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4

2010.05.04

아이폰 쇼크… 정통부 부활하나

정보통신기술 컨트롤타워 필요 공감대 … 일부에선 산업정책 공과 규명 우선 지적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0-04-26 16: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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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통신부 해체는 사려 깊지 못했다. IT 기능을 4개 부처로 쪼갠 것은 잘못된 조직개편이었다.”

    지난 3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제주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세미나에서 정보통신부(이하 정통부) 해체가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고백하자 IT업계가 술렁거렸다. 공무원 사이에서 금기시했던 정통부 해체에 대해 정부부처 고위인사가 문제점을 지적한 첫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IT 경쟁력 날개 없이 추락

    정통부 폐지는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는 출범과 동시에 ‘작은 정부’를 기조로 정부부처 개편에 들어갔다. 2008년 1월 인수위는 정통부를 해체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정통부의 정보통신기술(ICT)산업 견인력이 예전보다 약해진 데다, 융합을 하려면 IT정책 기능을 한 부처가 중앙집권적으로 보유하기보다는 분산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당시 일각에서는 “노무현 정부 시절 가장 총애받던 정통부를 해체해 전임 정부의 공적 지우기를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내기도 했다.

    결국 정통부가 해체돼 ICT 업무는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행정안전부로 나뉘었다. 주요 IT정책·진흥 기능은 지경부, 콘텐츠 진흥 기능은 문화부, 방송·통신 규제기능은 방통위가 맡는 것으로 교통정리됐다. 정통부 출신 한 공무원은 “정통부 폐지 논의가 눈앞으로 닥쳐오자 정통부에선 IT정책 기능이 분산되면 일관된 정책이 나오지 않고, 부처 간 밥그릇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정통부에 이어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까지 해체되자 IT산업계 및 학계는 정권 초부터 꾸준히 정통부 부활의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하지만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애플의 공습은 정통부 부활 논의를 재점화했다. 불과 1년 사이에 세계 휴대전화 시장은 ‘모바일 혁명’에 직면하면서 주도권이 노키아, 삼성전자, LG전자 등 하드웨어 업체에서 애플, 구글 같은 소프트웨어 업체로 넘어갔다.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운영체제(OS) 등 소프트웨어가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했지만 국내 IT제조업체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 그 결과 한국의 ICT산업 경쟁력지수는 200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3위에서 지난해 16위로 급격히 추락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ICT 지원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됐으나 막상 ICT산업을 지원하려 해도 컨트롤타워가 없으니 중심을 잡기 어렵다는 얘기가 정부부처 안팎에서 터져나왔다. 정통부 존폐 당시 제기됐던 문제들이 그대로 드러난 것. 과거 정통부 업무가 여타 부처에 나뉘다 보니 업무가 중복되고 부처 간 다툼과 혼란이 비일비재했다. 2009년 8월 대통령 직속으로 IT특보가 신설됐지만 부처 간 이견을 조율했다는 얘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하자 정치권이 앞장섰다. 4월 13일 김형오 국회의장은 기자회견에서 “ICT 업무를 총괄할 통합부처가 필요하다”며 정통부 부활을 언급했다. 김 의장은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국회에서 내로라하는 IT 전문가. 민주당 송영길 최고위원도 4월 6일 임시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IT융합서비스 발전전략을 수행할 책임부처가 사라져 대한민국은 IT 후진국으로 후퇴하고 있다”며 정통부 복원을 주장했다.

    관련 부처에선 주도권 잡기 발걸음

    실제 해외에선 각 부처에 흩어져 있던 ICT 관련 업무를 한데 모으는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해 9월 일본 하라구치 가즈히로 총무상은 “정보통신 분야의 기반 정비와 활용방안 강구, 산업 지원 등에 이르기까지 일괄적으로 정책업무를 수행할 필요가 높아졌다”고 밝혀 내각부 산하에 이를 전담하는 정보통신성 창설을 시사했다. 총무성의 통신방송, 경제산업성의 IT산업, 문부과학성의 콘텐츠·지적재산권, 내각부의 IT전략 등을 정보통신성으로 모은다는 것. 갈수록 복잡, 다양해지는 시장변화에 신속하게 정책대응을 하기 위한 포석이다.

    정통부 부활론에 대한 여론이 일자, 이해당사자인 관련 부처들은 총괄부처 신설 논의와는 무관하게 IT정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발걸음이 바빠졌다. 특히 지경부는 거의 매일 IT 진흥정책을 발표하면서 IT 주관부서로 자리 잡기 위해 정책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경부는 “중앙집권적 부처를 다시 두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고, 그런 부처가 생기면 정부 속성상 규제하려 들 수 있다”며 부정적인 반응이다.

    반면 방통위는 해당기관 수장이 직접 정통부 해체의 문제점을 지적한 만큼 IT 통합부처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표시하고 있다. 다만 최근 지경부의 행보에 대해 방통위 관계자는 “다 같은 행정부 내 정부부처가 아닌가?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수도 있는 만큼 가타부타 얘기할 수 없다. 최 위원장이 한 말이 그대로 우리 기관의 공식 입장”이라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최근 지경부가 ‘IT·SW 규제개선 민관합동위원회’를 구성하면서 IT 융합을 가로막는 규제사례로 본인인증제, 공인인증제를 들자 “이미 방통위에서 개선하기로 한 사항”이라 반응하는 등 불편한 감정이 상당히 퍼져 있다.

    일각에선 단순히 ICT 정책을 담당하는 특정 부처를 만드는 것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한국무역협회 이경태 국제무역연구원장은 “정통부 부활이나 총괄부처의 신설 같은 행정조직 개편이 문제 해결의 본질이 아니다. 정통부 부활을 논하기에 앞서 정통부의 산업정책적인 공과와 앞으로의 과제를 규명하는 게 합당한 순서”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통합부처를 만들거나 정통부를 부활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부처 간 분산된 기능을 잘 조율하고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산업대 매체공학과 최성진 교수는 “정통부를 부활하자는 논의는 좁은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정통부가 해체되기 이전까지 10여 년 동안 통신 인프라 구축에 일조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무엇인가를 서비스하는 게 중요한 시대가 됐다. 인프라 구축을 활성화하기 위해 다시 정통부를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과거의 정통부 기능에 연구개발(R·D), 콘텐츠 개발과 서비스 제공 등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정통부 부활 논의는 정치권에서 불을 지피고 관련 부처들이 이해득실을 따지는 모양새다. 하지만 정작 정부의 공식적인 반응은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정부 안팎에선 당장 정부조직 개편으로 새로운 IT총괄부처를 만들기가 싶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해체 2년 만에 여론의 중심에 선 정통부 부활 논의가 사필귀정으로 끝날지, 고심 끝에 악수를 둔 격이 될지는 정부부처 간 주도권 싸움이냐 아니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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