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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분방 사만다” VS “푸근한 사라”

영국 총선, 양당 당수 부인 선거전 후끈 … 사상 첫 TV토론에 유권자 관심 집중

  • 코벤트리=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자유분방 사만다” VS “푸근한 사라”

5월 6일 실시하는 영국 총선 선거전 막이 올랐다. 13년간 집권한 노동당 정권이 보수당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치르는 선거전이어서인지 어느 때보다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영국 총선 절차에 따라 4월 6일 고든 브라운 총리가 엘리자베스 여왕을 알현하고 의회 해산을 요청함으로써 선거전 시작을 알렸다. 선거전 첫날 풍경은 모든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켰는데, 이날 하루 종일 부인 사라 브라운과 동행한 브라운 총리의 행보가 무엇보다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열차 객실에 마주 앉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연출하는가 하면 빡빡한 유세 일정 하나하나에 사라를 동행시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했다.

사라 브라운은 영국 정가에서 브라운 총리 이상의 인기를 누리는 다크호스로 알려져 있다. 2000년 아홉 살 연상인 노총각 브라운 총리와 결혼한 사라는 무뚝뚝하고 딱딱해 보이는 남편의 이미지를 보완, 완충하는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온화하고 편안한 이미지를 풍기는 사라의 트위터 계정에는 이미 110만 명이 넘는 팔로워가 북적거리고 있다. 사라는 이 계정을 통해 총리실 주변의 시시콜콜한 뒷얘기를 전하며 브라운 총리와 유권자의 간격을 좁히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 노동당 전당대회에선 브라운 총리의 연설 직전 연단에 올라 남편을 소개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사라의 깜짝 출연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08년 당시 보수당에 밀려 노동당의 인기가 바닥을 향하고 있을 때 사라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구원투수로 노동당 전당대회에 처음 등장해 “나의 사랑, 나의 영웅 고든 브라운 총리를 소개합니다”라는 깜찍한 멘트를 날렸다. ‘사라 카드’가 효과를 발휘했다고 본 노동당 지도부는 올해 전당대회 때도 사라에게 총리 등장에 앞서 장시간 연설할 기회를 줬다. 총선을 앞두고 사라는 브라운 총리 이상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1997년 총선 이래 3연패 끝에 비로소 정권 탈환의 기회를 잡은 보수당도 총리 후보 부인을 필승 카드로 내세우기는 마찬가지다. 40대 초반의 젊은 보수당수 데이비드 캐머런의 부인 사만다 캐머런이 그 주인공. 사만다는 옥스퍼드 대학 재학 시절 남편을 만나 결혼한 뒤에도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며 정치 전면에 나선 적이 없다. 2005년 데이비드 캐머런이 서른아홉의 나이로 보수당수에 당선될 당시, 당내 경선 과정에서 사만다의 자유분방한 이력이 화제가 된 적은 있지만 이후로도 언론 노출을 자제해왔다.



남편 이상으로 바쁜 일정 소화

그러나 보수당은 총선 선거운동을 앞두고 사만다의 참여를 공식적으로 예고할 만큼 그의 활약에 기대를 걸고 있다. 최근엔 오는 9월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또 한 번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지난해 초 희귀질환을 앓던 여섯 살 아들이 세상을 떠난 사실을 기억하는 영국인들에게 사만다의 임신은 잔잔한 화젯거리를 제공했다. 실제 한 여론조사에서는 캐머런 부부의 임신 사실이 보수당 지지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선거운동 첫날 사만다는 검은색 진 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자선단체 행사에 참석하는 등 경쟁 지역을 누비며 ‘홀로 유세’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전통적인 귀족가문에서 자란 사만다의 가정환경을 감안하면 서민 행보를 통해 중산층 유권자의 표심을 잡겠다는 선거 전략이 엿보인다.

이처럼 노동당과 보수당 양당 당수 부인들의 선거 유세는 남편들이 지닌 이미지상의 약점을 보완하는 데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다. 이튼스쿨과 옥스퍼드 대학 출신으로 엘리트 이미지에 갇혀 있는 데이비드 캐머런은 사만다의 자유분방하면서도 격의 없는 행보에 힘입어 유권자들과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 반면 근엄하고 딱딱한 이미지가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브라운 현 총리는 부인 사라의 푸근한 이미지와 내조형 선거운동에 기대 지지율 반전을 꾀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는 과거와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빅 이벤트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영국 선거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하는 총리 후보자 간 TV토론이다. 대통령제와 달리 다수 의석 확보를 목표로 하는 의원내각제인 영국은 그동안 총리 후보자 간 TV토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다. 지난 20여 년간 총선 때마다 TV토론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긴 했지만 결국 정당 간 이해관계가 엇갈려 무산됐다.

이번에 TV토론이 성사된 것은 브라운 총리의 결단에 힘입은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젊고 수려한 외모, 화려한 언변에 방송사 경력까지 있는 보수당수 캐머런은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자마자 TV토론을 들고 나와 브라운 총리를 계속 압박했다. 캐머런 당수는 “스튜디오까지 오는 택시비는 내가 내주겠다”(실제로 영국 정치인은 택시를 애용한다)거나 “그래도 자신이 없다면 내가 택시로 모셔올 수도 있다”는 등의 정치적 수사를 동원하며 브라운 총리를 코너로 몰아붙였다.

TV토론 전문가 영입 대책 골몰

브라운 총리는 1997년 노동당 집권 이후 영국 경제의 10년 호황을 이끈 재무장관 출신으로 논리와 실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본인과 참모들은 TV토론이 브라운 총리의 약점을 재확인시킬지 모른다며 반대 의사를 고수해왔다. 모범생 스타일의 무뚝뚝한 이미지와 다소 장황해 보이는 화법, 그리고 어색한 미소 등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라 본 것이다.

그러나 브라운 총리는 지난해 여름 전당대회 연설을 통해 전격적으로 토론 참가의사를 밝혔다. 노동당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면서 제3당인 자유민주당보다 뒤처지는 사태가 벌어지자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TV토론 카드를 꺼내든 것. 여기에 TV토론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외부환경 탓도 있다. 보수당은 물론 자유민주당까지 나서 TV토론 실시를 주장한 데다, 일부 방송사는 TV토론에 반대하는 후보자의 자리엔 빈 의자를 놓고 나머지 후보자들만으로 토론을 강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정치권이 사상 최초의 TV토론에 합의하자 각 정당에는 비상이 걸렸다. 오바마와 매케인이 맞붙었던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전의 TV토론을 준비했던 전문가 그룹을 영입하는가 하면 상대 후보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은 이번 TV토론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이라 보는가. 끊어 치는 단타에 능한 캐머런이 노동당의 정책 실패를 매섭게 공격할 경우 브라운 총리가 곤경에 처하리라는 분석도 있지만, 그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세 차례, 그것도 90분 동안이나 꽉 짜인 경기 규칙 아래서 토론을 벌이다 보면 그동안 “세련된 이미지만으로 정치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캐머런 보수당수의 밑천이 드러나고, 오히려 브라운 총리의 ‘내공’이 빛을 발휘하리라는 것이다.

이번 총선은 여론조사 결과 보수당이 줄곧 앞서고는 있지만 과반수 의석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접전이 예상된다. 그만큼 TV토론이나 총리 후보 부인들의 선거운동 같은 새로운 선거 전략의 필요성이 커졌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영국의 정치학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주간동아 2010.04.27 733호 (p68~69)

코벤트리=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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