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7

2010.05.17

儒, 墨, 道, 法家…고전 해석의 즐거움

이중톈의 ‘백가쟁명’

  • 박경철 blog.naver.com/donodonsu

    입력2010-05-17 1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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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儒, 墨, 道, 法家…고전 해석의 즐거움
    겸애(兼愛)를 주창한 묵가와 인의(仁義)를 중시한 유가의 차이는 무엇일까. 겸애와 인의가 모두 이타적 정신을 앞세운, 타인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바에야 유가와 묵가가 서로를 경원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의 거리가 있다.

    유가에서는 인의에 대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일은 인지상정이며 이는 인간의 본성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한다. 맹자는 ‘진심상’에서 이를 명료하게 정리한다. “부모를 사랑한 뒤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한 뒤에 물건을 아껴라.” 논어 ‘자로’에 등장하는 공자와 섭공의 대화는 한술 더 뜬다. 섭공이 아버지의 도둑질을 고변한 아들의 행위를 정직함이라고 묘사하자, 공자는 “아버지가 자식을 숨겨주고 자식이 아버지를 숨겨주는 것이 정직함”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유가의 인의는 인간의 현실적 한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묵가는 다르다. 묵가의 겸애는 그 차별이 없다. 자고로 도덕이란 ‘초월성’을 전제로 한 것이지 상식이 아니다. 본성에 따르는 것이 도덕이라면 굳이 ‘당위성’이 강조되는 도덕률을 고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초월성이 있어야만 도덕이라는 묵가의 주장은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들린다. 이에 대해 유가는 반론을 펼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도덕은 공허한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러면서 그것이 실현 가능하냐고 반문한다. 이에 묵가는 겸애의 정신을 가지면 타인을 자기 가족처럼 여기면서 서로 아끼고 위하며 보호하게 되니, 이는 곧 사회 안위로 이어지는 사회적 보험과도 같다고 말한다. 즉 ‘공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공리냐 인의냐, 이것이 유가와 묵가의 첫 번째 차이다.

    두 번째 대립은 귀신과 천명에 관한 것. 공자는 “사람의 일도 모르는데 하물며 귀신을 어떻게 아느냐”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면서도 “천명을 따르는 것이 성인의 길”이라는 모호한 입장을 나타낸다. 이에 묵자는 “귀신은 본 사람이 있지만, 천명은 들은 사람이 없으니 귀신이 왜 존재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귀신은 그 존재 여부를 떠나 사람들의 현실을 강제하고 규율하는 힘이 있으니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난센스처럼 들리지만, 세상의 모든 종교가 지옥과 사후세계의 심판을 이야기하는 것과 맥이 닿아 있다. 유가는 천명이라는 관념적 이상을, 무가는 귀신의 처벌이라는 현실적 계율을 중시하니 이 역시 양가의 대립이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는 바로 전제정치에 대한 견해다. 맹자는 백성이 버린 군주는 폐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충을 강조한 유가의 이념으로는 가히 파격이다. 즉 민심은 천심이며, 군주는 천심의 위임을 받은 것이라는 견해다. 하지만 묵가는 군주의 철인정치를 주장한다. 인간이 나약해 겸애를 스스로 실천할 수 없다면 강력한 군주정으로 이를 강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묵자는 결정적으로 헛발질을 한다. 군주의 전제, 모든 사상의 통일은 그야말로 파시즘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일견 플라톤의 ‘철인론’을 연상케 하는 묵가의 한계다.



    ‘백가쟁명’(에버리치홀딩스 펴냄)은 유가, 묵가, 도가, 법가의 사상을 아우르며 백가쟁명에 대한 흥미로운 비교 분석을 시도한다. 저자 이중톈은 우리로 치면 도올 김용옥 정도의 위상(반대자가 없다는 게 다르지만)을 지닌 중국의 스타 철학자다. 그의 전작들이 이미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만큼, 이 책도 흥미로운 전개와 고전에 대한 다양한 해석으로 독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다만 전작들에 비해 다소 느슨하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느낌은 피할 수 없다. 다작의 결과인 듯하다. 하지만 이중톈의 기본 역량만으로도 기회비용을 떠올리지 않게 할 정도의 가치는 충분하다. 혼란의 시기, 고전을 통해 지혜를 생각해볼 수 있는 귀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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