도항에서 가까운 거문장여관(061-666-8052)은 온돌방과 침대방을 갖추고 있다. 터미널에서 가까운 호반여관(061-665-8115~6)엔 일반 손님(2인)을 위한 방 외에 단체 손님(10명)을 위한 방이 있다.

    ●맛집

    거문항 주변에 중국음식점, 횟집 등 각종 음식점과 유흥시설이 즐비하다. 거문도에는 새벽시장이 없기 때문에 신선한 회를 먹으려면 일반 횟집을 이용해야 한다. 강동식당(061-666-0034), 충청도횟집(061-665-1986).

    교/통/정/보

    ●여수↔거문도/ 오가고호(061-663-2824)와 줄리아아쿠아호(061-662-1144)가 오전 7시40분, 오후 1시40분에 여수에서 동시에 출발하며 소요시간은 2시간 정도, 요금은 3만6600원이다. 거문도에서는 오전 10시30분과 오후 4시30분에 출발하고, 요금은 3만6100원이다. ※여객선은 날씨와 계절에 따라 운항 횟수와 시간이 달라지므로 사전에 전화로 확인하는 게 좋다.

    ●섬 내 교통

    거문도 주민의 주요 교통수단은 오토바이와 자전거다. 섬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섬일주 유람선을 이용하거나 택시 또는 도보로 관광해야 한다. 거문도항에서 백도행 유람선(061-666-4200)이 부정기적으로 운행된다. 승객이 30명 이상이면 출항하는데, 보통 오전과 오후에 한 번씩이다. 요금은 2만9000원, 왕복 2시간 반 정도 걸린다. 거문도 등대도 유람선으로 둘러볼 수 있다. 20명 이상 모이면 4000원에 이용 가능하다.

    열강이 탐낸 해상 요새 쪽빛 휴식처로 거듭났다

    7. 배 위에서 바라본 거문도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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