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3

2010.04.27

“공부 부담… 성적 공포… 사는 게 우울, 죽고 싶어요”

10대 청소년 우울증 6년 새 40.3% 증가 … 강남3구 등 학원 밀집가가 전체 40% 차지

  • 김승훈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 hunnam@seoul.co.kr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0-04-20 14: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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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 부담… 성적 공포… 사는 게 우울, 죽고 싶어요”
    #1 전국에서 사교육 바람이 가장 거세다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이곳에 사는 이모(18) 양은 유명 입시학원을 열심히 다닌 덕에 중학교 3년 내내 전교 1등을 했고, 부모의 바람대로 강남의 명문 K고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1학년 때도 줄곧 전교 1등을 했다. 문제는 2학년 때부터 나타났다. 석차가 5등으로 떨어지자 폭식증,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 시간이 지날수록 증세는 악화됐고 성적도 곤두박질쳤다. 이양은 공부에 대한 의욕을 잃고, 혼자 있거나 눈물을 흘릴 때가 많아졌다. ‘사는 게 힘들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혼자 끙끙 앓던 이양은 최근 들어서야 병원을 찾았다.

    #2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김모(17) 양은 어릴 때부터 영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돌 지나자마자 한글을 떼었을 정도.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영어, 수학, 한자, 논술, 피아노 학원을 다녔고, 5학년 때부터는 과학고 대비반에 들어갔다. 6학년 때는 집 밖에 나가 놀아본 적도 거의 없었다. 어머니에게 “힘들다”고 하소연했지만 무시당하기 일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는 두통과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공부 압박감을 견디다 못한 김양은 자살을 결심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손목을 칼로 그었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한강에 뛰어들었다. 그제야 김양의 어머니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지난 1월부터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게 하고 있다.

    이양과 김양이 병원으로부터 받은 진단명은 가장 흔하면서도 심각한 정신질환인 우울증. 우울증은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 여학생은 이미 10대 중반부터 우울증에 시달렸다. 공통점은 어릴 때부터 학업과 관련해 주변에서 과도한 기대와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점이다.

    이양과 김양처럼 우울증에 빠진 10대 청소년이 갈수록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03~2008년 우울증으로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은 10대 청소년을 서울지역 25개 자치구별로 분석한 결과, 진료 인원이 매년 7~17%씩 늘었다. 2003년 4006명에서 2008년 5623명으로 40.3%나 증가했다. 특히 사교육 3대 특구라 부르는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노원구, 양천구가 다른 지역보다 10대 청소년의 우울증 진료 인원이 월등하게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설문조사 같은 간접조사 방식을 통해 ‘인기학군(학원밀집) 지역 학생이 비인기학군지역보다 우울증이 심하다’는 설(說)이 돌기도 했으나 이처럼 공식 통계자료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사교육 3대 특구 10대 청소년의 우울증은 심각한 수준이다. 강남구는 전체 진료 인원(3만 1324명)의 11%인 3454명으로 최상위에 올랐고 송파구(2827명), 노원구(2282명), 서초구(2125명), 양천구(1961명)가 뒤를 이었다. 사교육 1번지인 강남구는 2003년 460명으로 송파구(472명)에 1위 자리를 내줬을 뿐, 2004년부터 5년 연속 우울증 진료 학생이 가장 많았다. 이들 학원 밀집지역의 진료 인원은 모두 1만2630명으로 전체 진료 인원의 40.3%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사교육 3대 특구의 우울증 진료 인원이 많은 이유로 이들 지역 학부모의 과도한 교육열과 이 때문에 학생들이 받는 학업 스트레스를 지목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문경숙 연구위원은 “청소년의 정신질환 증가는 학업에 대한 부모의 과잉통제,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등 교육환경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최고만을 지향하는 사회 분위기, 과도한 입시경쟁이 청소년의 정신질환을 초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분과 정유숙 교수의 분석은 더욱 구체적이다.

    “공부 부담… 성적 공포… 사는 게 우울, 죽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과도한 기대와 스트레스 받아

    “인기학군 지역 아이들은 집, 학교, 학원 등 주 생활공간에서 친구들과 성적 비교를 많이 하기 때문에 학업 스트레스가 크다. 부모의 기대도 클 뿐 아니라, 자녀가 잘하면 부모는 더욱 재촉한다. 실제 아이의 능력보다 크게 기대를 한다. 기대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바보 같다’ ‘쓸모없다’는 등 자녀들의 가치를 낮추는 말을 하며 꾸짖는다. 아이들은 부정적인 자극에 반복적으로 시달리므로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수 없다. 병원을 찾는 학생들은 공부에 관심이 없는데도 부모가 자꾸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마음먹고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 등 크게 두 가지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학업을 둘러싼 부모와의 갈등과 버려짐의 공포가 10대 청소년의 우울증을 부추기는 이유가 된다는 지적도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홍광의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공부를 강권하는 부모와의 갈등이 크다. 부모가 공부하라며 야단치고, ‘공부 안 하면 끝장이다’고 겁주기 때문에 우울증이 깊어진다. 이 지역 학생은 성적이 떨어지면 단순히 ‘우리 엄마 실망하겠다’가 아니라 ‘나를 자식으로 여기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실제 그런 식으로 행동하고 야단치는 부모도 많다. 인간의 공포 중 하나는 엄마에게 버림받는 것. ‘우리 엄마의 평소 말과 행동에 비춰봤을 때, 공부를 못하면 틀림없이 나를 버릴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공포를 안고 산다. 이러니 아이들이 힘들고 우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모와의 갈등과 버려질 수 있다는 공포

    이와 상반된 분석도 있다. 사교육 3대 특구지역에 10대 청소년 우울증 진료 인원이 많은 것은 우울증 환자가 그 지역에 많아서라기보다 이 지역 부모의 아이에 대한 관심이 크고, 병·의원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경제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김재원 교수는 “이 지역 부모는 자녀의 학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꼼꼼히 확인한다. 예전보다 성적이 떨어지거나 집중력이 저하됐다고 판단하면 바로 병원을 찾는다. 청소년의 우울증 주요 현상은 집중력 저하, 의욕 저하, 동기 부족이다. 학습과 연관돼 우울증이 나타나기 때문에 병원에 오거나 상담받는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다”고 전했다.

    하지만 사교육 특구지역에서 학생 우울증 환자를 대면하는 현장 개원의와 현직 상담치료사, 일선 교사의 의견은 이 지역에 실제 10대 우울증 환자가 많다는 쪽으로 기운다. 그 이유 역시 과도한 학업 열기를 지목한다.

    “강남구 대치동에선 전국 최고 수준의 아이들이 모여 치열한 경쟁을 한다. 범강남권은 다른 지역보다 공부 강도가 높아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게 사실이다. 센터를 찾는 10대 대부분이 학업 스트레스를 호소한다.”(서울수면센터 한진규 원장)

    “이 지역 부모는 학습을 더 중시한다. 빨리 문제를 해결해야 성적이 오른다고 생각할 뿐이다. 자녀의 우울한 기분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상류층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일수록 공부에 대한 압박 정도가 심하다.”(미술심리치료센터 아트앤마인드 이영옥 미술치료사)

    “강남지역 부모는 욕심도 많고 공부에 대한 관심도 높아 아이들이 학업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아이들은 보통 새벽 1시까지 학원에서, 또는 개인과외를 하며 공부에만 열중한다. 잠을 제대로 못 자 수업 중에 코피 흘리는 애도 많다.”(청담동 A중학교 이모 교사)

    “공부 부담… 성적 공포… 사는 게 우울, 죽고 싶어요”
    “하루 평균 20명의 10대 환자를 진료하는데 80% 이상이 학업 스트레스를 하소연한다. 공부 때문에 엄마와 다툼이 잦아지면서 우울증에 시달린다.”(연세주니어상담클리닉·목동 조재일 원장)

    “이 지역 엄마의 교육열이 왜곡돼 있다. 아이들을 독립된 개체로 인정하지 않고, 공부 통제가 지나치게 심하다. 중고생의 80% 이상이 학업 압박감을 호소한다.”(케듀맵연구소 백은영 소장)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우울증 많다!

    한편 이번 조사에선 우울증을 둘러싼 또 하나의 통설이 깨졌다. 일반적으로 감성이 여리고 예민한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우울증에 많이 걸릴 것으로 알려졌지만, 건강보험공단의 조사결과(2003~2008년 서울지역 10대 청소년 우울증 진료 인원)는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우울증세로 병원을 많이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에는 남학생이 2231명으로 여학생(1775명)보다 456명 많았고 2004년에는 남학생이 609명, 2005년에는 433명, 2006년에는 450명 더 많이 진료받았다.

    이에 대해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서천석 홍보이사는 “부모는 자녀가 힘들어하고 속상해한다고 바로 병원에 데려오지 않는다. 문제가 표출돼야 내원한다. 여학생은 내면적인 고통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반면, 남학생은 반항을 하는 등 구체적인 행동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진료 인원이 많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분당서울대병원 홍광의 교수는 “남학생에 대한 부모의 기대가 여학생보다 커서 압박을 더 많이 가하기 때문”이라고 상반된 분석을 내놓았다.

    10대 자살과 사교육 특구

    우울증과 깊은 연관 … 갈수록 늘고, 수법도 대담


    서울지역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노원구, 양천구 등 사교육 3대 특구의 10대 청소년 우울증 진료 인원이 다른 구보다 월등히 많은 것과 관련, 10대 자살자도 이들 지역에 몰려 있다는 통계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집계한 2008년 서울지역 25개 자치구별 10대 자살자 현황에 따르면 노원구가 8명으로 가장 많았고 양천구 7명, 강남·송파구 각각 5명으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특구지역 중 서초구만 1명으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이들 3대 특구의 2008년 10대 청소년 자살 인원은 모두 26명으로, 전체 75명의 34.7%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사교육 3대 특구 청소년의 우울증 과다현상이 10대 자살과도 연관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우울증은 복통, 소화불량, 두통, 너무 적게 혹은 많이 자거나 먹는 것, 집중력 저하, 무기력감이 대표적인 증상으로 일상생활에 흥미가 없어지고, 자주 눈물을 흘리며, 평소와 다르게 동작이 느려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울증의 가장 큰 합병증은 자살 충동.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김재원 교수는 “우울증과 자살은 상당히 밀접하다. 학계에서는 우울증이 자살로 이어지는 비율을 80%, 우울증과 상관없이 충동적으로 자살하는 비율을 20%로 본다”고 말한다. 심지어 “자살의 유일한 병적 원인은 우울증”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홍광의 교수)도 있다.

    문제는 청소년 자해와 자살이 더욱 빈번해지고, 방법도 대담해진다는 점.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분과 정유숙 교수는 “학업 스트레스에 따른 자해나 자살이 예전보다 많아지는 추세다. 요즘 아이들은 자살을 힘든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 아니라 하나의 대안으로 생각한다.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고통 없이 죽는 방법을 묻는 아이들도 있다”고 했다. 심지어 경찰 통계에 잡히지 않는 자살도 많다는 주장도 나온다. 강남구 D고의 김모 교사는 “강남지역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자살도 많다. 학교와 부모가 다들 쉬쉬해 정확한 실태 파악이 어려울 뿐”이라고 귀띔한다.

    연세주니어상담클리닉(목동) 조재일 원장은 “자살 방법도 손목을 긋는 수준에서 학교에 나와 몸 전체에 칼을 대거나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등 대담해지고 위험성이 커졌다. 사회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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