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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 원했던 경찰관들 내 제복까지 벗겼다”

창녀 → 경찰관 → 창녀 → 농장주 … 호주 여인 인생유전 범죄드라마로 방영

  • 시드니=윤필립 통신원 phillipsyd@hanmail.net

“디저트 원했던 경찰관들 내 제복까지 벗겼다”

“디저트 원했던 경찰관들 내 제복까지 벗겼다”
1988년부터 1999년까지의 일이니 그리 오래된 얘기가 아니다. 1988년 한국에선 서울올림픽이 열렸고, 호주에선 백인국가 건국 200주년 행사가 1년 내내 열렸다. 바로 그즈음 시골 출신의 아리따운 아가씨가 시드니의 환락가 킹스 크로스(Kings Cross)에 나타났다. 킴 홀링스워드(42). 당시 그의 나이 20세였다.

킴의 꿈은 경찰관이 되는 것이었다. 청색 제복을 입은 아버지가 무척 멋있고 자랑스러웠기 때문. 킴이 시드니로 온 것도 경찰관 채용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학업 성적도 우수하고, 품행도 단정해 경찰관이 되는 데 아무런 결격 사항이 없었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녔으니 ‘죽마고우’라 부를 만한 사이였다. 잘생긴 럭비선수이자 고향 마을이 자랑하는 스포츠 스타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시드니로 진출한 남자친구는 킴이 시드니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시드니사이더(Sydneysider·시드니 사람)’로 변해 있었다.

드라마 ‘배꼽 아래’ 실제 주인공

남자친구가 킴의 임시숙소로 킹스 크로스에 있는 한 모텔 방을 예약해줬다. 그런데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킴이 방문을 여는 순간, 벌거벗은 여자 2명이 남자친구와 뒤엉켜 있었다. 창녀들이었다. 깜짝 놀란 남자친구는 “아무 일도 없었다”면서 변명을 했지만, 킴은 화가 나서 몸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그리고 운명의 순간이 다가왔다.



밖으로 나가던 창녀들이 “웬 촌닭이냐?”고 짜증내면서 “너도 우리처럼 일하면 돈 많이 벌 수 있어”라고 빈정거렸다. 그 순간 킴은 그들을 따라가는 게 남자친구에게 복수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남자친구는 이미 자리를 피한 상태였다. 복수하는 데 한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날 저녁 킴은 ‘러브 머신(Love Machine)’이라는 섹스 숍에서 20년 동안 간직해온 순결을 생면부지의 동양인 남자에게 주었다.

5월 2일 저녁, 필자가 킹스 크로스에 가봤더니 ‘러브 머신’은 지금도 성업 중이었다. 입구엔 ‘라이브 쇼’라고 쓴 한글 네온사인이 휘황했다. 입구에서 안내하는 사람이 몇 마디 한국말을 지껄였다. 손가락으로 네온사인의 한글을 한 자씩 짚어가면서 정확하게 읽었다. 그에게 “한국 고객이 많으냐?”고 물었더니 “단체 관광객이 몰려오던 옛날만은 못하지만 한국인이 꽤 많이 오는 편”이라고 답변했다. “한국인은 매너가 좋아 인기 만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요즘 호주에서는 범죄 드라마 ‘배꼽 아래(Underbelly)’ 시리즈 2부가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더 골든 마일(The Golden Mile)’이라는 제목의 미니시리즈인데 그 대본이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기 때문. 특히 경찰의 부패상이 낱낱이 폭로돼 경찰 당국에서 바짝 긴장하고 있다. 뇌물 수수는 물론 성(性) 상납 장면까지 나온다.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킴이 있다. 창녀 생활을 할 때 자신을 악질적으로 괴롭혔던 경찰들에게 복수하고, 동시에 경찰의 부패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는 기꺼이 ‘내부고발자’가 됐다. 킴은 경찰뿐 아니라 범죄 조직의 실상도 폭로했다.

“디저트 원했던 경찰관들 내 제복까지 벗겼다”

1 젊은 시절 킴 홀링스워드의 모습. 아리따운 외모가 돋보인다. 2 킴이 첫 순결을 내줬던 섹스 숍 ‘러브 머신’은 지금도 성업 중이다. 입구의 안내자가 한글로 된 네온사인을 가리키고 있다. 3 킹스 크로스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던 때의 킴.

‘더 골든 마일’ 시리즈가 몇 차례 방영되자 사실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그러자 드라마를 방영하는 ‘채널9’가 자사의 인기 프로그램인 ‘60분(Sixty Minutes)’에 킴을 출연시켰다. 게다가 킴이 창녀로 일했던 매음굴을 직접 방문해 현장 증언까지 녹화해 방영했다. 부패 경찰관의 각성을 촉구한다는 명분으로 리포터도 깜짝 놀랄 만큼 생생한 증언을 이어갔다.

1988년에 킴은 킹스 크로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고급 창녀였다. 그의 별명은 ‘킹스 크로스의 여왕’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리포터 마이클 어셔는 작심한 듯 “얼마나 많은 남성과 잤느냐?”는 질문부터 던졌다. 순간 킴은 당혹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크게 웃으면서 “1000여 명은 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리포터는 “1000여 명의 남자와 잤다면, 그 비즈니스 규모가 엄청나게 컸겠다”면서 “그렇게 흥청거리니 킹스 크로스에 부패한 경찰이 등장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답변이 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킴의 1인칭 화법으로 그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스트립쇼 즐긴 경찰관들

“당시 킹스 크로스는 밤의 문화가 거의 없었던 시드니의 유일한 환락가였다. 술과 마약, 매춘부로 밤낮없이 흥청거린 엘도라도 같은 곳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폭력, 살인 등 범죄가 난무해 호주 속 별천지 같았다. 그 중심에 경찰서와 경찰관들이 있었다. 그들의 가장 큰 임무는 법질서 유지와 치안 유지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들이 무시로 법을 어기면서 범죄자들과 어울렸다. 대낮부터 속칭 ‘런치박스’를 들고 다니면서 상납을 받았고, 근무 시간에 매음굴에 들러 섹스를 즐겼다. 그들은 장전된 권총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스파에 들어가 한나절을 보냈다.

경찰관들만 모이는 파티도 수시로 열렸는데 젊은 매춘부들을 차출해서 스트립쇼를 하게 했다. 나 또한 30여 차례 무대에 섰는데 언제나 열광의 도가니였다. 어느 해인가, 크리스마스 파티에는 300명도 넘는 경찰관이 참석했다. 그런데 그들은 만찬과 스트립쇼 관람만으로는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늘 ‘디저트’를 원했다. 경찰관들은 그곳의 지배자였고 섣부른 거부는 파멸을 의미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경찰관이 되고 싶었다. 부패할 대로 부패한 그들의 일원이 된다는 게 끔찍하게 느껴지면서도 나는 꾸준히 그 길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었다. 틈틈이 폴리스 아카데미 입학시험을 준비했다. 내 잠재의식 속에 훌륭한 경찰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모든 경찰관의 롤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아버지 같은 경찰관.

그러던 1995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러니까 내가 킹스 크로스로 온 지 7년 만에 폴리스 아카데미 합격 통지서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폴리스 아카데미의 간부들, 교관들, 하물며 학생들까지 나를 매춘부 취급하면서 잠자리를 함께하기를 원했다. 서글펐지만 이를 악물었다.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청색 경찰제복을 입었다.

창녀가 경찰관으로 변신하는 것이 워낙 보기 드문 일이라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당시에도 ‘채널9’의 ‘60분’에 출연한 적이 있다. 조금 쑥스러웠지만 마침내 내가 계획했던 인생을 살게 됐기에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부당하게 유예되고, 어리석게 지연됐던 경찰관 인생을 시작한 셈이었다.

“아빠처럼 경찰관이 되고 싶었는데…”

그러나 나의 행복은 언제나 무지개 저 건너편에 머물렀다. 신참 경찰관의 꿈을 펼치기도 전에 공직자부패방지독립위원회(ICAC)의 내부고발자로 차출된 것. 내키지 않았지만, 부패한 경찰관을 척결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응했다. 나는 내가 직접 접촉했던 매춘 관련 부패경찰 20명을 고발했다. 그리고 두 달 만에 경찰직에서 쫓겨났다.

그 다음에는 기억하기조차 끔찍한 10년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ICAC에서 증인 보호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 법정투쟁을 벌였다. 그들은 나에게 ‘경찰에서 해고된 후 매음굴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게는 돈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악몽에 시달리며 늘 울면서 지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고, 킴 홀링스워드는 중년 여인으로 변했다. 그뿐 아니라 지금 그가 사는 곳은 도시의 매음굴이 아닌 대자연의 품이다. 재판에서 승소한 후, 수십 에이커의 농장을 사서 10여 마리의 말과 함께 산다. 그는 자신의 농장에서 ‘채널9’의 리포터 마이클 어셔와 인터뷰를 했다.

킴 주변에는 지금 아무도 없다. 남편도, 아이도, 친구도 없다. 그런데 결코 외롭지 않다. 인생 자체가 바뀐 것이다. 승마복 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한 킴은 “외롭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자연은 나를 속이지 않아요. 말들 또한 더없이 좋은 친구지요. 가끔 세상의 친구들이 생각나지만 일부러 지워버려요”라고 대답하고는 잠깐 동안 눈물을 찍어냈다. 그런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창녀로 살아온 날을 아쉽게 생각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잘못했다’고 사과할 뜻은 없습니다. 철없을 때 남자친구를 만난 것도 그렇고, 홧김에 처녀성을 팔아버린 것도 그렇고요. 그게 모두 내 운명이었어요. 그러나 딱 한 가지가 회한으로 남아요. 끝내 경찰관 생활을 할 수 없었다는 것 말입니다. 아빠처럼 자랑스러운 경찰관이 되고 싶었는데.”

“디저트 원했던 경찰관들 내 제복까지 벗겼다”

1 호주 시드니의 유일한 환락가 킹스 크로스. 2 경찰관 시절의 킴(왼쪽). 3 42세의 중년 여성이 된 킴은 현재 한적한 시골 농장에서 말을 키우며 살고 있다.





주간동아 2010.05.17 737호 (p62~64)

시드니=윤필립 통신원 phillipsy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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