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3

2010.04.27

강남3구는 ‘ADHD 특구’

서울 10대 청소년 진료 인원 3분의 1에 육박 … 과도한 교육열이 주요 원인인 듯

  • 김승훈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 hunnam@seoul.co.kr

    입력2010-04-20 1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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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3구는 ‘ADHD 특구’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노원구, 양천구로 대표되는 ‘사교육 특구’의 10대가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로 진료를 받은 수치가 다른 자치구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업과 스트레스 5년 동안 서울서 344% 폭증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의 ‘2003~2008년 서울지역 25개 자치구별 10대(10~19세) ADHD 진료 합계 인원’에 따르면, 노원구가 4307명이 진료를 받아 최상위에 올랐다. 이는 전체 진료 합계 인원인 3만6492명의 11.8%에 이르는 수치. 강남구가 3891명(10.7%)으로 두 번째로 많았고 송파구(3097명), 양천구(2173명), 서초구(2071명)가 뒤따랐다. 이들 사교육 특구지역의 진료 합계 인원은 모두 1만5539명(42.6%)으로 전체의 절반에 육박했다.

    서울지역 25개 자치구 모두 ADHD 진료 인원이 크게 늘었다. 강남구 465%(2003년 177명에서 2008년 1000명), 양천구 440%(105명에서 567명), 송파구 404%(183명에서 922명), 서초구 306%(125명에서 508명), 노원구 210%(323명에서 1001명) 등 모든 자치구가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전체 진료 인원도 2003년 2187명에서 2008년 9705명으로 344% 급증했다.

    ADHD는 주의력이 부족해 산만하고, 과잉행동이나 충동성을 보이는 장애를 말하는데 이런 증상이 아동기에 많이 나타나고 일부는 청소년과 성인기까지 남아 있기도 한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김재원 교수는 ADHD 원인에 대해 “뇌에는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는 신경회로가 있는데, ADHD는 주의·집중을 담당하는 신경기능들이 유전적인 변화로 문제가 생겨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발병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환경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ADHD의 증상인 부주의(집중력 저하), 과잉행동, 충동성이 환경에 따라 심하게 나타나기도 하고, 아예 발병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 김재원 교수는 “ADHD는 유전 요인 80%와 환경 요인 20%가 결합해 증세가 나타난다. 학업이나 심리사회적 스트레스가 환경 요인에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서천석 홍보이사는 ADHD 진료가 급증한 이유가 “부모의 과도한 교육열 때문”이라고 못 박았다. 서 이사는 “ADHD 환자는 기본적으로 질병 소인을 갖고 태어나지만 환경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환경이 좋으면 발병하지 않을뿐더러 강한 소인을 갖고 태어나더라도 증세가 좋아진다. 부모의 과도한 학업 요구, 시험 결과를 중시하는 풍토 등 교육환경이 ADHD 발병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강남3구는 ‘ADHD 특구’

    2003~2008년 서울지역 25개 자치구별 10대(10~19세) ADHD 진료 합계 인원(단위 : 명)-*자료 : 국민건강보험공단

    ADHD 100명 중 80명은 남학생

    김재원 교수는 강남3구와 노원구, 양천구 등 사교육 특구에 ADHD 진료 인원이 많은 이유에 대해 “자녀 학습에 대한 부모의 관심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즉 아이의 집중력이 낮다고 판단했을 때 다른 지역에선 ‘나아지겠지’ 하고 지켜보지만, 이들 지역 부모들은 조금만 문제 있다 싶으면 바로 병원에 데려간다는 것.

    연세누리소아청소년상담클리닉(목동) 이호분 원장은 “학교교육이 ADHD를 키운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현재의 학교교육은 ADHD 아이들의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획일적인 잣대로 평가하기 때문에 ADHD 증상이 있는 아이들은 계획성 있게 공부하지 못해 낙오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교육열이 강한 지역에선 정상적인 아이도 시험 칠 때 손과 가슴이 떨리고 머릿속이 하얘지며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 ‘시험 공포증’을 많이 앓는다. 이 지역의 학교를 다니는 ADHD 아이는 그 증상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분과 정유숙 교수도 “대학 입학만 바라보는 교육제도 아래선 성취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학업이다. 그런데 ADHD가 있으면 아무래도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공부를 못해 성취감이 낮아지면 자존감도 떨어지고 가정과 학교로부터 비난도 많이 받는다. 그러면 아이들은 비행으로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강남3구는 ‘ADHD 특구’
    한편 ADHD 진료 비율은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훨씬 높았다. 매년 진료 인원 100명 중 80명 정도가 남학생이다. 건보공단의 ‘2003~2006년 서울지역 10대 남녀 ADHD 진료 인원’에 따르면 2003년에는 남학생이 1790명으로 전체 진료 인원인 2187명의 81.8%를 차지했고 2004년은 2466명(83.5%), 2005년은 3582명(81.8%), 2006년은 6075명(80.5%)이었다.

    김재원 교수는 “ADHD는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과잉행동이나 충동성 증상을 많이 보이기 때문에 내원 비율이 높은 것”이라며 “학계에서는 남녀 유병률을 4대 1 정도로 보지만 실제 병원에서 진료해보면 9대 1 정도다. 건보공단의 이번 자료는 학계보다 병원 현장에서 파악한 통계치가 옳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ADHD 아이와 부모들의 눈물

    사회적 편견과 학교의 몰이해에 울다!


    강남3구는 ‘ADHD 특구’

    부모와 함께 상담받는 아이(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ADHD를 지닌 김모(18) 군의 어머니 박모 씨는 아이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한숨이 나온다. 아이가 만날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왜 그 모양이니” 같은 비난과 핀잔을 들었던 것. 언젠가는 “엄마, 나 바보야”라고 말하며 울기도 했다.

    김군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과잉 및 충동 행동을 보였다. 친구들과 자주 싸우고, 남의 물건도 충동적으로 훔쳤다. 중학생이 된 뒤 지각과 무단결석도 많이 했다. 전학도 3번이나 했다. 하지만 고1 때부터 달라졌다. 담임교사가 아이가 외국어에 남다른 감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분야를 집중적으로 키워준 덕분이다. 김군은 영어 과목에서 줄곧 전교 1등을 했고 TEPS 성적도 900점이 넘는다.

    서울에서 ADHD로 진료받은 10대가 2008년 1만 명에 이른다. 증상이 있어도 진료받지 않은 아이들까지 고려하면, 그 수는 무시할 수 없는 정도다. 하지만 ADHD를 앓는 아동, 청소년 및 그들의 부모는 질환 자체뿐 아니라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과 편견, 그리고 ADHD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획일적인 학교교육까지 이중고를 겪고 있다.

    두 아들이 ADHD인 오모(47) 씨는 “정신질환에 대한 선입견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호소했다. 현재 고3인 큰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 때, 고2인 작은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 때 ADHD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10여 년간 치료하면서 증세가 호전돼 지금은 학습에 큰 지장이 없다. 하지만 오씨는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아이들이 치료받는다는 사실조차 숨겨야 했다.

    오씨는 “한동안 남편과 시부모에게도 아이들 치료 사실을 숨겨야 했다. 아무에게도 지지받거나 도움받지 못하는 현실에 큰 절망감을 느꼈다. 지금도 남편과 시부모가 아이들이 치료받은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겨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문모(46) 씨도 아들 박모(15) 군의 치료를 남편에게 숨겼다. 정신과 치료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다. 박군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수업시간에 돌아다니거나 교실 바닥에 드러눕는 등 이상행동을 했다. 친구들과도 자주 다퉜다. 3학년이 돼서도 문제행동이 지속돼 병원을 찾았다. 남편이 알면 난리 날 것 같아 몰래 다녔지만, 치료 2년차에 알게 됐다. 문씨는 “남편이 아이에게 정신과 약 먹인다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뒤늦게 알게 된 시부모도 ‘손자를 정신병자로 만들려고 작정했느냐’며 비난을 퍼부었다. 너무 억울하고 서러워서 죽고 싶은 심정뿐이었다”고 애석해했다. 다행히 박군은 치료 효과가 좋아 지금은 큰 문제 없이 학교생활을 한다고 했다.

    ADHD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학교교육도 문제다. 강남구 대치동에서 ADHD를 지닌 아들을 키우는 박모(45) 씨는 “ADHD 아이는 천편일률적인 학교교육에 적응을 못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학교교육이 좀 더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방화됐으면 좋겠다. 또 ADHD에 대한 배려도 부족하다. 예를 들어 ADHD를 지닌 아이들의 특징 중 하나가 ‘악필’이다. 손 근육 발달이 느려서다. 펜으로 적는 대신 워드로 작성하게 하는 등 배려가 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창의성이 일찌감치 죽는다”고 강조했다.

    교사들도 ADHD를 연구하고, 적절히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 ADHD를 지닌 이모(14) 군은 초등학교에 들어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수업시간에 재잘거리거나 부산하게 돌아다녔다. 담임교사에게 지적도 많이 받았다. 결국 어머니 김모(43) 씨는 아이에게 병원치료를 시켰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게 된 담임이 ‘특별 관리’하겠다며 아이를 도서관에 홀로 지내게 했다. 결국 김씨는 아이를 전학시켰다. 김씨는 “ADHD를 지닌 아이가 많아진 만큼 교사들도 이 증상에 대해 제대로 알고, 아이의 특성에 맞춰 지도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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